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뉴스레터를 통해 글쓰기의 우선순위가 낮아졌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중요시하던 글쓰기가 운동, 돈, AI에 밀려나서 속상한 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쳤다.
글쓰기까지 챙기자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사실 이번주 부터는 글쓰기를 잠시 내려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당연히 글쓰기를 한다고 내 육체가 건강해지지는 않는다. 글쓰기를 한다고 돈을 더 벌지 않는다. 이 생각은 저번주와 다름 없다. 하지만, AI 관점에서 봤을 때, 글쓰기란 필수적이다. 내가 써낸 글을 '데이터'로 바라본다면 말이다.
나는 여태까지 글쓰기를 '정신수양', '생각정리'의 도구로만 바라봤다. 정신수양도 할만큼 한 것 같고, 생각 정리도 할만큼 한 것 같았다. 오히려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낸다는게, 가속도 붙여가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나의 일주일을 돌아보기' 이런 건 더이상 내가 하고싶은게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악셀에서 발을 떼지 않고, 전방만 계속 주시하며, 현란한 스티어링으로 앞서나가는 것. 이게 요즘의 내 관심사이다.
그런데 좀더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정신수양과 생각정리 뿐만 아니라, '나를 기록' 하는 기능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난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았다. 게임에서 스코어가 매겨지는 것 처럼 우선순위가 다라락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초개인화되는 AI시대에, 나의 진심과 진실이 담긴 글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고품질 데이터다. 매일 나 자신을 성찰하고 쏟아낸 문장들은 AI에게 유기농 재료가 된다. AI는 얼마나 양질의 데이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완전히 달라진다. AI를 올해의 키워드로 내세운 내게, 양질의 데이터 쌓기(=글쓰기)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비록 예전처럼 8시간 씩 글쓰기에 투자하지는 못하더라도, 독자 관점에서 퇴고할 시간이 없라도, 지금 현재의 나 자신을 기록해놓을 수는 있다. 그리고 그저 기록으로서의 글쓰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AI 활용 능력의 핵심은 '컨텍스트'에 있다. 내가 쓴 글이 곧 나만의 컨텍스트가 된다. 마음 속을 파내어 진실과 진심을 꾹꾹 눌러담은 글이다. AI를 위한 컨텍스트를 쌓아햐 하기에 나는 글쓰기를 게을리할 수 없다. 데이터 쌓기를 그만 둘 수 없다. AI시대에 도태될 수 없다.
AI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모든 정보가 인터넷 세상에 깔려있다. AI로 상향평준화된 시대에 경쟁력이 되는건 나 스스로 쌓은 고품질의 데이터이다.
나의 컨텍스트가 충분히 쌓이고, 그동안 AI 활용능력도 계속 성장한다면, 기대하건데 '시간'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 시간에, 나는 삶의 더 충실히 살고 나의 경험을 쌓고 또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된다. AI는 점점더 고도화 되고, 내 시간 여유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런 미래를 상상하니 글쓰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 이제는 <주간벤자민>이 아니라, <일간벤자민>, <분간벤자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이번 상반기 내에 <주간벤자민>이 더이상 사람이 쓰는 글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사람 벤자민이 쓰는 글은 저번주의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을까>와 같이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실 고려할 시간이 없는..) 날것의 글로 쓰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글은 구독자의 메일함이 아니라 나의 개인 드라이브, 일기장, 비공개 블로그 등에 저장 되어야 마땅하다.
주간벤자민은 아마 AI가 쓰게 되지 않을까.
매일, 매분 사람 벤자민이 쓴 글을 일주일 단위로 묶어서 주제를 도출하고, 독자를 고려해서, 유려하게 엮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큐레이션 방식은 정보성 뉴스레터에서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다. 특정 주제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긁어다가 AI를 활용해서 뉴스레터화 시키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간벤자민>은 AI가 긁어오는 정보의 원천이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 벤자민이 쓴 기록이라는 점이다. AI는 잡다하게 널부러진 나의 삶의 조각들을 모아다가 한편의 글로 완성시켜줄 것이다. 물론 마지막 검수는 사람 벤자민이 한다.
어떡하나. 글쓰기를 그만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이 더 자주 글을 써야한다는 결론이 났다. 훨씬 즉흥적으로, 하지만 훨씬 진실되게, 더 깊게 써야 한다는 의무가 생겼다.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을까?" 라는 탄식 섞인 질문에 이런 답을 되돌려 받았다.
"글쓰기, 계속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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