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림책 [정그라미쌤]

무릎딱지

2024.04.08 | 조회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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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괜찮다

<같이 써요, 책> 챌린지에서 만난 여러 명의 작가들이 써내는 매일의 일상을 공유합니다.

“선생님도 읽어보실래요?”

책 읽기를 좋아하던 11살 여학생의 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민지야, 너는 왜 그림책을 읽어? 다른 친구들처럼 4학년 추천도서를 읽는 건 어 때?”

독서 수준이 꽤나 높은 친구가 유치원생이나 읽을법한 그림책을 읽는 것이 궁금했고,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 아닌가 조금의 걱정도 되어 물었다. 그 시절 나는 그림책을 유아용 도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그림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리고 저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서 배울 것도 많아요.”

방긋 웃으며 아이가 내게 내민 책은 김장성, 오현경 글과 그림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명작‘민들레는 민들레’였다. 진한 하늘색 배경에 민들레가 그려진 커버. 책장을 넘기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하얘졌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그날의 감동을 시작으로 그림책을 읽고 공부하며 그림책 전도사가되었다.

 

아침에 엄마가 죽었다.

그림책 무릎 딱지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은 자고 일어난 사이 엄마가 죽고 없어진 아이의 불안한 심리와 엄마를 잊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을 잘 그려낸 책이다. 어린아이기 받아들이는 죽음과 그리움. 그 와중에도 이 꼬마 아이는 등을 돌려 울고 있는 아빠의 등을 토닥거린다.

 

어제 나는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에 상처가 나서 아팠다.

아픈 건 싫었지만 엄마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래서 아파도 좋았다.

나는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 끝으로 긁어서 뜯어냈다.

다시 상처가 생겨서 피가 또 나오게.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피가 흐르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조금은 덜 슬프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많이도 울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많이도 울었다.어린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란 사람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중, 고등학교 시절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버지가 없다고 적었을 정도다. 아버지는 난폭했고 부도덕했으며, 가장 비참한 건 가족들을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어제까지 통화하며 농담을 하던 아버지가.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동정이 생겼었다. 너무 어렸기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몰랐다고…술에 취해 늘 비틀거렸기에 수치심을 알지 못했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명절에 처음으로 본가에 가지 못했다. 극심한 우울과 수면장애로 몸무게가 한 달 사이 10kg이나 빠졌고 수시로 찾아오는 공황은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엄마를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명절이 지나고 3일 후 울면서 전화하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허망하게 나의 아버지는 세상을 등졌다. 슬프지 않을 줄 알았다. 그때까지도 술이 취하면 엄마를 힘들게 하던 아버지였기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실신을 했다. 왜 그랬을까?

아버가 돌아가신 지 13년이 지났다. 기일이 되면 늘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본다.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면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엄마, 이제 그만 울어.” 작은 아이가 친정으로 가는 길에 늘 하는 말이다.

그렇게나 미워하던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운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림책 속의 아이가 억지로 딱지를 긁어내고 피를 흘리며 엄마 목소리를 그리워하듯 내 마음속의 딱지를 계속 뜯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내 마음에 상처를 내 가며 아버지를 소환한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로 남는다.

내가 죽음의 충동을 느낄 때 남아 있는 나의 가족들을 생각한다. 내 아이와 남편이 받을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딱지로 남아, 피를 흘리며 나를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 책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었다. 내게 주어진 삶이 내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함께 살을 부비고 사랑을 나눈 모든 이들이 그 안에 같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나와 내 삶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있는 사람, 사랑이 되어야 겠다.

샤를로트 문드리크의 ‘무릎 딱지’를 읽고

 

 

글쓴이 : 정그라미쌤@grimchoikpro

그림책을 사랑하고 수업에 자신있는 그림책프로

그림책은 세상 모는 삶을 축소한 열린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그림책 전도사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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