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구독자 님을 위해

어른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점점 나이를 먹고, 한 해 한 해 달라져가는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어른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나의 미래였다는 걸 깨닫곤 하는 요즘입니다.

어렸을 때는 참 빨리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나이를 먹어보니 생각보다 어른의 삶이라고 더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아니, 어쩌면 더 힘든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늘어나는 나이만큼,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런 걸 보면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의 숫자가 바뀐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가끔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그럼 지금 레터를 읽고 계신 구독자 님에게도 물어볼게요. 구독자 님은 지금 어른이신가요?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린 시절, 아무리 자유분방한 방목형 육아를 추구하던 우리 부모님조차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것들이 몇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커피였는데, 비교적 자유로웠던 배달음식이나 컴퓨터 게임과는 다르게 커피만큼은 우리 집에서 유독 엄격했다. 카페에서 파는 아메리카노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카페인보다 당이 훨씬 높아 보이는, 사실상 커피 맛 음료에 가까워 보이는 믹스 커피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집에 손님들이 오는 날이면 혹여나 금기된 음료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도 생길까 싶어 괜히 주위를 어슬렁거리곤 했다. 마치 선악과를 눈앞에 둔 아담과 이브처럼, 8살의 나에게 커피는 감히 어길 수 없는 사회적 금기와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커피를 절대로 마실 수 없다는 법이 있는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그토록 참아왔던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됐고, 어른의 맛은 생각보다 맛이 없다는 씁쓸한 교훈만 혀끝에 맴돌았다. 

나에게 어른은 한마디로, '금기를 깰 수 있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 어른이란 커피라는 금지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엄청난 권리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들 '어른'이라는 존재는 크고 이상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가령 모든 것에 서툴렀던 철부지 주인공이 시련을 통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성장물 서사에서 어른이 맡은 역할은 주로 누군가를 이끄는 지혜로운 현자와도 같은 역할이다. 미성숙한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의 롤모델이 되어 그의 성장을 돕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아닌, 어른의 입장에서 본 어른은 어떤 존재일까. 어른은 어른의 존재를, 어른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어른스럽고, 철학적인 고민이 담겨있는 이 주제의 해답은 뜻밖에도 가장 어른과 멀어 보이는 영화인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에 담겨있다. 

영화는 20세기 박물관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어른들의 모든 어린 시절이 담겨있는, 말 그대로 어른들이 어린이였던 시절 가지고 있던 모든 추억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어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치 자신들이 누렸던 모든 과거의 영광과 그리움들이 현재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짱구와 친구들은, 당연하겠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이런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충실히 구현해낸 이곳에서 어른들은 점점 현재가 아닌 과거로 퇴행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일궈놓은 모든 결과물들은 정작 여전히 현재에 머물러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세기 박물관이 풍기는 과거의 달콤한 냄새에 취한 어른들은 가족으로 상징되는 현재를 포기한 채, 몸만 어른이 된 아이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어른 역시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어른들이 책임을 버리고 떠나버린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홀로 남아 방치된다.

이 이야기가 현실이었다면 이미 아이들의 최후가 그려지겠지만, 영화는 그럴 생각이 없다. '힘없고 연약한 아이들을 지키는 강하고 지혜로운 어른'이라는 익숙한 패러다임을 뒤집어, 어른들을 구하는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제시해 낸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만 허용되는, 자신들에게는 터부시 되었던 것들을 하나 둘 깨부면서 어른으로서의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다.     

주인공 짱구는 동생 짱아를 등에 업고 육아의 무게를 경험하기도 하고, 운전이라는 어른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 둘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인 신형만이 어른으로서 걸어왔던 발자취들을 이해하게 된다. <업>의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처럼 영화는 별다른 대사 없이 영상과 음악만으로 한 사람의 삶, 어른이 되어가는 삶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 걸어왔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과거가 아닌 지금을 살아갈 이유까지 말한다. 아버지 신형만이 그토록 과거에 집착했던 이유인 '월석'이 실체가 있는 것과 달리, 현재를 살아가게 만드는 '발 냄새'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점도 우리에게 많은 해석할 거리를 남겨준다.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분명하게 '지금'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과, 실체가 분명하지만 '과거'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라는 현재의 기술을 활용하는 빌런 켄과,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의 산물인 '계단'을 올라가는 짱구. 이렇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의 갈등은 영화 내에서 몇 번이고 다시 등장한다. 

영화는 어른들의 도움 없이, 넘어지고 피가 흘러도 끝까지 달려가는 짱구의 모습을 보여주며 부모의 대를 이어 어른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우리가 그랬듯, 또 아버지 신형만이 그랬듯 언젠가 짱구 역시 5살이 아닌 한 가족을 책임지는 어른이 될테니.

시간이 지나면 결국 '돌멩이'에 불과한 월석을 보기 위해 집착했던 과거의 신형만처럼, 우리 역시 눈앞의 현실을 잊은 채 과거의 것들에 한 눈을 팔곤 한다. 아무런 형체가 없어 보이는 지금 역시, 언젠가 찬란한 과거가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말이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대립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경제 부흥기를 경험했던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른이 된 '지금'의 가치를 말하고,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깊지만 무겁지 않게 찬찬히 담아낸다.  

영화의 이런 메시지들은 그동안 아동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쓸쓸하게 버팀목이 되어야만 했던 어른들에게, 가끔은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이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채 애타게 헤매고 있는 어른들에게,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자며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는 영화. 

글로 이것저것 해보는 콘텐츠 에디터.

영화와 권태기를 맞이했다가

차츰차츰 관계를 회복하는 중

🍿 이번 주 볼거리

<유전>, <미드소마> 등의 작품으로 세상을 충격에 빠트린 아리 애스터 감독의 첫 코미디 영화. 이번 주에 소개할 작품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다. 

불안장애를 가진 보(호아킨 피닉스)가 엄마의 장례식에 가는 과정을 초현실적으로 풀어낸 작품인데, 필자가 최근에 본 작품 중 가장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영상화하는데 집중하려는 듯, 영화는 연이어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나간다.

다만 엄청난 야심과 큰 예산 (제작비만 400억 원 정도로, 중소 영화사 A24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엄청난 잠재력이 전부 드러나지는 않는다. 영화 내내 수많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지지만, 그 아이디어들이 융합이 잘 됐냐는 질문에 필자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할 것 같다.

필자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나자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대체 뭘 본거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 다 같이 영화에 대해 10분가량 극장 안에서 이야기할 정도로 영화 자체는 독특하고 난해하다. (기본적인 이야기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안에 있는 서브플롯들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세 시간가량의 러닝타임 중에서 30분~1시간가량은 덜어내도 좋았을 것 같지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한 감독의 욕심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다. 아마 한국에서 흥행할 가능성은 전무하기에 (10만 명도 못 채우지 않을까 예상한다) 혹시라도 개봉한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관람하길 바란다.

영화와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24살 너드.

취미로 가끔씩 영화도 만든다.

"인간은 죽음이 가까워졌을때 가장 진실되어진다." 인류의 멸망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 즉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들은 대개 이 명제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죽음을 앞두고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들을 지켜보는 것이 이런 장르 영화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돈 룩 업> 역시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혜성 충돌을 앞두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돈만 밝히는 기업인, 그런 기업인과 결탁한 정치인, 진실이 아닌 자극적인 것만 보도하는 언론, 반 엘리트주의에 휩싸인 사회 등등. 영화는 마치 이 현대사회의 단면을 영화 한 편에 모두 욱여넣으려는 듯, 지구 멸망을 앞두고 일어나는 광기 어린 순간들을 쉴 틈 없이 보여주며 질주한다.   

그러나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가 보여줬던 자극적인 연출에 비해, 남는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만 남은 채, 정작 이 이야기를 영화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에게는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않고 상투적인 메시지로 막을 내린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글로 이것저것 해보는 콘텐츠 에디터.

영화와 권태기를 맞이했다가

차츰차츰 관계를 회복하는 중

5초만에 피드백 남기기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찾아가는 <주간영화>는 아직 성장 중!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