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만 육십 세가 된 차정숙 씨가 출근한다. 밤새 눈이 내렸는지 새벽녘부터 도로는 어둠 속에 하얗게 빛난다. 아침을 여는 버스가 운행을 시작하고 저마다 색깔 없는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어나온다. 서로를 꼭 빼닮은 이들이 어디론가 간다. 끌려간다. 이 무렵에는 신호등 불마저 꺼져 있는데 알아서들 조심하고 지나갈 뿐이다. 십오 분쯤 기다리면 차정숙 씨가 타야 할 버스도 도착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문은 열린다. 기사와는 말 대신 목례로 짧은 인사를 나누고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차정숙 씨는 창에 고개를 기대어 본다. 곧 있으면 해가 뜨고 사람들은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젊은이들아, 보아라. 그대들이 휩쓸고 간 찬란한 어둠을 우리가 어떻게 걷어내는가를.
학교에 도착한 차정숙 씨는 곧장 근무자 휴게실로 가 겉옷을 걸어두고 작업용 앞치마로 갈아입는다. 교내 기숙사 겸 학생 자치공간으로 사용되는 건물의 이 층 여자 화장실 가장 구석 칸에서 각종 청소도구와 백 리터짜리 종량제 봉투가 가득 담긴 카트를 챙긴다. 복도부터 청소할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서려는데 이상야릇한 냄새가 공기 입자들을 타고 차정숙 씨의 들숨에 스쳐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변기 커버를 들면 형형색색의 토사물들이 눈앞에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물을 내리자 토사물들은 누군가 자신을 떠나보내주길 기다려왔다는 듯 금방 사라진다. 하기야 이 정도면 양반이다. 며칠 전에는 세면대에 토해두는 바람에 한 주먹씩 움켜쥐고 변기에 직접 옮겨 버려야 했으니까.
복도와 계단 청소까지 끝마치고 나면 학교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득실댄다. 마침내 아침이 밝은 것이다. 이제 차정숙 씨에겐 강의동 각층 분리수거 쓰레기들을 깨끗이 비우고 새 봉투를 씌워두는 일만이 남았다. 사실 이 절차는 가장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출근하자마자 기력이 남아 있을 때 해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분리수거를 새벽부터 하면 금방 다시 쓰레기통이 차 버리니 차라리 기다렸다가 퇴근 직전에 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지원처 입김이 있은 후엔 마지막 순서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정숙 씨는 '사람이 없을 때 분리수거를 하는 편이 쓰레기 버리는 학생들 입장에서도 마음 편하지 않겠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녀 역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더 실용적인 방안을 피력할 권리가 있다. 더군다나 이곳은 지성의 장, 대학 아닌가. 그러나 지원처에서 내놓은 대답이라곤 '알고 계시겠지만 이게 엄밀히 말하면 저희 소관은 아니라서요... 파견업체 쪽에 먼저 연락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같은 하소연뿐이니 차정숙 씨는 괜한 수고로움을 감당할 필요가 없음을 금방 깨닫는다. 더 나섰다가는 파견업체 부장에게 '학교랑 재계약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뭣하러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다니냐'며 핀잔을 듣게 될 것이란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연유로 차정숙 씨가 분리수거를 하는 동안에 강의실에서는 일 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시장 경제 내에서 이기적인 개인의 이해는 자연적으로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교수의 목소리가 마이크 잡음과 함께 강의실 밖으로 새어 나온다. 차정숙 씨는 생각한다. 젊은 양반, 보이지 않는 손은 여기에 있소.
분리수거를 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커피와 배달음식이다. 커피는 얼음째로 버려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쓰레기봉투를 꺼내보면 발목까지는 담그고도 남을 만큼 물이 꽤나 차있다. 그리고 그 위를 표류하는 것들이 있으니 돛단배일 리는 없고 단지 물에 젖어 눅눅해진 컵홀더 되시겠다. 이들을 구조하는 차정숙 씨의 손길 한 번마다 쌉쌀한 카페인 향이 맹독처럼 스멀스멀 퍼진다.
그런데 컵홀더와 얼음 따로 버리는 건 이토록 귀찮아하면서 배달음식 포장 용기는 어쩜 그렇게 비닐에 꽁꽁 싸맬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꽉 묶어두었는지 다 풀고 나면 손가락 하나마다 각기 다른 음식 냄새가 배어 있을 정도다. 정말이지 죄책감 덜어내기에 지나지 않는 양심은 베풀지 않는 편이 낫다. 책상머리에만 앉아선 배울 수 없는 경험의 유산들을 차정숙 씨는 날마다 새롭게 체감한다. 비닐을 풀면 먹다 남긴 음식물과 플라스틱 용기들이 한 데 뒤엉켜 있다. 일말의 자책마저 비닐에다 묶어 내다버린 것이다. 그러면 숨겨지는 줄 아는 모양이지.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이놈들아.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분리수거까지 모두 마친 차정숙 씨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지만 어째서인지 발은 학식당으로 향한다. 학교가 크지 않은 덕에 근무자 휴게실에서 식당까지는 얼마 걷지 않아도 되지만 오늘처럼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늘상 조심해야 한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우리네 같은 몸뚱이로는 족히 한두 달 정도는 쉬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파견업체에서는 곧바로 대체 인력을 투입할 것이다. 새 자리가 나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쪽 업계 사정이다. 차정숙 씨는 언제라도 그런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기라도 하는지, 팔천 원짜리 순대 국밥 대신 하나에 천팔백 원 하는 학식당 토스트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때마침 식당 입구에서 똑같은 패딩을 맞춰 입은 학생 한 무리가 나타난다. 떡과 감사카드 같은 선물 꾸러미들을 나눠주며 '학생들을 위해 힘써주시는 학내 근로자분들, 감사합니다.' 하고 연신 외쳐댄다. 맘 편히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만큼은 조용히 보내고픈 차정숙 씨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정숙 씨의 차례가 되었는지 여학생 하나가 곁으로 다가온다.
"조리원님, 고맙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학식에 엄청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아, 저는 조리원은 아니고 미화원인데......' 하려다 말고 차정숙 씨는 '아유, 참. 고마워요...' 하고 적당히 얼버무린다. 뭐가 됐든 몸에서 음식 냄새 풀풀 내풍기는 건 똑같으니까. 받아든 선물 꾸러미는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토스트를 먹는 데 집중한다. 서로가 민망한 인사들로 한껏 어수선해진 식당은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물 때쯤 다시 고요를 되찾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 무리도 사라진다. 퇴식구에 트레이를 반납한 차정숙 씨는 그대로 식당을 나서려다 불쑥 강렬한 느낌을 받아 뒤돌아선다. 무엇에 홀린 듯 쓰레기통 앞까지 걸어가 멈춘다. 그리고 토사물을 마주하기 직전 변기 커버를 들어 올리는 바로 그 심정으로 쓰레기통 안을 살펴본다.
'얼음과 컵홀더들, 네 녀석들이 쥐고 있던 얼음과 컵홀더들.'
차정숙 씨는 끝내 웃고 만다. 선물 꾸러미는 도로 꺼내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린다. 식당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김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제아무리 동료 된 차정숙 씨로서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저 아이들은 분명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리나라 상위 십 퍼센트에 속하게 된 아이들이라는데, 그래서 장차 나라를 이끌고 세계를 선도할 인재들이라는데, 우리 세대는 그걸 믿어야 한다는데, 그래야만 한다는데. 대체 왜 우리는 믿을 수 없을까.
한편 이 학교의 그 누구도 수많은 계단과 화장실과 쓰레기통이 깨끗한 이유가, 누군가 새벽부터 일찍이 쓸고 닦아놓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십 년 전에는 차정숙 씨 역시 전도유망한 대학생이었다는 사실과 이 나라에 그녀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역시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불과 이틀 후에 차정숙 씨가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자발적 퇴사를 하게 된 배경에 특별히 참작될 사유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실업급여 수급은 적합하지 않다'는 유권해석만이 남을 뿐 '얼음과 컵홀더가 그 사유가 될 수는 없는지' 손을 들고 기꺼이 질문할 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 학교의 계단과 화장실에서는 매일 아침 락스 냄새가 그득할 것이고, 쓰레기통은 말끔히 비워져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관심 한 번 둔 적 없는 누군가가 아무렴 차정숙 씨여야만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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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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