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 첫 번째 독자이자 편집자이자 수신인이었던 시연에게

시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2021.07.24 | 조회 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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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신희와 시연의 서간문 프로젝트

 

 

너의 마지막 편지를 나는 본가에 가는 버스에서 처음 열어봤어. 멀미를 참으며 천천히 편지를 검토하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감자전의 바삭한 가장자리를 내가 먹도록 남겨두고 안쪽 부분만 먹는 거야. 매주 내게 언제 오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묻는 데서 일렁일렁 엄마의 마음을 느끼곤 했지만, 전 가장자리를 양보하는 건 무언가 다른 층위의 애정으로 느껴졌어. 우리 엄마는 가장자리를 좋아하거든. 감자전을 해주는 사랑도 애틋한데 감자전 가장자리를 전부 내어주는 사랑이라니. 바삭하고 짭짤한 감자전의 가장자리를 먹으며 나는 다소 엉뚱하게도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 나는 누구에게 감자전을 해주고 가장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까? 나아가 편지의 수신인이자 성실한 발신인인 너에게 나는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양보해줄 수 있을까?

마지막 화를 쓰기 위해 지난 10주간의 편지를 정주행하듯 다시 읽어봤어. 연재가 끝나도 이 10주간의 기록을, 글로 그린 2021년 여름의 순간들과 우리들을 종종 찾아오게 되리라는 생각이 드네. 마무리를 짓는 작업은 어렵고 고민되는 일이지만, 그럴수록 나는 이번 편지를 부담을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써보려고 해. 혼자서 요즘 '대충 사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 그건 네가 저번 편지에서 이야기했던 '겁먹은 앵무새'의 모습처럼, 늘 바짝 긴장한 채 사는 나를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나는 이 마지막 화를, 우리가 던졌던 질문과 고민들을 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여느 때처럼 시연이에게 무사히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려고 해. 내가 마무리해내지 못한 이야기는 섬세한 네가 에필로그로 닫아주지 않을까, 네가 내게 떠넘긴 부담을 다시 한번 너에게 미루면서.

내 문장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고민해주고, 내가 소홀히 하는 띄어쓰기를 맞춤법 검사기까지 활용하는 꼼꼼함으로 검토해준, 10주 동안 내 편지의 첫 번째 독자이자 편집자이자 소중한 수신인이 되어준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 발신인으로서 내게 편지를 써준 것도. 아마 우리는 10주 동안 편지를 같이 썼다고 해서 이전보다 자주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으리라는 걸 너도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아. 우리의 관계는 '제일 친한 친구'라든가 '같이 다니는 무리' 같은 개념으로 형성되던 10대 사춘기 시절의 관계가 아니라, 글을 쓴다는 어딘가 예민하고 한편으로 방어기제도 품고 있는 20대 둘이 형성한 관계니까. 그렇지만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이 년 만에 만나서 연재를 시작했던 우리의 포부, 서로를 공허하게 호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진심, '자취하는 20대 여성 대학생'으로서 공유했던 애환, ''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관계와 거리두기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 2021년 여름에 돌아본 2019년 여름 우리의 첫 만남, 서로의 생각과 삶을 궁금해했던 다정한 호기심, 가끔 상대가 원고를 제 시각에 보내주지 않을 때 했던 모종의 독촉, 서로가 잘 먹고 잘 자기를 바라며 잘 지내는지 매주 묻던 마음, 그런 것들은 여기 남아 있을 거야. 네가 표현했듯 초여름에서 한여름으로, 학기 중에서 종강 직전의 고통을 거쳐 방학 중으로 이어졌던 열 통의 여정 위에 고스란히.

시연아, 나는 무언가 소진되어버렸다고 느낀 지가 좀 됐어. 이제 겨우 이십 대 초입이면서 그렇게 느낀다는 게 우습지만.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더라. 그건 지금도 그래. 누구에게든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묻고 싶었어. 답을 듣고 싶었어. 그런 의심 속에서도 글을 쉼 없이 쓰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지 않으면 글을 정말로 쓰지 못하게 되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도 완성을 목표로 완성했고 때로는 완성하지 못했어. 너는 어떤지 묻고 싶었어. 여기저기에 맨날 인용되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글을 쓸 때의 우리는 크게는 다르지 않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봐. 글을 쓰지 않을 때 네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어. 더 일찍 물었어야 네가 편지로 대답해주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간이 있겠지.

상대의 섬 위에 있는 것 같다고 느끼거나 혹은 내 외롭던 섬에 상대가 들어와 준 것 같다고 느껴서 괜히 벅찼다가, 실은 나는 내 외딴 섬에 있고 이곳에는 결국 아무도 없다고 느껴서 퍼뜩 괴로워지는 삶을 편지가 끝나고도 나는 계속 살겠지. 너도 그럴까? 나는 언제까지 이럴까? 이 들뜸과 외로움은 그저 수용해야 하는 평생의 숙제인 걸까? 이런 의문으로 연재를 시작했어. 당연하게도 연재가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서도 그 답은 몰라. 그저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내 섬에 무례하지 않게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고맙게도 체감할 수 있던 10주였어.

10주 동안 재미있었어 시연아. 하늘만 예쁘면 다인지 습식 사우나 같은 이 날씨를 무사히 살아내자. 고마웠어. 안녕.

 

 

2021 7 23일 금요일,

너무 덥지만 햇볕과 구름은 예뻐서 다섯 걸음에 한 번 하늘을 찍곤 하는 신희가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신희와 시연의 선배인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라고 썼다. 우리는 그 섬의 존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때로 그 섬을 넘보고 엿보고 탐낸다. 같은 학교 같은 과 한 학번 차이로 입학한 신희와 시연은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일명 밥약으로 한 번의 만남을 가진 후 이 년 동안 SNS 친구로만 지낸다. 졸업할 때까지 다시 볼 일 없을 것만 같던 둘은 신희의 돌연한 서간문 연재 제의로 이 년 만에 신촌 독수리다방에서 다시 만났다. 시쳇말로 소위 어사(어색한 사이)’인 이 멀고도 가까운 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둘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마다 오고가는 편지. 무료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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