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직장 어린이집에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친구와 5개월간 스터디를 하면서 자기소개서와 보육과 관련된 필기시험, 면접을 준비했다. 노력이 빛을 발했을까? 앞선 서류와 시험에서 꽤나 합격점을 받았는지 2차 면접 대상자가 되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어느 정도 대비한 면접 질문들이 나와 분위기 좋게 면접이 마무리되고 있던 찰나, 한 원장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서류 사진에는 안경을 안 꼈던데, 지금은 안경을 꼈네요? 직장 다니면서도 안경 계속 쓰고 다닐 거예요?”
지금이라면 원장님의 말에서 미묘함을 느꼈을 테다. “아니요! 오늘 눈이 아파서 안경을 꼈습니다!”라고 한껏 능청스럽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갓 사회인으로서 발돋움한 사회초년생이었다. 그것도 인생 첫 직장 면접을 마주한 바로 그 순간!
당시에는 각박한 면접을 겪지 않은 순박한 뇌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답변의 방향은 ‘어차피 합격하면 다 들통나니까 거짓말을 하면 안 돼’로 나아갔다. 그래서 “음.. 평상시에는 안경을 껴서 계속 안경을 착용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솔직함이 잔뜩 묻어난 나의 답변에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나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 이후, 그 원장님의 질문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체 왜 그 질문을 하신 걸까? 어린이집 교사가 안경을 쓰는 것과 안 쓰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문제일까? 그렇다면 교사는 외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걸까.
‘어린이집 교사’를 떠올려보자. 대부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화장기 없는 얼굴, 꽉 묶은 머리, 앞치마, 편안한 상·하의 등이 생각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미지는 부모와 어린이들에게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는 ‘교사다운'가.
매일 아침 편안함과 교사다움의 사이에서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지 갈등하는 요즘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성을 따지면서 통 넓은 조거 팬츠를 입으려하다가도 전에 들었던 “설마 이거 츄리닝이냐. 츄리닝을 입는 건 아니지 않냐”라는 말이 떠올라 다시 내려놓는다.
"허리를 숙이는데 속살이 보이면 보육에 진심으로 임하는 것 같지 않다"라는 말이 생각나 길이가 길지 않은 티셔츠도 후보군에서 제외한다. "왜 이렇게 불편한 옷을 입고 오냐"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는 상의나 치마도 다시 옷장에 걸어둔다. 그렇게 여러 기준에서 통과된 옷들에게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이건 선생님 같은 옷차림인가?'
지난 <베이비 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어린이집 교사가 학부모에게 “왜 매일 치마를 입고 다니냐. 어린이집 선생님이 쌩얼로 다녀야지 왜 화장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반면, 또 다른 뉴스에서는 교사가 “우리 아이는 치마 입은 선생님을 좋아하니 치마를 입어 달라”라는 요구를 듣고, 상급자에게 “예쁜 선생이면 민원도 없다”라는 말을 들으며 눈썹 문신을 하던지 립스틱을 바르라고 강요당했다고 한다.
정답은 없지만, 정답을 바라는 것이 교사의 ’외적인 이미지‘인 것 같다. 옷 하나 마음대로 입기 어려운 이 직업 속 ’우리는 아이들을 맡기기에 타당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본질은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인데 말이다.
몇 달 전, 우리 반 아이의 등원을 맞이하던 때였다. 일전에 ’그‘ 면접 이후, 평소 렌즈를 끼고 다니다 그날은 너무 눈이 뻑뻑해서 안경을 꼈다. 그 때 처음으로 나의 안경을 쓴 얼굴을 마주하신 한 어머님이 계셨다. 참고로, 나는 한 뼘 정도만 보일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면 눈이 굉장히 작아진다. 그 어머님께서는 그러한 나의 얼굴을 보시곤 아이와 장난스럽게 ‘맹꽁이 안경’이라고 이야기하셨다.
나조차도 안경을 쓰면 조금, 아니 많이 달라지는 나의 모습을 알았기 때문에 유쾌하게 지나간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니셨나 보다. 어머님은 하원 할 때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정중히 고개를 숙이셨다.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맹꽁이 안경이라고 한 말이 선생님께 속상하게 들리셨을 것 같다고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주셨다.
그날의 나는 첫 직장 면접 때와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경은 누군가에게는 ‘교사답지 않은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교사를 ‘옷차림’이라는 외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닌 ‘교육자’ 그 자체로서 바라본 따뜻한 존중의 시선이 그 차이를 만들었다.
교사가 맹꽁이 안경을 쓰면 어떠랴, 교사가 활동적으로 놀기 위해 편안한 복장을 입으면 어떠랴, 교사가 약속이 있어 평소보다 화려하게 꾸미고 오면 어떠랴.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데 진심인 것은 외적인 무언가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그날 이후, 종종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안경을 쓰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보다 부드러운 시선으로 어린이들을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부디 나의 시선이 옷차림 보다 교사로서 바라봐주신 어머님의 따뜻한 시선을 닮길. 나도 그러한 시선으로 어린이들의 본질을 바라보길 소망해보며-
댓글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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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와, 감동과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안경 쓴 사람으로서 안경 쓴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자 하는 사랑의 안경은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 눈에 걸려야 할 것 같아요!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저에게도 감동인 후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으로 인해 힘이 나는 오늘이네요! 아이들을 향해 사랑의 안경을 가진 사람들만 하는 직업이 바로 이 어린이집 교사인 것 같아요. 응원받은 만큼 앞으로도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시선 잔뜩 보내보겠습니다 💕 -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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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피어
푸실님처럼 고민하고 생각하는 좋은 교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글로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편향적인 사고는 무엇일까? 반성해요. 글을 너무 잘 써요!! 배 아파서 약 먹으러 겁니다. ㅎㅎㅎ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아마도 저와 같은 교사들은 참 많을 겁니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짚어주시고 알아봐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 아시나요~? 큰 힘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인사피어님이 봐주신다는 것부터가 저에게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가 된답니다! -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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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티제
고도근시에 돌돌이 착용자로서 너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렌즈 끼고 다니다 갑자기 안경쓰고 회사간 날 사람들 반응이 떠오르네요ㅎㅎ 양배추 옷을 입어도 사람 자체를 보아주는 교사라니, 참 복받은 아이들이네요 :)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아이쿠... 여기에서 또 동지분을 뵙네요. 요즘들어 테두리 없는 무테 안경을 쓰고 싶어 안경점에 갔더니 이렇게 눈이 나쁘면 무테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흐흐 그러게요. 저희반 아이들도 알아봐주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 사람 자체를 보는 시선이 흘러흘러가 그 아이들도 그렇게 세상을 보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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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과하게 집중하며 치장하는 교육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본질을 바라봐 주시는 분을 통해 얼마나 큰 감동을 느끼셨을까 생각하며 저도 감동을 받습니다.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그 기억이 저에게 10년, 20년이 지나도 큰 응원의 기억으로 콕 박혀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글로 남겨두고 싶었답니다 ☺ 저의 글을 보아주시고 또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댓글에 저도 오늘 감동과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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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딩
항상 응원합니다 선생님~❤️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당신의 댓글은 저에게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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