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이제는 한번 말해볼래

엄마와의 화해 : 30대에 살짝, 그리고 50대에 완전히 회복하다.

2024.07.15 | 조회 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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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엄마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열 손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처럼 부모님은 자식들 각각을 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 자매 중 막내였던 나는 유독 엄마한테 혼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막내딸이어서 귀여움을 받았을 법도 한데 그러지를 못했다. 우선 나보다는 둘째 언니가 훨씬 예쁘게 생겼다. 언니는 일찍 소천하신 친할머니를 닮아 갈색 머리였고 눈도 왕방울처럼 컸다. 언니는 늘 학교에서 인기가 있었다. 내 친구들도 나보다 둘째 언니를 더 따랐다.

또 하나는 내가 말도 잘 못하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말하기보다는 엄마의 부드러운 눈을 마주치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안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왜 거기 서 있느냐며 화를 내셨다. 어린 마음에 나는 울음을 터트리지도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꾸역꾸역 흘렸다.

평온한 하루를 바라며~
평온한 하루를 바라며~

중학교 시절은 좀 더 안쓰럽다고 해야 할까?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반토막 난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아침 식사는 늘 항상 아빠와 내가 마주 보고 먹었다. 엄마는 잔소리를 시작한다. 아빠는 내게 못 들은 척하라는 표시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늘 신발 신고 울면서 학교에 갔다. 다행히 고등학교 등교 시간이 빨라지면서 그 소리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사춘기도 겪을 새가 없이 대학생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반항기가 생기며 엄마와 충돌했다. 말대꾸도 잘했다. 얼마나 말대꾸를 자주 했는지 영어로 말대꾸가 뭔지 한영사전을 찾아본 적도 있다. 그렇게 말대답하고 문을 쾅 닫고 들어와 우는 일이 빈번했다. 한번은 내가 맘먹고 유명 브랜드 검정 구두를 산 적이 있다. 아끼던 신발이었는데 엄마와 다투고 방으로 들어가자, 그 구두를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점점 더 으르렁거리게 되었다.

내 기억에 결혼 전 30대 중반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집에 가는 게 싫었다. 직장이 싫어야 하는데 직장이 휴식처였고 집은 지옥이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일하고 퇴근 후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함께 떠드는 것이 좋았다.

어느 날, 둘째 언니가 사립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임용이 되었다. 그 당시는 내가 아파서 백수 생활을 했고 언니는 교사가 되어 새벽같이 출근했다. 그런데 언니가 출근 준비하면서 방을 어지르고 갔다. 엄마는 언니 대신 나한테 치우라고 했고, 하루는 심하게 어지르고 가자, 대신 매를 맞아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지하철 펜스가 없던 시절인데 지하철에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없어 시행하지는 못했다. 안 그래도 백수여서 자존감이 바닥이었는데 그렇게 혼나고 나니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


그 후에도 다툼은 30대 때에도 계속되었다. 나도 지쳤고 조금은 양심에 찔림이 있었다. 엄마와 너무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용기를 내어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엄마 미안해’. 엄마는 많이 혼내서 미안해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처음이었다.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이.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인데,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싱그러운 나뭇잎처럼 나의 마음도 밝아졌다.
싱그러운 나뭇잎처럼 나의 마음도 밝아졌다.

그러다가 결혼 직후에 2008년 리먼브러더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미국의 경제위기 사태로 이 여파로 인해 한국과 동남아시아에 큰 경제불황을 가져왔다.)가 발생하면서 형부가 담보로 가져갔던 부모님 집을 날렸다. 급하게 둘째 언니의 수혈로 부모님의 반지하 원룸 월세 집을 구했다. 반지하 집에는 바퀴벌레의 천국이었다.


그때부터 다년간 엄마의 히스테리는 점점 극에 달했다. 엄마는 아빠 이마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고 너무 큰 소리로 싸워서 민원이 들어와 경찰이 오기도 했다. 경찰은 유치장에 갈 것인지 아니면 병원 치료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아마 지속적이며 급격한 경제적 어려움을 엄마는 감당하기 힘드셨던 것 같다. 우리는 병원 치료를 선택했다. 입원 후 일주일이 지나자, 면회가 되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슨 일인지 엄마가 너무 징하도록 순해지신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약 때문일까? 입원해 있는 동안 인생을 다시 돌아보신 걸까? 병원의 환자들을 보며 여러 가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아니, 엄마가 환자였기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 스스로 분노를 포기한 것일까? 늘 엄마가 집에서는 의 위치에 있었고 엄마 마음대로 화를 터트리다가 이제는 입원하여 누군가의 말에 따라야 했기에 그 분노와 고집과 완고함을 버리게 되지 않았을까?

분노가 서린 눈은 편안한 눈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병원 입원을 허락한 보호자인 나에게도 화내지 않으셨다. 퇴원하던 날, 나는 엄마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뒤에서 내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그동안 수고 많았다. 미안하다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울컥 났다. 나는 속히 눈물을 감추려고 감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엄마, 뭘 그래, 그냥 엄마 원래 하던 대로 해.’라고 말하며 더 빨리 짐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후로 엄마는 신경질도 안 내시고 편안하게 말씀하신다. 언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제는 기억에 없다. 80세를 훨씬 넘기신 부모님, 우리 세 자매도 이제 50대가 되었다. 이제 큰언니는 아직은 건강하신 부모님을 위해 새로이 이사한 집을 종종 청소해 드리고 반찬을 준비한다. 엄마가 제일 사랑하던 둘째 언니는 부모님께 용돈을 챙겨드린다. 언니들과 비교해 마음이 여린 나는 부모님의 수다를 들어드린다.

이렇게 가정이 화해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엄마의 변화로 온 가족 간에 서려 있는 뿌리 깊은 미움과 질투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던 우리 가족의 관계가 한순간 해소되었다. 이렇게 가족관계가 회복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엄마가 내게 전화해서 지난번에 엄마가 한 말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 미안하다고 말하신다. 가족 간에 서로의 목소리도 다정해졌다. 역기능 가정이란 단어는 우리 집에서 옛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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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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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니신나

    0
    4 months 전

    지난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시네요. 어머니와의 화해가 이루어져서 참 다행이에요. 아직 건강하시다고 하니, 앞으로 웃을 일이 많기를 바라고 좋은 추억들이 많이 쌓이기를 바랍니다~♡

    ㄴ 답글 (1)
  •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0
    4 months 전

    오~ 그림과 함께 읽으니 더 좋네요^^ 멋져요! 수고많으셨습니다

    ㄴ 답글 (1)
  • 인사피어

    0
    4 months 전

    가정의 애환을 영심이님의 표현으로 적어주신 글에서 가족의 사랑과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다음글도 무척 기대가 되네요!!!(ღ◕ܫ◕ღ) 멋진시작, 응원합니다.ლ(╹◡╹ლ)

    ㄴ 답글 (1)
  • 따티제

    0
    4 months 전

    아침에 무심코 들어간 메일함에 예상치도 못한 글선물이 도착해 있어 반가웠어요..!! 저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고 왠지 모를 먹먹함과 벅참이 공존하는 따뜻한 글입니다 :) 시간은 참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세빌

    0
    3 months 전

    참으로 극적인 화해군요! 그러한 화해가 오기까지 그 자리를 버티느라 애쓰셨고, 또 그러한 화해를 잘 맞이하고 유지하시니 스스로를 칭찬해 드려도 될 것 같아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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