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 펜팔 두더지 시연에게

6주, 시연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2021.06.26 | 조회 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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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신희와 시연의 서간문 프로젝트

 

바빠서 편지 쓰는 게 내키지 않는다고 내게 떼를 쓰면서도 결국은 정성스레 편지를 써 보내준 시연아, 너는 종강도 잘 했겠지? 나는 얼렁뚱땅 종강을 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좀 정신이 없어서 편지도 이렇게 급하게 쓰게 됐네. 취침 시각이 자정을 넘기고 수면 시간이 8시간을 못 넘기면 내 생활은 도미노처럼 무너져. 일찍 자고 푹 자는 건 삶을 지탱하는 큰 요소라는 걸 매번 느껴. 혼을 쏙 빼놓던 한 학기가 또 일단 지나갔으니 다시 잠을 잘 자고, 끼니를 건강한 음식으로 챙겨 먹고, 일조량을 채우며 산책을 하는 생활을 되찾고 싶다. 다음 편지를 쓸 때는 지금보다 잘 자고 잘 먹고 자주 걷는 사람이 되어 있을게.

떼를 쓴다고 표현된 네 편지를 읽다보니 문득, 연재를 시작하며 서로에게 처음 썼던 프롤로그 격의 짧은 편지에서 네가 나를 풀타입 포켓몬 같다고 했던 게 생각났어. 포켓몬 게임을 즐겨하는 내 친구가 그걸 읽고는 웃는 거야. 들어보니까 풀타입 포켓몬은 약점은 많고 강점은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그 애는 시연 씨는 신희를 되게 잘 파악했나 보다라고 덧붙였어. 풀타입 포켓몬이라고 하면 치코리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푸릇한 새싹 같은 그 이미지가 좋아. 너의 그 표현이 장난스러운 뜻이었는지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나를 풀타입 포켓몬으로 파악해주는 상대라서 즐겁게 이 공개적인 편지를 주고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게 외딴 섬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생각나는 건 문학이네. 네가 요즘 시집 한 권에 빠져 살고 있다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편지에는 시집 이름을 말하는 게 부끄럽다고 했으니 나중에 나한테만 살짝 말해줘. 나는 새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 교과서부터 펼쳐서 전부 읽고, 그 다음에는 도덕 교과서에 뭐 읽을 만한 게 없는지 둘러보던 아이들 중 하나였어. 새로운 장소에 가면 제일 먼저 읽을 만한 책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고, 어딜 가든 항상 손에 책을 들고 다니던. 너도 아마 그런 아이였을 것 같은데, 어때? 나는 그렇게, 어려서는 이야기가 마냥 좋았어. 그리고 조금 커서는 문학 속에 숨어 살면서 이게 내 구원인지 고민하게 됐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구원받고, 혹은 예술에게 구원받는 서사에 벅차게 감동하던 시기가 있었어. 문학을 공부해 보겠다고 국어국문학과에 들어와서는, 쓸모없는 것들에 파묻혀 죽어버리겠다고 속으로 비명을 삼키던 시기가 있었어. 좀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문학이 내 섬이었던 것 같아. 그곳에서 나는 이해받는 것 같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안전하다고 느꼈어. 이어폰을 꼽고 소설책이나 시집을 펼치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가 덜 미워보였어. 덜 외롭진 않았지만, 외로워도 괜찮을 것 같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은- 숨어 지내느라 내가 방치한 것들을 돌아보게 됐어. 그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빈도를 좀 줄이기로 했어. 뻔한 구절이지만 문학보다 내 삶이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예술은 삶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삶에 뿌리내리고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예술가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제 나는 내 섬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종종 나누고 싶어졌어. 물론 여전히 드러내지 않을 부분들도 있지만, 어떤 부분들은 공유하고 싶은 용기가 생겼어. 타인과의 교류가 없으면 내 섬은 고립되어 말라갈 것 같았거든. 새삼, 선뜻 나와 이렇게 편지 연재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 쓰면서 생각해보니 소설과 시를 맘껏 읽은 지가 상당히 오래된 것 같네. 이번 여름엔 많은 이야기를 읽어야겠다.

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물 이웃들과 섬 생활을 하는 닌텐도 게임이 생각나네. 유명한 게임인데 혹시 알아? 나는 그 시리즈를 정말 좋아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잔뜩 설레어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 종강했으니 오랜만에 내 섬을 가꾸러 가볼 수 있겠다. 그곳에서도 편지는 친구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도구였는데, 친구들은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보내오기도 하고, 생일 초대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 수줍어하면서 다정한 말들을 해주기도 했어. 그래서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우편함에 새 우편물이 도착했음을 뜻하는 파란 알림이 뜨면 설레곤 했어. 가끔은 바닷가에 모르는 사람이 보낸 유리병 편지가 떠밀려 오기도 했고. 동물 이웃들은 좀 친해지면 자꾸 새로운 세상을 보겠다며 이사를 가려고 해서 나를 곤란하게 하고는 했어. 나는 매번 가지 마!’ 라는 선택지를 골라서 친구들을 다 눌러앉혔어. 가끔 미처 이사 소식을 확인하지 못하면 친구들은 편지를 남기고 떠났는데, 그게 참 야속했지.

종강 후 첫 주말, 너는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 나는 나무 인테리어가 취향인 어느 카페에서 이따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며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긴 하지만 아주 과하지는 않고, 호불호 없을 만한 팝 음악들이 잔잔하면서도 발랄하게 흘러나와. 노트북 충전기를 안 챙겨와서 쫄깃하고 다급한 마음으로 글을 쓰네. 다음주에는 종강 기념으로 진짜 섬에 가기로 했어. 내 생활은 이제 학기 중보다 덜 뻔하고 어쩌면 더 단순해질 것 같아. 너는 어때?

다음에 내 섬에 놀러와. 평화롭게 가꾸어 놓을게.

 

 

2021626일 비가 왔다가 햇볕이 따뜻했다가 오락가락하는 토요일,

주섬주섬 촌장 신희가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신희와 시연의 선배인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라고 썼다. 우리는 그 섬의 존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때로 그 섬을 넘보고 엿보고 탐낸다. 같은 학교 같은 과 한 학번 차이로 입학한 신희와 시연은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일명 밥약으로 한 번의 만남을 가진 후 이 년 동안 SNS 친구로만 지낸다. 졸업할 때까지 다시 볼 일 없을 것만 같던 둘은 신희의 돌연한 서간문 연재 제의로 이 년 만에 신촌 독수리다방에서 다시 만났다. 시쳇말로 소위 어사(어색한 사이)’인 이 멀고도 가까운 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둘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마다 오고가는 편지. 무료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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