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을 받아서 안전하다는 펀드에 가입했다가
원금의 30%도 못 건지고 노후자금을 날렸다.”
2004년 '반 토막 펀드' 뉴스입니다.
2004년 적립식 펀드 출시로 펀드 투자가 대중화된 후 적어도 2, 3년마다 '안전하다던 펀드가 반 토막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2019년에도 DLS, 디스커버리, 라임·옵티머스 등이 펀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과거에는 공모펀드였고 이번엔 사모펀드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매우 큽니다.
둘 다 원금손실 위험 있는 금융투자상품을 안전하다고 속여 판매하거나 심지어 '원금보장·확정高금리'를 약속하며 판매했는데 어떤 점이 다를까요.
이번 사모펀드 사태의 특수한 점은 무엇이고 투자 시 유의할 점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사모펀드와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01 / 사모펀드란
펀드는 투자자의 돈을 모아 운용하는 상품인데,
투자권유 대상의 수에 따라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로 나뉩니다. 50명 이상에게 투자권유 가능한 상품은 공모펀드이고, 49명까지만 투자권유가 가능하면 사모펀드입니다.
실제 투자자의 숫자가 아니라 투자권유 대상의 숫자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판매한다면 한 명이 가입하더라도 공모펀드입니다. 반면, 사모펀드는 사실상 비공개로 판매되는 상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는 성격이 다르고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됩니다.
공모펀드는 시장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공산품입니다. 정보비대칭 상태의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 발행과 유통, 내용과 공시를 모두 규제합니다. 공모펀드는 200페이지에 달하는 상세한 증권신고서가 작성·공시되고, 금융위원회에 제출·수리되어야 판매할 수 있습니다. 투자설명서도 반드시 교부해야 합니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런 규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가입시 3-4장짜리 상품설명서만 교부받는 경우도 있고 분기별 운용보고서도 없(었)습니다. 사모펀드 시장은 기본적으로 손실을 감내할 자산이 있는 전문투자자가 금융회사와 대등하게 거래하는 사적자본시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촘촘한 규제를 두지 않고 자본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운용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되 투자자 진입장벽을 두는 방식입니다.
사모펀드는 특정 소수에 판매되지만 시장 규모는 작지 않습니다. 2021년 1월 19일 기준 사모펀드 설정액은 455조로 공모펀드 설정액은 304.8조보다 큽니다. 설정액 중 개인투자자 비중도 2020년 기준 5% 이상입니다. (미국은 10% 상당)
02 / 규제 완화와 개인투자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낮아지고 한국 주식시장도 오랫동안 박스권에 갇혔습니다.
고령화·저성장·저금리 시대. 투자자는 노후자금이 필요하지만 전통적인 자산운용방식으로는 더 이상 투자수익을 얻을 수 없고, 산업은 모험자본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요구하던 상황에서 2015년 10월 25일 사모펀드 규제가 완화되었습니다.
이번 사모펀드 사태로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있지만, 당시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는 견해가 상당하고, 금융당국의 제도개선 방향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모펀드 제도개편안의 핵심은 ① 일반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일원화하고(규제 단순화) ②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는 것이었습니다(진입규제 완화). ③ 투자자 최소투자금액도 기존 5억원에서 3억원(레버리지 200% 초과 시) 또는 1억원으로 낮아졌습니다.
이후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급변했습니다. 자산운용사 수가 2014년 말 87개사에서 2020년 6월 기준 310개사로 크게 증가했고, 이 중 약 85%를 차지하는 264개사가 심사요건이 완화된 전문사모운용사였습니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도 2015년 말 200조원에서 2020년 6월 423조원 시장으로 성장했고, 전문사모운용사 설정액은 동기간 34조원에서 145조원으로 4배 이상 확대됐습니다.
개인투자자도 당연히 늘어났습니다. 2015년 이전 사모펀드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부동산·특별자산·해외자산에 투자하는 창구 정도로 인식되었다면, 이후에는 고액자산가뿐 아니라 목돈마련·은퇴자금운용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고객에게 판매되었습니다. 주로 부동산·특별자산 등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주식보다 안전하고 예금보다 목표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03 / 규제 완화와 개인투자자
그러나 규제완화에는 당연히 부작용이 따랐습니다.
우선, 사모펀드 수가 늘어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적자 운용사가 늘어났습니다. 등록 기준 자기자본은 물론 등록 유지를 위한 최소자기자본 요건에 미달하는 전문사모운용사가 증가했습니다. 자기자본 요건 미달 운용사는 2015년 6.3%에서 2018년 13.1%로 증가했고, 2018년 기준 최소자기자본(14억원) 요건에 미달한 운용사도 5.1%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무리한 투자, 투자 손실, 불완전판매로 이어졌습니다.
표는 2019년부터 부실로 환매·상환이 연기된 사모펀드입니다. 이 중 3개 사례를 뽑아 살펴봅니다.
▲ 라임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은 처음에는 실력 있는 운용사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높은 목표수익률을 제시하고 실제 실현해서 고객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고, 장기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하면서 월 1회 환매하는 개방형 펀드*로 판매하고,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원금보다 큰 금액을 투명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했습니다. 부실이 심화됨에 따라 코스닥 부실기업을 이용한 주가조작 등의 범죄와도 엮였습니다.
* 고객이 언제든 환매할 수 있는 펀드를 ‘개방형’, 일정 기간 환매가 금지된 펀드를 ‘폐쇄형’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등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할 경우 수익을 실현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정 기간 환매를 금지합니다. 예를 들면 목표수익률 8%로 해외부동산에 투자하면서 8년간 환매를 금지하는 식입니다.
라임처럼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하면서 고객은 언제든 환매할 수 있으면 만기불일치가 발생하는데, 라임은 새로운 자펀드를 만들어 신규 투자금을 유치한 뒤 기존 고객들에게 환매금을 지급하는 돌려막기 방법을 취했습니다. 운용규모는 점점 커져 국내 1위 헤지펀드가 되었지만 이런 돌려막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2019년 10월 환매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손실율은 최대 70%였습니다.
펀드 내부뿐 아니라 펀드 상호간에도 하나의 모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다른 모펀드에서 돈을 끌어와 손실을 숨기는 등 돌려막기가 이뤄졌습니다.
판매사와 금융감독기관도 부실을 알고 은폐하는 데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라임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총 4천 명.
49인 이하에게만 투자권유가 허용된 사모펀드인데 개인투자자가 4천 명에 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자구조로 '쪼개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라임은 173개 자펀드와 4개 모펀드를 만들었습니다. 모펀드는 여러 자펀드의 자산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펀드를 말합니다. 투자자가 자펀드에 투자하면 자펀드가 모펀드에 재투자 하는 구조입니다. 사모펀드인 자펀드를 173개 만들면 사실상 공모펀드임에도 아무런 공모펀드 투자자 보호 장치 없이 4개 펀드에 8,477명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공모규제가 적용되어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가 공시되고 투자자에게 분기별 운용보고서가 제공되었다면 1조 6,7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때까지 부실이 방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은행과 증권사는 라임펀드 투자자에 대해 선보상 조치를 취하고 있고, 특히 무역금융펀드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고객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여 은행과 증권사로 하여금 고객에게 원금 100%를 반환하도록 결정한 상황입니다.
▲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디스커버리펀드는 미국의 자산운용사 다이렉트랜딩인베스트먼트(DLI)의 특수목적법인(SPV) 다이렉트랜딩글로벌(DLG)의 사모사채(채권과 부동산선순위채권)에 재투자하는 펀드입니다.
DLI의 대표의 수익률 조작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적발되면서 2019년 4월 DLI와 DLG의 자산이 모두 동결되고, 국내에서 판매된 총 6,792억 원 중 914억원이 환매중단 되었습니다.
라임펀드가 높은 수익률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면 디스커버리펀드는 기업은행 주도로 판매되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부실펀드보다 법인투자자가 많은데, 피해자대책위에 따르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지위를 이용해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에 손실 위험이 없다고 설명하며 적극적으로 판매했기 때문입니다.
디스커버리펀드도 라임펀드와 마찬가지로 2개 모펀드와 40여개 자펀드를 이용한 '쪼개기'로 공모규제를 회피하면서 수백 명의 투자자를 모집했습니다.
▲ 옵티머스자산운용
옵티머스는 정상적으로 설정되어 운용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라임펀드나 속일 의도가 없었던 디스커버리펀드와는 달리, 처음부터 투자자를 속인 사기입니다.
판매사를 통해 안전한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한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투자금 2900억원을 모았으나, 실제로는 조폭이 운영하는 부실기업 채권에 투자했고, 5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전 대표는 423회에 걸쳐 70억원을 횡령했고, 주요 인물들은 모두 수감 중입니다. 2017년 이미 재무상태 악화로 채권자가 파산신청을 하였으며, 자기자본미달로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받았으나 2019년 6월에야 상장폐지 되었습니다.
공공기관인 예탁결제원과 수탁사인 하나은행도 펀드 자산에 대한 확인을 다하지 않아 투자자의 손해를 키웠습니다.
옵티머스펀드도 투자자가 1000명이 넘습니다. 라임·디스커버리펀드와 마찬가지로 28개 자펀드로 '쪼개기' 판매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투자금의 80% 이상이 NH투자증권을 통해 모집되었는데 피해자의 53.6%가 6-70대입니다.
04 / 사모펀드 사태로 달라진 규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19. 11. DLF 대책으로 판매규제 보안책을 마련했습니다.
핵심은 ① 은행판매 제한 ② 일반투자자 판매 시 녹취의무와 설명서 교부의무 부과 ③ 최소투자금액 상향입니다. 은행 예금을 주로 이용하고 금융상품 투자경험이 적은 가입자나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는 고령자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권유를 막고, 판매과정에서의 정보비대칭성을 개선하는 내용입니다.
2020. 4. 최종 확정한 제도개선방안은 ① 시장참여자인 자산운용사, 판매사, 수탁은행, 증권사의 감시·관리의무를 강화하는 내용과 ② 투자자에 대한 분기별 자산운용보고서 등 정기적 운용정보 제공의무가 포함되었습니다. ③ 모자펀드 '쪼개기'를 이용한 공모규제 회피에 대한 관리도 강화됩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2023년까지 사모펀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60개 정도의 사모펀드 검사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 2019년에 발생한 부실을 2023년에 적발할 수도 있으므로 늦장대응이라는 지적이 있으나, 금융감독원의 '과' 하나가 사모펀드를 전부 감독하는 상황에서는 최선으로 보입니다.
덧1/ 원금보장과 원금보존
예금의 '원금보장'과 펀드의 '원금보존'은 다릅니다. '원금보장'은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는 예금상품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펀드는 모두 원금손실위험이 있는 금융투자상품입니다.
펀드의 '원금보존' 혹은 '원금보존추구' 표시는 예금기관이 아닌 자산운용사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원금보존을 목표로 설계된 상품이라는 의미에 그치고 원금보장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덧2/ 정보비대칭성
이번 금융당국의 제도개선으로, 판매와 운용단계에 걸쳐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으므로, 정보비대칭성 문제는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정보비대칭상황에서도 '너무 좋은 것은 없고, 딱 봐서 조금 이상하면 아주 많이 이상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위험을 걸려낼 수 있습니다. 특히 금융투자상품처럼 규제가 촘촘한 분야에서 '비합리성'은 굉장히 위험한 신호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목표수익률이 높고 부동산 프로젝트처럼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한다면 일정한 환매금지기간이 필요합니다. 예금처럼 인출이 용이한 개방형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만든 '지나치게 좋은 미끼'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펀드가 공모인지 사모인지보다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인지가 더 중요하지만, 사모펀드는 펀드명에 '사모'가 포함되니 한 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덧3 / '사모펀드 관련주'
부실 사모펀드 피투자기업으로 주가가 하락한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년에는 사모펀드가 인수가보다 높은 금액에 매각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올해는 사모펀드 사태가 끝나면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이미 디폴트 상태고, 투자자들에 대한 배상도 판매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어 피투자기업에 대한 영향력은 이미 제거된 상태로 보입니다.
금융주 전망이 좋고, 판매사의 투자자 선보상 조치도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판매사에 대한 독일헤리티지펀드 투자자 소송 등 집단소송이 진행 또는 추진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집단소송,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그로 인한 사업기회 제한 우려가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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