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와인 한잔

착한 남자와 나쁜 남자 : 와인과 알콜

[그대와 와인 한잔] by 서로서로

2024.01.04 | 조회 3.4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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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promessa: 약속] 이태리 와인, 프리미티보 품종
[promessa: 약속] 이태리 와인, 프리미티보 품종

술이 싫다. 술의 알콜이 싫다.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이 싫다. 술에 빌어 용기는 낸다는 말, 술기운으로 노는 것, 술 때문에 실수했다는 핑계 대는 모습들을 보는 게 싫다. 그래서 술을 잘 안 마시고 주변에 술 마시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가끔 참여하게 되는 술자리는 지루했다. 

   나는 평생 술 하고 거리가 있는 삶을 살 줄 알았다. 와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내가 캐나다에서 와인 관련업을 하시는 분이랑 와인을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떤 술이길래 그럴까. 아내가 저장해 둔 와인 사진을 가지고 롯데몰 와인샵에 갔다. 

   처음 와인샵에 들어갔을 때 위화감을 느꼈다. 분위기가 뭔가 고급스럽고 점원들은 와인 전문가처럼 보였다. 전문가 앞에서 와인 생초보가 말문을 열기 어려웠다. 매니저가 와서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취향을 물어보는 거 같다. 그런거 없다. 와인 알지도 못한다. 이 공간이 낯설다. 잘못 들어 온 거 같다. 아내가 찍어 둔 사진이 생각났다. 매니저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다행히 한눈에 와인을 알아봤다. 

   매니저가 와인을 찾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았다. 와인의 종류가 정말 많았다. 와인에는 낯선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우와, 100만 원이 하는 와인도 있다. 가격을 보니 또 한 번 위화감이 들었다. 매니저가 내가 찾는 와인을 가져왔다. 45,000원 결제하고 나왔다. 처음으로 직접 산 와인이다. 이탈리아 프리미티보 포도 품종의 ‘프로메싸’의 이름을 가진 와인이다.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스테이크랑 먹었는데 엄청 맛있었어.” 오늘 저녁은 소고기와 와인이다. 와인 이거 특이하네. 병 입구가 코르크로 막혀 있다. 난감하다. 이걸 어떻게 빼지. 얼른 인터넷에 와인 따는 법을 찾아봤다. 이런 와인오프너라는 것도 필요하구나. 거참, 와인 한번 마시기 힘들다. 맞다, 집에 있다! 왜 있는지 모르지만 주방 어느 구석에 짱박혀 있는 와인 오프너의 모습이 생각났다. 찾았다. 너는 이날을 위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구나. 고맙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 인터넷에서 알려 준 대로 오프너를 돌려 뽑으니 “뽕”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뽑혔다. 드디어 와인을 잔에 따를 시간이다. 어라? 어디에 따라야 하지? 이거 난감하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 보면 와인잔이 따로 있었던 거 같은데. 와인잔이 필요하다. 얼른 근처 이케아에 가서 와인잔을 사왔다. 와인 거참 쉽지 않다. 

   이제야 와인잔에 와인을 따랐다. 테이블 위의 모습이 근사하다. 음식들 사이에 검붉은 와인잔은 화룡점정이다. 와인잔이 놓여 있는 것만으로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이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 이제 오붓한 식사를 즐기면 된다. 와인 한 모금 “음~맛있다”. 이런 맛이구나. 잘 익은 검붉은 자두의 향이 싱그럽다. 망고주스처럼 걸쭉한 바디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우유처럼 부드럽게 목을 지나간다. 기분 좋은 달콤함이 여운을 남긴다. 여느 때와는 다른 저녁 식사가 되었다. 

   알콜을 싫어하는 내가 와인에 빠지게 된 날이다.  이후로 와인 공부도 하며 다양한 와인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알콜은 불편한 존재이다. 대안으로 무알콜 와인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무알콜 와인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냥 포도주스 같고 매력이 없다. 내 인생에 알콜이 매력으로 다가오다니 신기했다. 알콜의 존재가 새롭게 다가왔다. 알콜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다. 이런 물질에게 매력을 느끼는 내가 낯설었다. 

   캐나다 정신의학자 조던 피터슨의 “사람은 공격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순수하고 착한 남성보다는 공격성이 있는 남자가 좋고 공격성만 있는 남자보다는 공격성을 통제할 줄 아는 남자가 더 좋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공격성이 있어야 하며, 성숙한 인간은 공격성을 통제하며 생존을 확장해 간다는 뜻이다. 

   나는 공격성이 있는 사람이 불편하고 싫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공격성을 억누르고 살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격성이 있어야 한다. 거절할 줄도 알고 부탁할 줄도 알아야한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하고 선을 그을 줄도 알아야한다. 싸워야 할 땐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 

   와인의 알콜이 남자의 공격성으로 다가왔다. 무알콜 와인은 공격성이 없는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착한 남자 같다.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몸도 좋은데 뭔가 재미없고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착한 남자의 반대인 나쁜 남자가 있다. 나쁜 남자에게는 섹시함이 있다. 나쁜 남자를 싫어하지만 결국 사귀는 건 나쁜 남자만 사귀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나쁜 남자의 매력, 이 섹시함이 공격성으로 다가왔다. 알콜이 있는 남자다. 

   무알콜의 착한 남자 보다는 알콜이 있는 남자가 좋고 알콜을 통제하는 남자가 더 성숙한 사람이다. 알콜을 싫어하던 내가 알콜과 친해지고 있다. 어리숙한 내가 한 여자의 남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공격성을 다듬어 가며 성장하고 있다. 와인이 없던 인생보다 와인과 함께하는 인생이 즐겁고 와인을 절제하며 즐기는 인생이 행복하다. 캐나다 정신의학자 조던 피터슨은 “사람은 와인(알콜)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저자 소개]

1년간 1억을 쓰며 집에서 와인을 즐기고 있는 와인러버. 어두운 저녁 와인과 대화를 나누는 이상한 사람. 와인의 매력에 빠져 논문과 서적을 들쑤시고 다니는 괴짜. 한때는 신학, 정신의학, 경제에 빠져 있다가 와인에서 이 세가지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아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신, 사람, 세상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와인도 똑같았다. 아름다운 와인이 되기 위해서는 천(天), 지(地), 인(人)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대와 와인을 마시면서 천, 지, 인을 나누고 싶다.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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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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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니신나

    0
    10 months 전

    1문단은 현재 저의 마음인데... 저도 와인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그럼, 나쁜 여자가 될 수 있을까요? ㅎㅎㅎ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1)
  • gunpily

    0
    10 months 전

    거의 같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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