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 봄이면 내가 사는 빌라 공용 현관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벚꽃 나무에 꽃이 핀 걸 보며 봄이 돌아왔다는 걸 실감한다.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 담배를 피우러 잠옷 차림으로 밖을 나왔다가 고개를 들자마자 연분홍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봄이구나- 싶었다.
2.
그저께는 고속 터미널 근방에 잠깐 들렀다가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과 노란 개나리들에 충동적으로 뚝섬유원지역-지금은 자양역이 되어버렸지만-에 내렸다. 강까지 조금 걸어가 멍하니 물결을 바라보며 혼자 청승을 떨었지. 한참을 그러다가 집에 가기 위해 건대역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꽃나무들이 조금씩 보이더라. 아직 피지 않은 꽃가지 사이로 조금씩 핀 꽃들이 예뻤고, 하늘은 맑았으며, 부모를 앞질러 걷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평화롭다- 생각했다. 걸음을 멈춰 놀이터가 보이는 그늘막에 기대앉아 다시 한참을 구경했다. 정말 한참을 그러다 보면 의식적으로 덮어놓은 시끄러운 것들이 그 순간만은 잠잠해진 것 같기도 했고. 혹은 다른 세상 이야기 같기도 했고.
3.
그런 순간들에 생각하는 건데, 매년 당연히 찾아오는 것들에 단순한 감상을 넘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은 어떤 모순에 직면하는 것 같다. 작은 것에 예민해지고, 큰 것에 무뎌진다. 학창 시절에는 스쳐 지나갔을 시선이 꽃 한 송이에 머무르고 기분이 붕 뜨다가 이내 추락한다. 꽃이 몰고 온 봄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가 꽃이 지는 것과 동시에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떠올리며 쉬이 슬퍼진다. 시선 끝까지 펼쳐지는 꽃들이나 유난히 높게 느껴지는 하늘, 압도할 것처럼 밀려오다가 발끝을 겨우 적시고 떠나는 파도 같은 것들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당연히 존재하는 것들, 혹은 매년 돌아오는 것들에 유난히 감동을 받는 반면 이제는 초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서글픈 순간들 또한 있지.
3.
뭐래, 싯팔.
4.
아무튼 이렇게 실없는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걸 보면 정말 봄이 오긴 왔군 하는 거다. 다시 읽어봐도 뭔 헛소리인지 모르겠네. 정신병이 도졌나. 하긴 도진 게 맞긴 해. 그래서 오늘은 병원에 갈 거다. 아무래도 사람이 정상적인 척을 하려면 약이 있어야 하니까. 집에 오기 전에 어린이 대공원이나 들러서 다시 꽃구경이나 해야지. 물론 오늘도 우럭은 혼자일 예정. 남친도 없고 평일이라 친구도 없는 우럭은 외롭다. 나랑 꽃놀이 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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