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에서 서른 다섯으로 넘어가던 밤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힘든 한해를 보낸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설교 내용이었다. 그날따라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한 내 마음을 주님이 아시는 것 같았다.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었다. 스물여덟에 결혼을 하고 7년동안 둘이서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직 젊으니까 우리에게도 언젠가 아이가 찾아오겠지 했었다. 그런데 서른다섯이 될때까지 안 찾아올줄은 몰랐다. 그 나이까지 아이가 안 생길거라고 생각해본적이 못했다.
‘서른 다섯, 노산이네-’ 생각이 들자 울컥 마음에 울음이 찼다. 그날, 나는 울면서 새해를 맞이했다. 많은 분들이 힘드셨던 걸까, 옆에 있던 분들의 우는 소리들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송구영신예배가 그렇게 슬펐던 적은 처음이었다.
큰 기대보다는 더 늦기 전에 한번 더 해보자는 심정으로 3차 인공수정 시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시기상 남편이 방학기간인 1,2월이 그나마 적당했다. 나는 한창 선교 준비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아서 였는지 호르몬 주사 강도를 높였는데도 난포 생성 속도가 느렸다. 결국 난포는 하나만 생겼다. 사실 그건 주사 맞지 않아도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생기는 거였다. 나는 이번에도 안되려나보다 했고 의사는 그래도 해보자고 했다. 선교일정이 코앞이었고 신경쓸일이 너무 많았던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마음에는 시험관 시술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이번에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막상 가능성이 적어보이는 현실을 마주했을때는 깊이 생각하고 절망한 겨를도 없을만큼 바빴다. 두 번의 시술 경험 마다 너무 기대하면 실패했을때 박탈감이 크고 그렇다고 기대를 안 하자니 그건 어려운 마음의 씨름을 하느라 힘겨웠기에 차라리 바쁜 게 나았던 거다.
그렇게 나는 시술을 마치고 얼마 후 선교를 떠났다. 바쁜 선교일정에 사실 내 뱃속 사정은 신경쓸 겨를이 별로 없었다. 선교지에 도착해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릴 때였다. 찬양하는 시간 내내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주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비로소 7년간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진짜 해결이 필요했던 것은 영적인 영역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내 인생에 처음 막연히 기다리는 이 시간동안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어려웠다고, 쿨한 척 하나님의 때에 주실 거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나는 사실 그 말이 제일 싫었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이런 기약없는 터널같은 시간을 주시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기도했다. 그리고 믿음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다른건 모르겠지만 주님이 그래도 나를 사랑하시고, 내 고난보다도 주님의 사랑이 더 크신 것을 알겠습니다. 당장 아이를 주시지 않아도 저는 주님 사랑 알았으니 괜찮습니다’
선교일정이 마무리 되는 즈음, 나는 내 뱃속에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다.
혹시 몰라 챙겨간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입시도 취업도 재수해본적이 없고 결혼도 늦지 않은때에 했다. 첫 아이를 만나는 것이 유일하게 기약없이 이유도 모른채 기다리는 훈련이었다. 처음 몇년은 괜찮았다. 아직 젊으니까, 자유롭게 하고 싶은거 버킷리스트 하나씩 해치우며 애써 즐겨보기도 했다. 그러다 신혼 5년이 넘어가면서는 주기적으로 우울해졌다. 가족중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건강하지 못한 내 몸의 문제같아 늘 자책감을 가지고 지냈다. 내 태의 문이 죽은것만 같았고 마음도 같이 죽은 것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저 끝에 점같은 빛은 보이는데 이 터널이 언제 끝날지는 알수 없었다.
운동도 하고, 둘이 여행도 다니고, 난임에 좋다는 한약도 먹어봤지만 정작 하나님앞에 정직하게 기도한번을 못했다. 사람들앞에서는 믿음 있는 척 했지만 사실 나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했다. 돌아보니 나는 나만 기약없이 기다리는줄 알았는데 주님도 내가 주님앞에 무릎꿇고 간절히 구하길 기다리셨던 것이다. 내 힘으로 버티면서 스스로 좌절하다 겸손히 주님께 무릎꿇고 간절히 구할때, 내 마음과 영혼의 죽음이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나는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였다. 하나님은 죽은것만 같던 내 태에 선물처럼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인생의 첫 기다림의 훈련을 마치고 나니 ‘하나님의 때’의 의미가 깨달아진다.
오랜 시간에 걸쳐 통과해내야만 했던 여자로써의 두려움, 난임이라 불리는 현실이 주는 상실감, 자책감, 거듭된 실망감, 조급함, 끝을 알수 없는 인내의 시간은 결국 우리 부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생명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우리는 철저히 배웠다.
비로소 나는 진심을 다해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우리 가정과 나의 인생은 주님의 것이라고.
다시 한번 온 삶을 평안함 속에 맡겨드렸다.
부모가 되어가는 여정 속에 우리는 아마 이 믿음의 지경을 더욱 넓혀가야만 할 것이다. 때마다 우리는 그때 기약없는 기다림의 훈련을 시키신 시간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것이다.
인내의 열매, 그 맛은 언제나 깊고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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