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 28일부로 퇴사한 우럭이 돌아왔다.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돌아왔다. 슬슬 글을 쓸 때가 되었지- 하는 마음에. 아무튼 한 달 동안 우럭은 무엇을 했냐. 싯팔, 내 인생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어느 것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벌써부터 눈앞이 까마득할 정도로. 일단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멘탈을 어느 정도나마 추스른 우럭에게 박수를. 그 정도의 작은 격려는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다.
2.
퇴사하고 나흘간은 휴식을 만끽하다가 한국을 떴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휴양을 떠났음. 가서는 뭐 별것 하지 않았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건너뛴 점심을 먹고 아빠 퇴근 전까지 시간을 죽였다. 처음에는 게임도 해보고 책도 좀 읽어보려 하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결국 나중 가서는 옛날 드라마만 주구장창 틀어놓고 감자칩을 주워 먹었지. 그러다 주말이 되면 아빠 회사 동료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아빠랑 여기저기 나가보기도 했고. 아, 우리 아빠는 영화관 가는 것도 원체 귀찮아하고 귀신 나오는 공포영화라면 학을 떼는데 웬일. 인도네시아에서 나랑 파묘를 같이 봐줬다. 이건 좀 감동이라 안 남길 수 없었음. 결론은 그냥 놀고먹었다는 이야기다. 중간에 블로그 업데이트도 좀 하고 레터도 좀 보내볼까 했지만 귀차니즘을 상대로 패한 바, 끝내 하지 못했음을 이실직고한다.
3.
집구석에서 시간과 식량을 축내던 우럭은 22일이었던 귀국 일정을 일주일 앞당겨 15일 한국에 귀국했다. 9시 즈음 공항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건대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사흘간 조모상을 치렀다. 근 10년이었을까. 긴 시간을 혼란스러워한 것치고 깨달은 사실은 담백했다. 그럼에도 나는 제법,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다른 가족들처럼 크게 눈물을 쏟지는 않았지만 보내는 마음이라는 게 꼭 요란해야만 절절하다 할 수 있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후회와 떠올릴 때마다 밀려오는 먹먹함이 그 증거겠지.
4.
장례를 치르는 내내 무리한다 싶기는 했지. 그래도 당신 어머니 보내는 마지막 길을 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아빠 옆을 지킨 화장터에서 기어이 일을 쳤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부딪히고 돌아와 뻗은 하루 내내 가위에 눌린 건 덤이고. 근데 꿈 내용이 참 오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개꿈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또 사나흘을 몸살을 앓으니 그제는 그런 생각마저 들더라. 흠, 신점이나 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숨구멍을 조이는 스트레스에 구석으로 치워버린 여러 문제들까지 덮치다 보니 제법 확고해진 생각이라. 아마 여름이 오기 전에 신점을 보러 가지 않을까 싶어. 나중에 후기 남기겠다.
5.
그리고 실은 사주는 이미 보고 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궁금했던 것은 어차피 하나뿐이기도 했고 예상보다 훨씬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성격이었던 터라 해설가가 밥맛이었던 건 알 바 아니었음. 워딩 하나하나가 병신이었지만 내 사주 풀러 간 곳에서 해설가 인생사를 들으며 어김없이 남의 그릇 사이즈를 재단하고 온 스스로에 대한 황당함 내지 안 그래도 피곤한 인생 걸어오는 시비에 모조리 맞대응하면 더 피곤해질 뿐이라는 생각에 그저 무시로 일관하고는 돈 쥐여주고 끝냈다. 어쨌든 여차저차 답을 얻기도 했고.
흠, 뒤끝을 조금 부려보자면 사주 풀이라는 겉껍데기를 뒤집어쓴 꾸준한 시비를 먹금했더니 "너 같은 스타일이 대충 듣고 나중에 가서 악플 존나 단다"던 대목 말인데. 우럭에게 그 정도 정성이 있었으면 이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 거다. 지금 쓰는 뒤끝도 귀찮아서 지울까 말까 고민 중이니 누구든 간에 부디 나를 되지도 않는 말로 건들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내가 구구절절 읊지 않아서 그렇지 니들이 안 그래도 내 인생은 충분히 피곤하다. 제발 내 앞에서 비극의 주인공마냥 지랄하지 마. 시야를 넓혀 보면 싯팔, 나보다 불쌍한 놈들도 쌔고 쌨다. 개좆같은 세상.
6.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싯팔 시트콤.
7.
정신없이 몰아치는 사건들과 더불어 감정 소모에 지쳐 무작정 샷다 내리고 본 멘탈 때문에 시간을 좀 흘려보냈는데. 그래도 몇 안 되는 약속과 그대로 지나칠 뻔했던 생일 때 간헐적으로 정신줄을 부여잡기는 했었다. 물론 다소 심하게 간헐적이었던 터라 해치워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기는 하지만. 아, 생일 축하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맞다, 나 생일 당일에 안 잊고 블로그 제목 스물일곱으로 바꿨다. (싯팔)
그리고 조문 와주신 분들의 발걸음에도. 닿지 못한 발걸음 대신 텍스트 메시지 너머로 느껴지던 염려에도. 조문 후 덤덤하게 보내주신 여럿 안부 인사들에도. 거기에 묻어 있던 배려 넘치는 걱정과 작은 애정들에도. 전부 잊지 않고 감사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하핫, 제가 참 이런 거 잊지 않고 잘 표현합니다.
8.
인성이 빻으면 고맙다 미안하다 표현 정도는 제때 할 줄 아는 눈치를 지녀야 한다. 물론 그런 눈치를 지녔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생색 부리는 자세 또한. 아무래도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니까.
9.
내가 3월 한 달을 나고 느낀 건데. 나 우리 부모님 좀 사랑하는 듯ㅎㅋ 엄마를 존나 사랑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빠도 존나 사랑한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난 우리 아빠가 너무 좋아. 하지만 우리 아빠는 인생이 하락주인 첫째 딸 장투에 실패했다는 점이 유감. 그래도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누가 나보고 효녀 사주는 아니라 했는데 그건 틀렸다는 점이다. 일단 불속성 효녀도 효녀고 효년도 효도 효자가 있고...
10.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우리 아빠는 인생이 하락주인 첫째 딸 장투에 실패하여...
11.
박수로 시작한 거 박수로 끝내시죠? 전 자기 PR에 능한 터라 이런 거 생색 잘 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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