요석을 아시나요? 주석이 동생 요석? 아니고, 오줌 ‘요’에 돌 ‘석’을 쓰는 녀석입니다. 오줌 돌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처음엔 이름을 몰라 ‘공원 화장실 소변기 청소 방법’이라고 검색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묵은 것인지는 몰라도 락스를 풀고 박박 문질러도 떨어지질 않더군요.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니 “요즘 공원 화장실, PC방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데…” 하더군요. 그래요. 공원 화장실 보다 더러운 화장실을 사용 중입니다.
요석이와 동거 중이지만 결단코 그것을 품은 것은 아닙니다. 불리고, 긁고, 떼고 있죠. 이만하니 ‘요석 제거법’ 만큼이나 ‘전 주인의 생활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보러 온 날 첫인상은 이랬습니다. 젊은 부부 그리고 아이 셋, 싱크대 문마다 붙어있는 잠금장치, 저상 침대 셋, 쿠폰이 덕지덕지 붙은 냉장고, 계단에서 입구까지 늘어져 있던 살림살이. 그리고 저의 실수, 화장실은 샤워 중이라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전세’는 괄호 치고 ‘2년 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은 내 집 같아요. 묵시적으로 혹은 조금 올려주고 갱신하면 기간이 좀 늘어나겠지만요. 잠시만 내 집, 주인도 주거가 아닌 수익을 목적으로 지었을 테고요. 순환이 매우 느린 공공장소로 생각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사용한 화장실은 깨끗하게 치우고 가는 것이 도리 아닌가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 아시잖아요 다들.
이사 준비를 시작하며 먼저 ‘옷, 주방용품, 서적…’ 카테고리 별로 택배 상자 하나씩을 구입했습니다. 짐을 싸다 보니 옷 상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주방용품 상자는 텅텅 비었습니다. 이삿짐을 싸보니 ‘나란 사람은 이런 모양이구나.’하는 값이 매겨지더군요. ‘기분이 꿉꿉할 땐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향을 비워 공기를 바꾸는 사람.’ 자연스레 다음 집에선 밥을 먹는 일에 정성을 들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재계약’ versus ‘이사’라면 소모되는 에너지의 총량을 보나, 들이는 시간을 보나 무조건 재계약이 압승이죠. 아무리 주먹구구식으로 이사를 준비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집을 내놓으면 바로 나가나요? 집이 나갔다고 안심할 수 있나요? 한숨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입주일에 맞춰 집을 구하고, 대출 승인을 기다리고, 이삿짐 센터며, 에어컨 설치며 두통을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공간에 대한 순수한 희망으로 버티는 거죠.
아마 이 건물 사람들도 제가 들어오면서 조금의 기대, 모종의 바람이 있었겠죠? 새로운 사람은 예측할 수 없던 시간대에 소음을 만들 테고, 예민한 주차 신경전을 펼칠지도 모르니까요. 이사 오고 1층에서 작은 식당을 하시는 이웃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전 세입자와 집 주인이 청소 문제로 싸웠다는 이야기, 결국 집주인이 직접 입주청소를 하다가 울며 하소연했다는 이야기도 그분께 듣게 되었죠.
마음이 불편해서 작은 케이크 하나를 사서 감사 쪽지와 함께 주인 세대 앞에 놓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집주인은 후드를 새로 갈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마루가 낡았던데 한우를 선물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이사하는 내내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운 타기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슬픈 날이 훨씬 많았지만, 분명 웃는 날도 있었죠. 아마 이삿날에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붙인 말이 아니었을까요?
요즘엔 싱크대, 현관, 화장실에 붙은 끈끈이를 떼고 있습니다. 제거액으로 불리고 드라이기로 열을 주면서 밀대로 밀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내 손이 네 개였으면 참 좋겠다 싶은 요즘입니다. 스위치에 붙은 짱구며 온갖 캐릭터 스티커는 떼지 않고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2년 동안 깨끗하게 사용하고, 나가는 날 떼려고요. (2년 한정) 나의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기 위한 일종의 부적이랄까요? 그동안의 슬픔은 이 글에 모두 묻어두려 합니다. 이제 기쁨만 가득한 집이 되겠네요.
*요석 제거 방법 : 변기 물을 제거합니다. 뜨거운 물을 채워 넣습니다. 구연산을 넣고 녹입니다. 30분 정도 방치합니다. 가볍게 긁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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