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 하는 사람들

저는 느린 사람이에요. 천천히, 정성스럽게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영상 제작자 오근재 감독님을 소개합니다.

2025.01.13 | 조회 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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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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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스 오브 마치

음악 일 하는 사람들의 불안, 실패, 그리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성공의 기쁨, 그런 이야기를 다룹니다.

1. 자기소개 해주세요. 

영상 제작자 오근재입니다. ‘스튜디오 로보’라는 작은 영상 콘텐츠 제작 회사를 운영 중이고, 옛날부터 라이브 음악 영상을 만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온스테이지 영상을 만들었던 오근재 감독님
오랫동안 온스테이지 영상을 만들었던 오근재 감독님

 

 

2. 온스테이지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커리어 초창기부터 온스테이지를 하셨어요. 광고, 영화 수많은 갈래 중에 왜 하필 음악이었나요? 

영상 만들고 그림 그리는 재주는 있었지만, 음악 영상을 꼭 만들겠다고 꿈꾼 적은 사실 없어요. 제가 음악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하기엔 저보다 음악을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소심하게) 약간 좋아한다고 해두겠습니다. 

어릴 적에 글라스톤베리 같은 페스티벌 영상을 몇 주간 다운로드 받아 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니까 영상 찾는 게 고생스러웠는데도 그게 참 행복했어요. 그러다 영상 만드는 재주로 라이브 음악 영상을 무작정 만들어봤고, 마침 네이버에서 좋게 봐주셨는지 운 좋게 온스테이지 제작팀에 합류하게 된 거죠.

첨부 이미지

 

 

3. 온스테이지 초창기에 갯벌, 지하철역 등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하셨잖아요. 연출자는 고생 꽤나 했을 것 같아요. 

"무대가 아닌 다양한 장소에서 음악가의 라이브가 펼쳐진다"라는 콘셉트의 영상을 온스테이지 하기 전에 찍어 봤거든요. 그때 좋았던 경험을 온스테이지도 적용해 봤어요. 고생스러웠다는 생각보다 젊은 날의 추억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4. 여러 라이브 영상을 제작하며 아쉬운 것도 있었을 텐데요. 

간혹 가창, 연주, 무대 연출에 과도하게 힘을 준 아티스트를 촬영하게 되는데, 오히려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특색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있었어요. 아쉬웠어요. 라이브 영상은 축소된 편곡으로 담백하게 연주해 현장감을 잘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빡센 건 공연장에서, 단출한 건 라이브 콘텐츠에서. 이렇게 하는 게 밸런스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5. 온스테이지가 끝이 났어요. 온스테이지는 한국 음악 업계에 무엇을 남겼을까요? 

온스테이지 영상 덕분에 해외 무대에 서게 된 인디 뮤지션이 꽤 있어요. 온스테이지 영상으로 SXSW 같은 해외 음악 페스티벌의 공연 기획자, 프로모터들에 눈의 띈 거죠. 온스테이지에 참여한 뮤지션이라면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면접으로 치면 ‘서류전형은 가볍게 통과’한 식이죠. 

네이버라는 국내 제1 검색 플랫폼에 내 음악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 컸다고 생각해요. 뭐 그렇다고 한국 음악 시장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디 뮤지션에게 남긴 건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생각해요.


2023년, 온스테이지가 13년만에 막을 내렸어요.
2023년, 온스테이지가 13년만에 막을 내렸어요.

 

 

6. 한국엔 오랜 명맥을 유지하는 라이브 콘텐츠가 참 없어요. 이유가 뭘까요?

인디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아서죠. 요즘엔 유명한 가수도 라이브 영상 조회수가 5만을 못 넘기는 일도 부지기수거든요. 라이브 영상 말고도 다른 재밌는 콘텐츠가 너무 많으니까, 알고리즘을 타지 못하기 때문이죠. 자본을 들였는데 조회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어요. 온스테이지가 13년간 어려운 일 해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 음악 시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죠. 근대화 이후에 여유 있는 환경에서 다양한 장르 음악을 들어왔던 기성세대가 얼마나 될까요. 일본과 비교해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장르 음악의 팬층을 딴딴하게 쌓아 왔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했던 거죠. 한국에선 음악이 예술로 인정받고, 돈을 지불하며 듣게 된 것도 사실 몇 년 안 되었잖아요.

오근재 감독님께서 제작한 '스튜디오 기와' 영상 (w/ 유니버설 뮤직)

 

 

7. 돈 많이 벌려면 아이돌 영상 만드는 게 나을 텐데 최고은, 잠비나이, 강태구 등 유독 인디 아티스트 영상을 많이 제작하셨어요. 

어릴 적엔 아이돌, 광고 업계가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괜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물론 요즘은 180도 바뀌어서 K팝, 광고 영상도 만들고 있고요.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그냥 빠르게 소비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좀 느린 사람이에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쌓아가는 일을 하는 게 잘 맞아요. 그게 저답게 일하는 방식이에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후회한 적 없어요. 요즘엔 김성모 화백처럼 다작하며 기안84처럼 거리낌 없는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지만 많은 걸 창작하는 사람이요.

 

 

8. 지금까지 많은 음악 영상을 제작하셨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영상을 꼽아 본다면요?

잠비나이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뮤직비디오를 꼽을래요. 사무실에 놀러 오시는 분들께 강제로 보여주는 영상 중 하나예요.

 

 

9. 넥스트 오근재를 꿈꾸는 영상 꿈나무가 많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이들이 미래에 라이브 영상을 촬영하게 된다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조언 부탁드려요. 

강의를 몇 년간 했었는데요. 그때가 돼야만 깨닫는 게 있어서 쉽게 조언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20대를 잘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영상 일도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인정받고,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많거든요. 그럼, 30대가 진짜 재밌을 거예요.

염세적인 성격 때문인지 이 말은 하고 싶었어요. 사실 라이브 콘텐츠는 제 시대에서 끝났다고 생각해요. 제 말이 틀렸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라이브 음악 영상은 영상 제작자가 잘 만들어서 될 건 아니에요. 음악가가 잘 연주한 걸 고스란히 담아내면 되거든요. 참 쉽죠. 저는 고생한 게 없었어요. 음악가가 고생입니다.

 

 

10. 좋아하는 것 vs 잘하는 것. 뭐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요. 감독님 의견은요?

벌어먹고 살고 있는 걸 잘하는 걸로 만드는 게 효율이 높죠. 잘하게 되면 좋아하게 되고요. 저는 누워 있는 걸 잘하고 그게 지금 너무 좋거든요. (죄송합니다.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걸 떠올리다 보니)

첨부 이미지

 

11.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금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셨는지요.

처음 영상 제작자가 되면서 인디음악의 백과사전을 만들겠다고 거창한 꿈을 꿨어요. 그건 온스테이지 하면서 절반 이상 이룬 것 같아요. 그것보다 창작 방식에 제한을 두지 말자고 항상 애썼는데, 영상만 고집해 왔던 것 같아요. 이제는 다른 방식의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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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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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영의 프로필 이미지

    다영

    0
    4 months 전

    😍😍

    ㄴ 답글
  • 회의 프로필 이미지

    0
    4 months 전

    스껄~~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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