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세탁소

삶도 세탁이 가능했더라면 다른 꿈을 꿨을까?

2024.03.03 | 조회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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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학원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하루쯤

구독자 님 반갑습니다! 구독자 님께 보내 드리는 첫 추신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글과 음악 추천, 또는 책의 한 구절을 발췌하여 보내드립니다. 참,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제가 지내는 이 곳, 섬에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가게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제가 지내고 있는 동네 탑동은 구시가지가 되어 옛 도심의 냄새가 여전히 배어 있습니다. 

탑동에서 발견한 <문화세탁소>는 이번 추신 제목의 원형이자 낡고 오래된 간판입니다.

세탁소는 옷 또는 섬유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세탁합니다. 산미가 강한 커피를 하얀 티셔츠 위로 흘렸거나 한 여름의 어느 날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땀을 흘렸던 날, 몸에 맞출 시간이 없었던 아끼는 데님을 입고 격렬히 움직여 사타구니가 터졌던 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해줬던 한 등산 브랜드의 스테디 셀러 아우터를 이제는 옷장으로 들여보내야 하던 날. 이런 날들을 함께 해줬던 것들을 세탁소에 보내어 우리가 소중하게 대하던 시절로 다시금 돌아오길 바라고 90%의 확률로 돌아오던 것이 세탁소의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삶을 세탁할 수 있다면, 어떻게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90%의 확률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기꺼이 인생을 맡겨보겠습니까?

제게는 꿈이 다양했습니다. 다른 말로는 욕심만 많은 한 청년이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실용음악 학원에 다녔고 고2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음악 대신 체육을 시작했습니다(당시에는 체육 쪽으로 꿈을 꾸지는 않았습니다). 입시를 체육으로 진행하여 체육 대학 1년 정도 재학 후 자퇴를 했습니다. 군대에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나온 뒤에는 하루 빨리 해보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부류의 직업을 경험했다 할 수는 없지만 그 경험들이 제게 꿈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가지게 되었던 첫번째 꿈은 카페 사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막연한 꿈입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 스페셜티 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취향이 투영된 공간도 당시 시장에서는 쉬이 통용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마저도 제게는 높고 거대한 벽으로만 다가왔습니다. 아마 제게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취미로 남겨둔 채 두번째 꿈은 책방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책방은 제게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제 모친은 <열매책방>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의 등원부터 하원, 초등학교의 등교 하교까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시작과 끝은 모두 엄마의 책방이었습니다. 도중에는 장사가 잘 되었는지 같은 건물의 옆 공간으로 규모를 확장 했고 그곳에는 작은 다락 공간도 생겨났습니다. 방바닥은 따듯했고 지금은 때때로 손님을 맞이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책방 이름을 <열매책방>으로 짓게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열매라는 이름이 예뻤다고 했습니다, 아마 엄마의 젊은 날이 열매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아리따운 꽃으로 만개하여 화창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것이 가장 제가 바라는 꿈이기도 합니다. 작가입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습니다. 플랫폼을 옮겨 추신을 시작하는 것도 글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라고 해도 과장된 것은 아닙니다. 책을 좋아하면 글이 잘 써지는 줄 알았습니다. 글을 많이 쓰면 고유한 물결이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만큼 계획적이고 색깔이 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글이란 읽기 쉬운 글이라는 박찬용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운이 좋게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질의 응답 시간에는 직업으로서의 작가라는 것에만 혈안되어 온통 질문이 조언을 위하던 것이었고 글쓰기의 방법은 듣지 못했습니다(기회가 된다면, 여전히 저를 기억하신다면 병맥주와 함께 찾아뵙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글이 좋은 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쓰고보니 삶의 세탁소와 관련 있는 말들을 했는가 의문점이 생깁니다. 만약 정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기꺼이 삶을 맡기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고유한 물결을 작게나마 만들기 시작한 지금이 만족스러우면서도 몇 년만 더 빨리 해볼걸이라는 하지 말아야 하는 후회를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에라도.


첫 추신의 작성이 완료 됐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앞으로 글을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만 같아 잠깐 추억을 꺼내 이곳에 담았습니다. 모두가 대면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반갑지는 않지만 대신에 더 깊은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녕!


Sorewashirokuteyawarakai - Naotaro Moriy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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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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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희

    0
    2 months 전

    90%의 확률로 이 삶을 다시 살 수 있다 해도 아니! 전혀! 또다시 이 삶? 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에 저도 작가님처럼 하고 싶은 걸 찾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일을 시작해 볼 걸이라는 후회가 잡초처럼 자라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그 일에 욕심도 애정도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무엇이든 다 때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이기에, 그제야 알고 느끼고 깨닫는 것들이 존재하니까요. 그렇다 보니 더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게 바로 좋은 글 아닐까요. 애정을 담든 가지든 그 마음은 다 드러나니깐요. 정답은 애초에 없으니까요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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