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 하는 사람들

어느 틈엔가 재즈 가수가 되었고, 21년째 하고 있네요.

재즈 가수 남예지를 소개합니다.

2024.12.23 | 조회 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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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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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스 오브 마치

음악 일 하는 사람들의 불안, 실패, 그리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성공의 기쁨, 그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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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곱슬 예수님 머리를 하고 온 남예지를 대학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나는 종종 눈맞춤을 피했지만, 난 사실 오래전부터 남예지를 좋아했다. 2시간 대중없이 함께 떠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예지를 떠올리며 핸드폰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직업상 아티스트를 만날 일이 많았다. 글로벌 팝스타부터 무명의 작곡가까지. 국적, 나이, 성 정체성, 유명세 모두 다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상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티스트였다. 일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아티스트 이전에 생활자였다. 난 이들이 만드는 예술이 더 좋다. 진짜 예술은 일상이니까.


1. 자기소개 해주세요.

재즈 가수 남예지입니다. 공연도 하고, 곡도 쓰고, 학교에서 학생도 가르치고, 연구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즈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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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래된 노래, 틈] 앨범 발매 축하해요. 예전부터 ‘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지켜봤어요. 먼저 ‘틈’은 무엇이며, 예지 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 궁금해요.

이건 사과, 저건 오렌지.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걸 언어로 자동 분류하잖아요. 모든 대상에 이름표가 붙어 있으니까요. 근데 저는 이름표로 해석하고, 해석되는 게 충분치 않은 것만 같았어요. 우리가 보지 못한 이면은 늘 있고, 내가 모르는 내 모습도 있어요. 언어의 세계는 불완전해요.

언어로 정리된 매끄러운 머릿속에 ‘틈’을 내 그 속을 마주해 보고 싶었어요. 갈라져 새로 열린 세계 속에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4집 [오래된 노래, 틈]
4집 [오래된 노래, 틈]

 

재즈도 그래요. 악보와 글로 쓰인 매끈한 세계에서 작곡가도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틈)을 찾아내는 게 재즈 즉흥연주의 목표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이 ‘틈’을 내는 사고를 ‘재즈적 사고’라고 이름 붙였어요. 재즈 연주자, 청취자뿐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 속에 놓인 우리 모두가 이 ‘재즈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3. 가시리, 새야새야 등 오래된 노래를 재해석한 앨범을 내셨어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 같아요.

문득 한국 재즈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았어요. 공부해 봤더니 일제강점기에도 재즈가 있었더라구요. 그때부터 동아일보, 조선일보 아카이브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재즈 관련 기사를 찾아봤어요. 

당시 국내 재즈의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났어요. 베니 굿맨, 듀크 엘링턴의 기사가 번역돼 돌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1940년, 일본은 재즈 금지령을 내려요. 미국과 2차 세계 대전 중이었으니 적국의 음악을 듣지 말라는 거였죠.곧 한국에서 재즈는 종적을 감췄구요.

조선 최초의 재즈 밴드 '코리안 재즈 밴드' (출처: 오마이뉴스 / ⓒ 이준희)
조선 최초의 재즈 밴드 '코리안 재즈 밴드' (출처: 오마이뉴스 / ⓒ 이준희)

 

다시 한국에 재즈가 나타난 건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국내에 주둔하던 미 8군의 무대를 통해서였어요. 해방되고 꼬박 5년 이상 걸린 셈인데요. 저는 이 재즈 단절기에 주목했어요. 1930년대에 나온 김해송의 ‘청춘계급’이나 손목인의 ‘싱싱싱’ 같은 곡을 들어보면 당시 재즈는 가요와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있었어요. 근데 재즈 금지령으로 재즈 현지화가 뚝 중단된거죠. 얼마나 아쉬워요. 그래서 이 단절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재즈를 듣고, 연주하는 방식이 달라졌을까? 상상하며 작업했어요. 그러니까 [오래된 노래, 틈] 앨범은 한국 재즈의 어떤 ‘틈’에 관한 상상을 실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아니, 재즈가 뭐길래 일본은 재즈 금지령까지 내렸던 거예요?

미국은 적국이니까, 꼬우니까 듣지 말라는 거였겠죠. 나치가 독일 점령했을 때도 그랬어요. 인종차별 정책을 펼쳤던 나치는 주로 흑인들이 연주하는 재즈가 얼마나 마음에 안 들었겠어요. 그리고 나치가 볼 때 재즈는 고전 음악에 비해 퇴폐적인 음악이고, 재즈를 즐기는 모습도 ‘무질서’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일본 역시 유사한 이유에서 재즈 금지령을 내렸을 거라 생각해요. 중요한 건, 당시에 재즈가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는 거예요. 인기가 없었다면 굳이 금지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치를 피해 라디오를 훔쳐 달아나는 피터(로버트 숀 레오나드) / 출처: 영화 <반항의 춤>
나치를 피해 라디오를 훔쳐 달아나는 피터(로버트 숀 레오나드) / 출처: 영화 <반항의 춤>

 

 

5. 심리학 전공자가 재즈 가수가 되셨어요. 음악, 언어, 문화를 연구하는 박사님도 되셨어요. 재즈 책도 1권 내셨구요.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는지 궁금한데요.

재즈 보컬이 되려던 건 분명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네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돌아보면 운명이란 게 참 우습기도 해요. 

어릴 적에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세광애창곡집>이나 <팝송대백과>를 즐겨 불렀죠. 중·고등학생 시절 시험 기간에 문제집을 들고 노래방에 갔던 적도 있고요. 대학교 다닐 적엔 친구들 사이에서 노래방 가수(?)로 통했어요. 그러다 친구 권유로 힙합동아리에 가입하게 됐고, 교내 무대나 힙합 클럽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신문 광고에서 본 서울 재즈아카데미에 입학을 하고는 본격적인 재즈인 생활을 시작합니다.

졸업할 즈음엔 학교 행정실 권유로 오디션을 봤어요. 앙상블 수업 과제로 연습했던 ‘This Masquerade’를 불렀는데, 마침 그 회사에서 재즈 보컬을 찾고 있다고 ‘춘천가는 기차’를 녹음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녹음했죠. 정신 차려보니 김광민·이현우씨가 진행하시던 수요예술무대에서 데뷔 무대를 하고 있었구요. 유튜브 영상이 있는데 재즈의 ‘재’자도 모르는 제가 벌벌 떨며 재즈를 부르고 있네요.

수요예술무대에서 데뷔한 남예지 '춘천가는기차'

 

20대 후반쯤엔 과연 내가 재즈 뮤지션이 맞나 회의감도 들더군요. 재즈 흉내만 냈던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찰리 파커를 매일 카피했고, 닥치는 대로 연습했어요. 즉흥 연주를 잘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실용음악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음악 공부하려고 대학원에 갔고, 일제강점기 가요의 한 장르인 ‘재즈송’ 관련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견문도 넓히고 재밌는 재즈 연구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작정 박사 과정을 밟게 됩니다. 

책도 막 내려던 건 아니었어요. 박사 논문 쓰던 중에 재즈피플 김광현 편집장님께서 칼럼을 쓸 기회를 주셨는데 <인문학으로 재즈 횡단하기> 제목으로 1회 연재가 딱 발간된 순간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재즈, 끝나지 않은 물음>은 그렇게 나오게 된 거예요. 출간하고는 북 콘서트, 강연, 이것저것 제안 받아서 하고 있는데 공연과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오래 살아서 인생 이야기가 너무 길었죠 🙂


책 구매해서 읽어보기

 

 

6. ‘벌이’는 어땠는지. 음악인 ‘살이’는 대체로 어땠는지 궁금해요. 

벌이는 불규칙했어요. 뮤지션 삶이 보통 그럴 거에요. 저는 부모님이 서울에 살고 계셔서 여지껏 음악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집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가 그거였어요. 부모님께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참 슬픈 현실이죠.

인복도 참 많았어요. 같이 음악 하자고 여기저기서 불러주셨는데, 돌아보면 참 과분한 일이었죠. 그리고 제가 처음 재즈계에 입성(?) 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재즈 보컬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게 많은 일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때 더 감사하며 지낼 걸, 이라고 종종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잘 먹고 살고 있으니 음악인 생활은 대체로 만족합니다. 그치만 다시 태어나면 다른 직업을 갖고 싶어요. 세상엔 음악 말고도 재밌는 일이 너무 많거든요.

남예지가 직접 기획한 공연 <재즈와 사랑에 빠지는 다섯가지 질문> @CGV 청담씨네시티
남예지가 직접 기획한 공연 <재즈와 사랑에 빠지는 다섯가지 질문> @CGV 청담씨네시티

 

 

7. 많은 젊은 음악가가 음악을 포기합니다. 음악 해서 벌어먹고 사는 게 어려워서요. 고민 많은 음악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감히 그런 조언을 하기엔 저는 너무 운 좋게 살아왔어요. 그렇지만 제 학생들에게 꼭 해주는 얘기가 있어요. 자신이 불규칙한 삶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 해보라고요. 불규칙한 삶에 취약해서 자주 우울해진다면 음악 하는 걸 다시 고민해보라고 말해줘요.

 

 

8. 내가 지금 재즈를 하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한 곳에 고이지 않고, 계속 어딘가로 흘러가게 해주는 것 같아요. 처음엔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게 해줬고, 내성적인 제가 편안하게 사람들과 소통하게 해줬고, 가끔은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도 돼줬어요. 재즈를 한다는 건 제게 그런 의미였어요. 어느 틈엔가 저는 정말 재즈를 사랑하고 있더라고요.

 

 

9. 저도 내성적이라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긴장되거든요. 예지 님 공연하는 건 어때요?

무대 공포증이 심해요. 그래서 공연할 때 ‘와, 행복해’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어요. 물 마시다가 손이 떨려 물을 쏟은 적도 있었고, 긴장해서 목소리가 안 나오거나 앞을 못 쳐다본 적도 있었어요. 노력하면 언젠가 즐겁게 노래할 수 있을 거에요. 계속 연습해야죠.

디바 야뉴스에서 공연하는 남예지
디바 야뉴스에서 공연하는 남예지

 

 

10. 저작권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셨단 글을 봤어요. 무슨 일이라도…?

이번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저작권 소멸된 곡이었지만 ‘목포의 눈물’, ‘찔레꽃’, ‘어기여 디어라’ 3곡이 좀 문제였어요. ‘목포의 눈물’은 승계자인 손목인 작곡가 님의 아내 분께 허락을 받았지만, 작사가 문일석 님은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저작권(편곡)을 등록하지 못했어요. ‘어기여 디어라’는 허락을 받지 못해 결국 앨범에 못 실었고요.

앨범에 싣지 못한 '어기여 디어라'는 라이브 영상으로 들어주세요.

 

 

11. 일 안 할 때는 주로 뭘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판타지, 크리스마스 그리고 좀비물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가끔은 좀비가 나타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곤 해요. 주변에 무기 될만한 것을 찾고, 어디에 몸을 숨겨야 할지 상상해 봐요. 친구들한테 이 얘길 하면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ㅎㅎ  

 

 

12. 마지막 질문이에요. 도시 생활자에게 친절을 기대하기 어렵단 생각을 가끔 합니다. 늘 바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거겠죠. 근데 예지 님은 참 친절하세요. 상냥하고요. 글과 말 모두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누구든 저 때문에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어려워 하지 못할 말이 없으면 좋겠구요. 그래서 늘 예의를 갖추고, 친절하려고 노력해요. 또 과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SNS에 열심히 일상을 올리는 건 굉장히 모순된 것 같지만요. 되게 이상한 일이죠?


🕊️ 공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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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님이 4집 [오래된 노래, 틈] 발매 기념 공연을 펼칩니다. 예지 님께서 직접 기획하신 공연이라 더욱 근사할 것 같아요. 공연하실 때 긴장하신다고 하셨으니, 저도 가서 응원하려고 합니다. 누가 '재즈는 지금, 여기의 음악'이라고 말한 적 있어요. 그만큼 라이브 무대를 즐기는 게 재즈의 묘미거든요. 1월 15일 오후 8시, 살롱문보우에서 뵐게요. 

공연 예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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