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의 연애를 해봤고, 결혼도 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하는 경험을 한 적은 없다. 보통 드라마에서 연출하는 것처럼 그 사람을 처음 봤을때 샤랄라한 음악이 들리고 사람 얼굴에서 빛이 나면서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는 그런 경험은 적어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아 이런게 사랑에 빠진다는 건가‘ 싶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첫 아이를 낳고서였다.
나는 예정일보다 2주 일찍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느라 30시간 진통을 했다. 초산인데다 아이가 나올 기미도 없는데 빼내려니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거다. 어쨌건 내 생애 가장 큰 고통을 거의 이틀을 겪어내고 드디어 아이를 만났다. 의료진은 후처리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아빠는 아이 안고 사진 찍고 부모님들께 연락드리는 그 정신 없는 상황에서 나만 얼떨떨했다. 드디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안겨줬을 때 나는 처음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엄마 여기있다고” 신기하게도 아이는 잠시 울음을 그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때였을까. 누군가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것이. 나는 아직도 그때 눈물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지 못 한다.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 가고 이제 다 끝난줄 알고 안도하고 싶었지만 이제 내 몸에는 출산 후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30시간 동안 먹은 것없이 그 큰 고통을 버텨냈더니 아이를 낳고나서는 힘이 다 빠져버려서 온몸을 덜덜덜 떨었다. 오한과 열이 났다. 임신 중 커진 자궁근종때문인지, 출혈이 멈추지 않아 저녁 5시에 아이를 낳고서도 피가 적당히 멈춘 밤까지 나는 병실로 옮겨가지도 못했다. 자연분만에 성공했으니 씩씩하게 걸어올라갈줄 알았건만 나는 온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휠체어에 실려 병실로 옮겨졌다.
그제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첫 끼를 허겁지겁 먹었더니 결국 체했다. 그날 밤은 체끼와 출산 후 상처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우면 누운대로 앉으면 앉은대로 괴로웠다. 링거에 무통주사에 소변줄에 온몸에 주사줄을 꽂고 있으니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곤욕이었다. 출산 고통까지만 예상하고 맘 먹었지, 그 후의 후폭풍은 생각지도 못했고 상상도 못했던 지라 그 고통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어찌저찌 고통속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밤은 지났고, 다음 날 아침 의사가 다녀갔다. 그리고 신생아실에서 모유 주는 연습 할건데 올거냐고 물었다. 어제 잠깐 본 내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 자꾸 보고싶었다. 피를 많이 쏟아 빈혈수치도 낮아져서 조금만 움직여도 어지러운 와중에도 나는 부지런히 아이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리던 때를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생후 이틀된 아이가 눈도 보이지 않는데 엄마 냄새와 젖냄새를 알고 본능에 따라 힘차게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다. 늦은 나이에 출산하느라 회복도 더디고 새벽에 응급실을 다녀오면서도 나는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러 가는 길이 기뻤다. 전날의 생생한 진통의 고통도 그 순간엔 다 잊어버렸다.
병원신생아실에서 처음 초유를 받아먹던 조그만 생명체. 꿈뻑꿈뻑 졸면서도 온 힘을 다해 모유를 먹던 신생아. 작은 손으로 겨우 엄마를 끌어 안고 열심히 먹어주던 아들. 다 먹고 나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표정. 나는 내 눈에 아이를 담아가면서 점점 사랑에 빠졌다. 뱃속에서 부터 나와 한몸으로 연결되있던, 곧 나였던 아기. 그 아이가 내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양분으로 또 한번 하나로 연결되는 그 행복감은 살면서 느껴본 것 중 가장 큰 것이었다.
뱃골이 작아 2-3시간 마다 깨서 먹여야 하는 신생아 시절, 잠 못자면서도 아이를 먹일수 있었던 것은 돌아보니 사랑이었다. 내 인생 최대의 끈기와 인내, 성실이 필요했던 육아를 기쁘게 해올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진짜 사랑에 빠지면 초인적인 힘이 생겨나는듯 했다.
아이 먹이겠다고 잘 하지도 못하는 요리와 살림에 도전하고, 이유식 좀 맛있게 만들어보겠다고 한시간 내내 육수를 끓이고(나를 위해서도 해보지 않은), 사람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 동식물에는 관심도 없는 내가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고사리손으로 심어온 화분이 아까워 오이를 키운다.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에 도전하게 하는 것, 나를 바꿔놓은 것은 ‘사랑’이었다.
남편도 나에게 말해준적이 있다. “그때 당신 참 행복해보였다고”. 딱 봐도 내가 손해보는 이 장사에 나는 왜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누군가에게 내 것을 내주고 포기하고 손해보는 것 같아도 기꺼이 다 줄수 있는 사랑을 나는 사실 처음 해본다. 남편도 부모도 친구도 나 자신도 그렇게 사랑해보지 못 했다.
아들이 내 인생에 찾아온 뒤로 나는 ‘사랑’ 이 무엇인지 배우는 중이다. 사랑은 ‘베푸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멋져 보이는 건 사랑이 아니었다. 아들을 통해 내가 배운 진짜 사랑은 기꺼이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이었고 내 젊음과 건강,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 해왔던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자 미워하고 화를 내고 끝없이 이기적인 나를 죽이는 일이었다. 또 사랑은 정신적, 영적, 신체적인 에너지를 집중해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었다. 매일 소진되고 고갈되도록 수고했어도 다음날 같은 에너지로 새롭게 상대방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결국 사랑이란 것은 날마다 내 한계에 부딪혀 지치지 않으시고 완전하신 그분께 무릎꿇는 삶이었다.
사랑하고 싶어 가랑이 수백번 찢어지고 사랑하지 못해 버거워도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의 삶.
엄마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배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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