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짜증이난다. 화가난다.
아쉽고 슬프다고 이전 글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발행 하자마자 짜증이 확 끌어올랐다. 하루종일도 거뜬히 쓸 수 있는데, 왜 나는 한시간만에 부랴부랴 마무리 지어야 하는거지? 문장 하나, 예시 하나 더 보태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글쓰기에 한 시간을 더 못 썼더니, 쓴 글에 대한 아쉬움을 두시간 동안 토로하고 있더라.
발행하고서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은 글쓰기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낸 것 중 하나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줘서 제법 좋아하게되었다. 오늘은 어째 바벨을 들어올릴 때마다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 운동 얘는 뭔데 자꾸 내 생각을 지우려하지? 나는 아직 글쓰기와 볼일이 남았는데, 왜 이렇게 자꾸 눈치없이 쇳덩이를 내 눈 앞에 들이미는건지 모르겠다.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셌다면 바벨을 휘둘러서 거울 속 '운동하는 내 모습'을 부숴버렸을 것 이다.
어제의 나는 운동 할 시간도 없었다.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저녁 7시에 집으로 출근을 하는 셈이다. 옷도 못 갈아입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되었다. 그제서야 잠깐의 정적과 고요함을 느꼈다. 할 일을 다 해치운 모니터를 보니 마음이 후련했다.
깊은 한숨을 크게 내뱉고 욕실로 향했다.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여유롭게 따듯한 물방울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느끼며 샤워 했다. 마치 명상하는 마음으로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다. 수증기로 가득한 욕실이 산 속 깊은 무릉도원 같기도 하다.
주말에는 유튜브를 틀어봤다. 내 알고리즘은 AI와 돈, 투자로 완전히 잠식됐다. 제미나이, 클로드코드 같은 실용적 내용부터 AI시대에 살아남는 법 같은 원론적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월급과 가계부에 대한 내용부터 주식 인사이트, 부동산 정책에 관한 영상으로도 가득차있었다. 유튜브를 보지 않더라도 경제 서적이나 창업, 부업 책을 폈다.
우연찮게 TV에서 <삼시세끼>를 봤다. 바다가 보이는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삼시세끼를 해먹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속 출연진의 생활은 참 단순하다. 고민이라곤 '오늘 뭐 먹지?' 뿐이었다. 일과라곤 수렵채취, 불 피우기 그리고 요리하기가 전부였다. 그 단순한 삶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하루의 고민이 삼시세끼뿐이라니, 그리고 끼니를 해결하며 자연을 만끽하는 삶이라니.
유해진이 통발을 확인하러 섬 이쪽저쪽 언덕 능선을 따라 뛰어다녔다. 드론뷰로 바다와 함께 그 장면을 보여주었다. 문득 하와이의 바다와 산이 떠올랐다. 하와이 교환학생 시절 가장 큰 고민은 '오늘 뭐하고 놀지?'였다. 동서남북 골고루 바다에 뛰어들고, 산을 뛰어다녔더 랬다. 아, 나도 하와이는 못 가더라도 어디 인터넷 잘 터지는 어촌에 처박혀서 '오늘은 뭐 쓰지?' 고민만 하며 지내면 안될까.
투자고 뭐고, AI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딱 내가 하루치 걸어다닐 수 있는 영역에서, 하루치의 밥을 먹고, 하루치의 공기를 마시며, 하루치의 글만 써내면 안될까.
아아 누군들 이런 삶을 꿈꾸지 않겠나. 언젠가 그런 삶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이겠지. AI시대를 기회 삼아 사회적 가치를 높이려는 것 이겠지. 그리고 이 모든걸 과정 버티고도 건강한 삶을 누려야하기에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 이겠지.
현대인은 자본주의라는 '가상 현실'을 사는 것 같다. '진짜 삶'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글 속에 있는데 말이다. 가상 현실은 진짜 삶의 요소들을 부정하고 배척한다. 반대로 진짜 삶은 가상 현실의 것들을 세속적이라 비난한다.
가상 현실도, 진짜 삶도 챙겨야 하는 참 복잡한 세상이다.
가상 현실을 사느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는 진짜 삶을 한 조각의 글로 남겨본다.
...하. 글 다 썼니?
이제 현실을 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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