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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영화

2022.06.14 | 조회 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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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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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요새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자주 내리지 않나요? 이번 주 볼거리에서는 요즘같이 비가 오는 날에 보기 좋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해요. 어떤 영화일지 확인해 보세요. 주간적인 영화썰에서 3주간 달려온 에디터 우기의 연기 특훈 썰, 그 마지막 이야기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  

참! 저는 요즘 새로운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어요. 제목은 '오늘은 쉽니다.'에요. 여기서는 주간영화에서 하지 못했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궁금하시죠? 여기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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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이 되고 싶었지만 - 마지막 이야기

그날 아침 일찍 김포에 있는 촬영장에 도착했다. 감독님께 인사를 급하게 드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다른 배우분들과 함께 구석에 있는 의자로 향했다. 내 씬을 찍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하게 빌면서. 그러나 촬영은 시작부터 삐걱이기 시작했다.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의 의견 불일치로 딜레이가 너무 심해지는 것이다. 슛이 계속 늦어지는 만큼, 아버지 역을 맡은 분의 표정도 갈수록 어두워지셨다. ‘너어무 늦어지네요…그쵸?’ 나와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어색하게 ‘하하하’ 웃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배우가 제작진을 신뢰하지 않으면 작품이 제대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시간이 조금 오버 되긴했지만 점심먹기 전에 오전 씬을 다 찍을 수 있어서, 오후에 찍게 될 내 씬도 예정대로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는 동안 감독님이 나와 아버지 배우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리허설을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다른 스태프분들이 근처에서 슛을 준비하고 계시기도 하고, 리허설이기도 해서 감정을 빼고 합을 맞춰봤다. 그렇게 우리 대사를 읊어보고 감독님께선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아버지 배우분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다시 시나리오를 펼치셨다.

‘자, 그 보자, 너 아직 대사 다 안 외웠지?’

나는 그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이유는 굉장히 간단하고 찌질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대사를 외우려고 노력했는데.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공부했는데. 대사조차 안 외웠다니! (물론 상대 배우분이 내가 열심히 했는지 알 리가 없다. 다시 생각해도 찌질함 그 자체인 짜증이다.)

나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아 그냥 리허설이어가지고 일단은 감정 빼고 해봤는데 그럼 따로 준비해 본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감독님께서 끄덕이셨고 상대 배우님도 ‘그.. 그래 해보자 그럼’이라 하셨다. 그렇게 리허설 겸 슛을 들어갔다.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6에 5에 1’

슬레이트가 내 눈앞에서 쳐졌다.

‘레디… 액션’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에 빠졌다. 누나가 죽었다. 아빠 때문에 평생 집에 갇혀 살다가 뭐 좀 해 보려 하니까 교통사고를 당해서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누나,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아빠를 용서한 적이 없었다.

‘그땐 나도 힘들었어 나도 힘들어서 그랬다고! 내 친구들, 내 친구들도 나 같은 애들 많은데 걔네는 그냥 자식끼리 잘 보고 살아’

변명, 또 변명이다.

‘그리고 너네 누나는 교통사고로 죽은거지’

나는 잠시 내렸던 시선을 다시 올리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길 바랐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더라도, 그래도 가족이라서, 혹시라도 다시 시작해 볼 수 없을까 내심 기대하고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그건.. 그건 내 탓은 아니잖아’

기대한 내가 바보 같다. 이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사람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모르는 척을 하려는거지?

‘진짜 몰라서 그러세요?!’

나는 아버지를 향해 몸을 들이밀고 소리쳤다. 아버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 난 이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준 만큼 그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싶다.

‘누나… 아버지 때문에 평생 방에만 틀어박혀 살다가…’

그렇다. 누나는 아빠 때문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사실 시나리오엔 나와있진 않았지만 난 내 머릿속으론 누나도 이 가정에서 벗어나 다른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이제 뭐 좀 해보려고 하니까 죽었다구요!’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아빠가 나처럼 아팠으면 좋겠다. 그동안 쌓인 상처와 한을 아빠에게 풀려는 듯이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싶다. 하지만 막상 외치자 허탈해졌다. 누나는 이미 죽었고, 우리 가족은 이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내리고 멍하게 앞을 쳐다봤다.

‘제가 무슨 소리를 기대하고 여기 앉았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식탁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문을 쾅 닫았다. 문밖에 서자 숨을 가다듬었다. 어땠지? 괜찮았나? 리허설 때 한 거랑 엄청 달랐는데 괜찮을까?

‘컷’ 소리가 들리자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들렸다. 그때 직감했다. ‘아 다행히 끔찍하진 않았구나’ 스태프분들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니 왜 갑자기 박수에요.’

나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마음 같아선 춤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겉으론 머쓱한 척 웃었다.

‘아 감독님 너무 과하지 않았나요?’

‘아냐아냐~ 좋았어’ 감독님께서 엄지 척 해주셨다.

‘야 완전 일취월장했는데! 속성으로 늘었구만!’

아버지 배우님께서도 신나셨다.

‘밥풀 튀어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입에 있던 밥풀이 상대 배우 얼굴에 튀었었다.

‘아 아냐아냐!~ 이게 다 몰입해서 나오는 건데! 더 해줘 더! 하하’

신이 나셨는지 안 치시던 장난도 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나머지 씬들도 한 두 테이크 만에 끝내서 천만다행히도 원래 예정된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그날 촬영이 끝나자 스태프분들도 한숨 돌릴 수 있었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한껏 편해진 분위기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2년 만의 촬영을 기적적으로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연기가 얼마나 재밌는 건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다.

에디터 우기
에디터 우기

영화와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24살 너드.

취미로 가끔씩 영화도 만든다.


🍿 이번 주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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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준익 감독의 감성을 좋아한다. <사도>와 <동주>처럼, 이준익 감독의 시대극에는 애한이라고 해야 할지, 먹먹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몽글한 무언가가 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자극하는 그런 감성들은 강요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다.  

<사도>역시 그런 작품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영화 내내 5번은 울었던 기억이 있다. 기존 신파 영화들이 인물이 처한 상황으로 관객을 울게 만든다면, <사도>는 상황이 아닌 인물로 울린다. 아버지와 아들, 두 인물의 감정을 천천히 쌓아 올리다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뜨린다. 펄펄 끓어오르는 유아인의 사도세자와, 한없이 차디찬 송강호의 영조. 영화 내내 쉴 틈 없이 부딪히던 두 인물의 상반된 에너지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 버리는 연출이 먹먹함을 더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세자를 둘러싼 역사적인 상황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철저히 영조와 사도세자 두 인물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에 집중한다. 서로에게 향했던 '애증'이라는 감정이 '증오'로 뒤바뀌며 시작되는 비극. 비가 오는 날이면, 이들의 비극이 더 생각난다. 

에디터 혀기
에디터 혀기

글로 이것저것 해보는 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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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눈꽃의 프로필 이미지

    주눈꽃

    0
    over 2 years 전

    매주 보내주시는 뉴스레터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에디터 우기님의 연기 과정을 쓴 이야기에 몰입해 제가 한 씬을 성공한 듯한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다른 스텝들과 배우님들께서 칭찬해주시고 박수쳐주시는 모습이 현장 분위기도 좋아보이고요. 응원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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