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 하는 사람들

재즈 잡지에서 글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재즈피플 류희성 기자를 소개합니다.

2024.11.25 | 조회 1.0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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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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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스 오브 마치

음악 일 하는 사람들의 불안, 실패, 그리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성공의 기쁨, 그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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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소개 해주세요.

재즈 잡지 <재즈피플> 기자 류희성입니다. 기자 생활한 지 올해로 13년 됐네요. 가끔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번역도 하고 있어요. 

 

 

2. 거의 10년 만에 뵙는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공연 다니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달라진 건 거의 없어요. 아, 4년 전부터 유튜브도 시작했어요 <재즈 기자>라고. 17일엔 피크닉에서 음악감상회도 합니다. 많은 분 오셔서 좋은 시간 보내고 가시면 좋겠어요. 

(아쉽게도 매진이라고 합니다 🥲)
(아쉽게도 매진이라고 합니다 🥲)

 

3. 본업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재즈피플>은 어떤 잡지인가요?

재즈의 대중화를 위해 2006년 김광현 편집장님께서 창간한 재즈 전문 월간지에요. 요령 부리지 않고 재즈 이야기만 다루고 있어요. 간혹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항상 신경 쓰고 있어요.  

직원은 2명. 편집장님은 편집, 인쇄, 광고, 영업… 아무튼 전부 다 하시고, 저는 주로 취재, 기사 작성, 편집을 맡고 있어요.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객원 필자님도 몇 분 계시고요. 워낙 재즈를 좋아하시고, 박식하셔서 늘 근사한 기사를 써주고 계십니다.


<재즈피플 2024년 11월호>
<재즈피플 2024년 11월호>

 

4. 국내 손꼽히는 음악 전문지의 기자님이신데요. 어쩌다 기자가 되신 건가요?

우선, 잡지사는 신문사처럼 언론 고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람들 생각처럼 기자 되는 게 어렵지는 않아요. 

저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개발 일은 적성에 안 맞았고, 음악이 좋아서 앨범 리뷰 꾸준히 썼고, 음악 업계 기웃거리다가, 힙합엘이에 기고했는데, 붙어서 덜컥 객원 기자 생활을 하게 됐고, 재즈피플로 직장을 옮겨서, 지금까지 계속 취재하고, 기사 쓰고 있는 거예요. 그게 다예요. 

 

 

5. 군 시절에도 음악 기사를 쓰셨다고요. 

네, <HIM>이라고 군대 잡지가 있거든요. 힘(Strength)과 남자,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거라 추정되는 아무튼 그런 잡지에요. 제가 코너를 하나 맡아 연재했어요. 

<재즈피플>에 지원했던 것도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일병 때였나? 재즈피플에서 필자를 구한다는 거예요. CD는 부대 사서함으로 받고, 글은 싸지방에서 써서 보내면 되니까, 이거다 싶어서 지원했죠. 처음엔 편집장님께서 거절하셨는데, 계속 설득했더니 진짜 부대 사서함으로 CD를 보내 주셨어요. 당장 리뷰를 써서 보냈죠. 편집장님께서 제가 쓴 글이 괜찮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재즈피플과 인연이 시작된 거예요. 

 

 

6. 기자님 유년 시절도 궁금합니다. 이집트에서 태어나셨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주재원이셨어요. 덕분에(?) 우크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벨기에, 튀니지, 등 세계 각지에서 살다가 고2 때 한국에 돌아왔어요. 

어릴 적엔 MTV, 카툰 네트워크를 즐겨 봤어요. 자연스레 팝과 힙합을 듣게 됐고요. 제가 재즈나 블루스, 힙합을 좋아하고, 지금까지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유년 시절 해외살이했던 게 자양분이 됐을 거예요. 그때 영어 배워와서 스탄 겟츠 평전도 번역하고, 퀸시 존스 에세이 번역본도 낼 수 있었죠. 

<삶과 창의성에 대하여> 저자: 퀸시 존스 / 옮긴이: 류희성

<Nobody Else But Me: A Portrait of Stan Getz> 저자: 데이브 젤리 / 옮긴이: 류희성

 

 

7. 재즈, 글, 잡지. 벌어 먹고살기 어려운 걸로 치면 그랜드슬램이에요. 애환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영상과 숏폼의 시대에 음악을 글로 풀어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데요. 쉽진 않죠. 큰돈 벌기 힘든 것도 문제지만, 독자 반응을 기민하게 살피지 못한다는 더 문제에요. 답답하죠. 

유튜브는 좋아요, 댓글, 조회수를 보면 실시간으로 반응을 살필 수 있잖아요. 잡지는 안 그래요. 가끔 오탈자 있다고 항의 전화 오는 것 말고는 이걸 과연 누가 읽고 있나, 알 수도 없어요. 근데 2명이 만드는 월간지잖아요. 매달 마감하느라 고생스러워요. 들이는 품에 비해 결과가 달콤한가? 우리의 고생이 자기만족에 그치는 건 아닐까? 늘 고민하게 됩니다.

 

 

8. 그럼 어떻게 버티고 계세요?

5~6년 전에 롯데리아에서 밥을 먹는데, 제 앞에 서 있던 한 여성분께서 재즈피플 에코백을 메고 있는 거예요. 어라? 싶어서 계속 관찰했어요. 그러더니 자리에 앉아 에코백에서 잡지를 꺼내더니 햄버거도 안 먹고 기사를 읽더라고요.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왜 이렇게 어렵게 썼냐고 욕 좀 먹은 기사였는데, 아무튼 제가 쓴 걸 누군가 읽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힘이 되더라고요. 그런 순간들이 종종 생겨요. 그럴 때마다 계속 해 보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사소한 사건인데, 그런 데서 계속해 볼 용기를 얻는 거 보면, ‘내가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돈벌이나 직장 생활의 애환 뭐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운명 같고, 천직 같고, 그래요.

 

 

9. 유튜브 이야기도 해봐야죠. ‘재즈기자’ 35만 구독자 축하해요. 바쁘신데 대체 언제 이렇게 키우셨어요? 

불안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본업이 글 쓰는 기자인데 점점 글이 힘을 잃어가더라고요. 매달 힘들게 만든 잡지를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았고, 출간했던 책도 판매가 저조했거든요. 그래서 기사 써놓은 걸 영상으로 만들어 볼까? 싶었죠. 

처음엔 해설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조회수가 잘 안 나오더라구요.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몇 개 만들어 올렸더니, 알고리즘을 타더라고요. 선곡이 업이라 자신 있었고, 해설 콘텐츠보다 편집 시간도 덜 들었고요. 아무튼 5년 동안 35만 구독자가 모였어요. 행운이죠. 

요즘엔 다시 해설 콘텐츠도 만들고, 인터뷰 영상도 만들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장 즐겨듣는 <재즈기자>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에요
제가 가장 즐겨듣는 <재즈기자>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에요

 

10. 직장 다니고, 유튜브하고, 책도 쓰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평론도 하셨잖아요. 이걸 어떻게 다 하세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은 돈도 안 주고, 번거로운 일만 시켜요. 그치만 굉장히 명예로운 일이지요. 뿌듯했어요. 한 우물 오랫동안 팠더니 알아봐 주시는 것 같잖아요. 

살면서 뭘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딱히 안 해봤고, 욕심 많은 사람도 아닌데, 어째 바쁘게 살고 있네요.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찾아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은 말 또 하지만, 잘하고 싶은 걸 발견한 게 행운이었어요. 

 

 

11. 퇴사를 생각해 본 적 없으셨나요? 10년 동안 편집장님과 단둘이 잡지 만들다 보면 잡생각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편집장님은 69년생. 저는 90년생. 21살 차이예요. 세대 차이만큼 늘 이견이 있어요. 저는 계획대로 일이 안 풀리면 예민해지는데, 편집장님은 잘 참으셔요. 저는 늘 독촉하고, 편집장님은 항상 여유가 넘치셔요. 

처음엔 달라서 답답했죠. 근데 돌아보면, 편집장님께서 잡지에 관한 부정적인 피드백도 차분히 듣고, 고쳐나간 덕분에 재즈피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축적한 인품, 지식, 노하우는 절대 못 이겨요. 김광현 편집장님은 그런 걸 깨닫게 해주신 분이에요. 말해놓고 보니 궁합이 나쁘지 않네요 🙂

그리고 <재즈피플>을 지금 2명이 하고 있는데, 제가 나가면 재즈펄슨(person)이 되거든요. 제 퇴사가 걱정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류희성 기자님(좌) & 김광현 편집장님(우) / 출처: 동아일보 (취재: 임희윤 / 사진: 최혁중)
류희성 기자님(좌) & 김광현 편집장님(우) / 출처: 동아일보 (취재: 임희윤 / 사진: 최혁중)

 

12. <재즈기자> 류희성은 원래 재즈를 좋아했나요?

어릴 적엔 흑인 음악, 특히 힙합을 좋아했어요. 근데 힙합, 재즈, 블루스, 이 흑인 음악이란 게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가 다 같거든요. 그래서 가리지 않고 전부 즐겨 들어요. 

본격적으로 재즈를 좋아하게 된 건 대학 시절부터예요. 학교 앞 커피빈에 자주 갔거든요. 사람 구경하고, 음악도 들으러. 하루는 트럼펫 연주곡인데 오케스트라가 서포트하는, 아무튼 어떤 곡이 흘러나왔어요. 옛날엔 음악 검색도 없었잖아요. 그 곡이 너무 좋았는데,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그 곡이 뭔지 몰라요. 클리포드 브라운 [With Strings] 앨범이었던 것 같은데, 이후에 그 앨범 들으면서 점점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13. 가장 기억에 남는 재즈 뮤지션은 누구예요?

최근에 인터뷰한 베이스 연주자, 에디 고메즈. 빌 에반스 트리오에서 11년 동안 활동한 연주자로 잘 알려진 분이에요. 지난 10월에 내한 공연하러 오셨어요.  

빌 에반스의 죽음에 대해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거든요. 빌 에반스의 친구이자, 작가 진 리스(Gene Lees)는 친구의 죽음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긴 자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구요. 에디 고메즈는 “빌 에반스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 같다”고 표현하시더라고요. 문학적이죠? 그러면서 “자살은 그렇게 길게 안 된다”며 자살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셨던 게 기억나요. 물론, 공연도 정말 좋았고요. 

에디 고메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유튜브 <재즈기자>에서 확인해 보세요.
에디 고메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유튜브 <재즈기자>에서 확인해 보세요.

 

14. 마지막 질문입니다. 음악 업계 기자를 꿈꾸는 분이 많을 거예요. 응원(또는 조언) 한 마디 부탁드려요. 

사실 추천하고 싶은 일은 아니에요. 돈을 많이 버나? 큰 명예를 얻나? 잘 모르겠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버티기 어려운 일이에요. 음악 기자 생활 오래 하다 보면 음악이 싫어질 수도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싫어질 수도 있어요. 음악 업계가 모조리 싫어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큰 거 바라지 않고, 애정이 있다면 계속할 수 있을 거예요. 

음악 업계 선배들이 오래 버티면 잘 될 거란 말을 자주 하네요.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요. 

 


🇧🇷 오늘의 추천 음악 

워터스 오브 마치(Waters of March)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72년도에 발표한 'Águas De Março’의 영어 제목이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죠. 3월에 고향 리우데자네이루에 내리는 비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곡은, 당시 격동적인 브라질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됐지만, 표면적으론 자연의 순환, 생명의 약속(the promise of life)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쩐지 제가 하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음악 업계에서 지난 10년 동안 일했어요. 앞으로도 음악 업계를 떠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요. 그치만 저는 언젠가 잘리거나, 회사가 망해서 없어지거나, 혹은 죽어서 더 이상 제가 사랑하는 이 일을 못 하게 되는 날이 오겠죠. 그래서 무언가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썩어 없어진 자리에 새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제가 써놓은 편지가 누군가의 꿈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워터스 오브 마치'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를 시작해 보기로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Antonio Carlos Jobim & Elis Regina - Águas de Març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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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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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터스 오브 마치의 프로필 이미지

    워터스 오브 마치

    0
    5 months 전

    아이고, 섬네일 크기를 조정해야겠네요. 오늘 퇴근하고 보기좋게 수정해 놓겠습니다 :)

    ㄴ 답글
  • 느티의 프로필 이미지

    느티

    0
    5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히징어의 프로필 이미지

    히징어

    0
    5 months 전

    재즈펄슨에서 현웃이 터졌습니다 (ㅋㅋ)

    ㄴ 답글 (1)
© 2025 워터스 오브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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