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는 여정 [씨엘로]

2024.04.12 | 조회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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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괜찮다

<같이 써요, 책> 챌린지에서 만난 여러 명의 작가들이 써내는 매일의 일상을 공유합니다.

 작년 여름, 캄캄한 미래를 걱정하며 갈팡질팡하던 나에게 남자 친구는 나의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는 약 1년의 유예를 주며 나의 행복을 알아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간단할 줄 알았는데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여전히 고민 중인 걸 봐서 그리 쉬운 숙제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고 내게 행복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기는 편이기에 확실하게 이뤄야 할 큰 행복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 그러나 이제는 숙제 검사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아서 급히 숙제 노트를 펼쳐본다.


 이루고 싶은 삶의 목표, 이뤄야만 성공한 삶이라 일컬을 수 있는 그런 거창한 행복을 생각하니 아주 부담이 크다. 나는 실패하는 게 싫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만 해왔고, 먼 미래의 목표조차도 혹여나 실패할까 세우지 못했다.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라 싫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그래서 계획 없이도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나 보다.


 갑자기 나오라고 연락해 온 십년지기 친구와 만나 겨우 두 시간 이야기하고 헤어지며 아쉬워하는데 행복 숙제가 번뜩 떠올랐다. 그 순간 짧은 만남의 아쉬움과 동시에 행복을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십년지기 친구를 참 좋아하는데, 단순히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나를 궁금해하고,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이라면 응하지 않을 번개 만남을 그 친구라면, 겨우 한두 시간 볼 수 있다고 해도 30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서 만나는 편이다. 문득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늙어갈수록 분명 그 시간은 줄어들 텐데, 아쉽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호호백발 할머니가 돼서도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나의 첫 번째 행복으로 정했다.


 직장을 다니며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서 배워보고 싶었던 건 다 건드려본 것 같다. 회계가 궁금해서 전산회계를 혼자 공부해 봤고, 필라테스가 재미있어서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자격증도 땄다.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귀에 익은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배워보려다가 히라가나조차 암기하지 못해 학을 뗀 반면, 작은 호기심에 독학으로 시작했던 스페인어는 나도 모르는 새 진심이 되어 사이버 대학까지 진학해서 공부하고 있다. 온갖 공방에 다니며 가죽 공예와 유리 공예도 해보고 라탄 소품이나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도 만들어 봤다.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경험했다. 개중에는 계속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한 번 해보고 끝난 게 대다수다. 


 겨우 한 번으로 끝나버린 취미를 나는 후회하고 있을까? 공부는 종종 스트레스 받기도 했지만 뭘 배우든 지루했던 적은 없다. 맛만 보았던 회계는 업무의 경계가 없는 작은 회사에서 도움이 됐고, 그동안 배운 공예 지식으로 망가진 액세서리 정도는 직접 고치는 등 살면서 한 번씩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후회는커녕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도 많으니 행복할 일도 많이 남은 듯하다.


 어느 정도 숙제가 끝나가는 것 같다. 여전히 소소한 것 같은 내 행복이지만 그만큼 쉽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글쓴이 씨엘로

작은 회사에서 4년 막내 생활 끝에 퇴사하고 진짜 좋아하는 걸 찾아 헤매는 중이다. 첫째로 좋아하는 건 하늘, 스페인어로 씨엘로. 하늘을 바라보는 듯 편안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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