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삶에 대한 사랑_존재의 무거움을 벗어 버리지 않기

[병약한 삶을 통해 깨닫는 너의 삶의 가치] by 인사피어

2024.07.25 | 조회 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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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엄청난 복통에 시달리다 눈을 떴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안경을 바짝 올려 쓴 남자 앞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든 게 나쁜 꿈결 같았다. 내 내장은 지금 왜 이렇게 자유로운 걸까?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틀리다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바짝 긴장해 떨리는 심장이 셔플댄스를 추고 있었다. 공포로 가득한 나의 뇌에선, 막 울음이 터질 듯 콧구멍이 시리고 눈물이 차오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의사라 불리는 그 남자의 입술에 눈과 귀를 애써 집중하려는 순간,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관장을 해야겠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예쁜 간호사의 손에, 좁고 기다란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간호사는 등 뒤에 무언가를 숨기고 나지막이 상냥한 말로 “엎드리세요.” 했다. 그러고는 “화장실 가고 싶어도, 내가 지금이야!라고 말할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그렇게 존재를 드러낸 비 생물체. 병원 놀이 주사기 100개쯤 합쳐 만든 듯 기괴한 용량의 그것으로 내 엉덩이를 찌를 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항문에 찌를 요량이었다. 외마디 비명과 눈물 범벅으로 정신이 혼미할 때, 굉장한 중력이 온 힘으로 내 직장을 끌어당겼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 너무 반가운 “지금이야!”를 듣고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그렇게 존재를 드러낸 비 생물체. 병원 놀이 주사기 100개쯤 합쳐 만든 듯 기괴한 용량의 그것
그렇게 존재를 드러낸 비 생물체. 병원 놀이 주사기 100개쯤 합쳐 만든 듯 기괴한 용량의 그것

 

 

6살쯤 그날의 기억. 그 경험은 훗날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기억의 꼬리표로 남았다. 5일마다 관장을 하고, 후엔 약을 미리 받아먹느라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니 그럴 만했다. 여러 식이요법과 약으로 조금 호전되었다가도 그 공백은 알 수 없는 두통과 특이성 편두통이 매웠다. 시력이 일부 손실되는 전조증상으로 시작된 지병은, 망치로 때리는 고통이 하루를 꼬박 이루고 나면 후유증으로 3일은 죽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다. 한 달에 두세 차례 휩쓸고 지나간 파편엔, 지속하지 못하는 삶이 나의 마음조차 병들게 했다. 하루 삶을 그저 살아내는 것만이 내 과제가 되었다. 병원마다 듣는 약도, 정확히 진단해 주는 의사도 없어 막막하고 내심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편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염원이던 6살의 아이는 12살의 소녀가 되어 자유를 얻는구나 했다. 물론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배우는 기쁨과 성취가 얼마나 미려한 일인지 알았기에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한 달에 두세 차례 휩쓸고 지나간 파편엔, 지속하지 못하는 삶이 나의 마음조차 병들게 했다/픽사베이
한 달에 두세 차례 휩쓸고 지나간 파편엔, 지속하지 못하는 삶이 나의 마음조차 병들게 했다/픽사베이

 

 

질병이 만연한 삶을 산다는 건, 어떻게든 포장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 상흔이 존재한다. 곧 무너질 건물처럼 자신의 존재가 늘 무거운 법이다. 그럼에도 질병과의 사투로 인한 삶이 내게 가져다준 교훈은, 그 무거운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버텨내라는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고통의 순간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있는 힘껏, 정신 줄을 붙드는 일이었다.

 

n 번의 소풍, n 번의 체육대회, n 번의 아름답고 빛나던 학창 시절. 아프지 않던 날을 셀 수 있을 만큼의 고통과 혼란으로 안갯속을 지나왔다. 가끔 질병으로 얼룩진 시간을 언급할 때면, 희귀병 이거나 장애가 있거나 암이나 중병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적잖이 미안해질 때도 있다. 그분들의 고통에 비할쏘냐마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1년 중 65일 정도만 건강한 사람의 삶이야말로 녹록지 않았으니 이해해 주시면 어떨까 가만히 바라본다.

 

지금도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은 질병과의 사투는 계속되고 있다. 여러 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뇌 질병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고통의 무게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고통에만 집중하면 한없이 어둠 속에 갇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몇 년 전부턴, 내게는 정말 어려운 내 삶을 사랑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님은 <사랑은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다. 물론 나의 고통의 원인은 물리적 현상에 있었지만, 나의 삶을 전체로 놓고 보면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그 모든 고통은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면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이 흘러갔다.

 

내가 삶을 사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65일을 300일처럼 사는 일이었다. 65일을 300일처럼 사는 게 가능할까? 오히려 무리가 되지는 않을까? 밀도 있게 살아야 함이 버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의 패턴을 조금 바꿔봤다. 만약 1년 중 65일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1시간은 365일을 사는 사람과 같지 않을 것이다. 1시간이 소중하고, 24시간이 귀하고, 65일은 보배로울 것이다. 65일을 이렇게 버림 없이 살아 내다보면, 고통의 나머지 날들이 꽤 견딜 만해지는 뜻밖에 일을 만나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그런 날이, 70일, 80일, 150일이 되기도 했다. 내 삶에 애착을 갖는 추앙이, 작은 기적을 선물해 주고,  나를 사랑하는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희귀병으로 알고 누구보다 힘겨운 300일을 살던 아이는 어른이 됐다. 죽을 날을 기다리며 행복해하던 어리석은 소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제법 아는 중년이 됐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나와 닮은 아이를 얻었고, 그 아이가 이제 10대 후반이 됐다. 혹여라도 존재가 버거워 지켜내지 못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소중한 보물을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감사를 한껏 뱉어본다.

 

나의 아픈 시간에 대한 끝없는 물음들은 조금은 모호한 채로 두기로 했다. 다만 그 시간들로 인해, 나는 조금 특별한 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어둠과 외로움이 익숙한 탓에 어둠 속을 걷고 있는 타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범위의 작은 빛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플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책을 읽는 일 말고는 없었다. 자연히 책을 사랑하게 됐다. 책과 벗 된 삶은, 힘든 중에도 존재의 의미를 기어코 놓지 않게 하는 동력이 돼 줬다. 게다가 책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덕분에 삶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존재가 무거워 벗어던지고 싶은 유혹과 끊임없이 싸우느라, 삶에 대한 전투력이 상승했다. 어쩌면 싸울 의지를 잃어가는 누군가에게, 승리 만렙(게임에서 최고의 레벨)에 대한 비법서를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만의 외로운 싸움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만 와야겠다고 미소를 건네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거나하게 취해 휘우듬하게 휘청거려도 통닭을 사 들고 퇴근하시던 아빠.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나를 업고 흥건한 땀을 쏟았을 엄마. 이웃에게 맡겨져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을 어린 동생. 동생을 기꺼이 돌봐준 옆집 아줌마. 옆집 애에게 엄마의 관심을 빼앗겨 버린 옆집 아줌마의 어린 딸…. 내가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은, 혼자 겪지 않도록 함께했던 타인 덕분이었다고 믿는다. 이들의 얼굴이 달처럼 환한 미소를 스치며 말하는 것 같았다. 넌 혼자가 아니라고.

 

인생에서 저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맞이하는 건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줄 순 있다. 그날의 아빠처럼, 엄마처럼, 동생처럼, 옆집 아줌마처럼.

 

 

저자소개

필명: 인사피어(insight+inspire)

_통찰로 타인을 격려하는 삶이 꿈이다

sns그림 작가, 종이 공예와 예쁜 글씨 쓰는 사람. 피아노 반주 봉사하는 사람. 천상 예술인 이지만 글쓰기 공동체 '쓰고뱉다'를 만나면서  내 안에 끝 모를 진지함과 은근한 다정함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해지고 나를 알게 될수록 점점 시선은 타인에게로 향했다. 나의 얘기로도 타인과 닿을 수 있다는 글쓰기는 이제 숙명과도 같은 만남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고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날을 꿈꾸며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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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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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니신나

    0
    3 months 전

    힘겨웠을 시간을 잘 이겨내온 그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육체의 약해짐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 정말 꼭 붙들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세빌

    0
    3 months 전

    음, 그 세월의 무게를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잊은 줄 알고 있었는데, 전 희귀병이 아니었는데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고, 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충분히 영위하지 못하던 시절을 오래 보낸 기억이 떠오릅니다요. 어쨌든 혼자가 아닌 우리가 남는군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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