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넌 앞으로 사랑을 좀 불공평하게 주게 될 거야.”

2024.03.10 | 조회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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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푼수 단편선

조각 같은 우리들 이야기를 씁니다.

 “여기 말이야, 너무 밝다고 생각 안 해?” 네가 불현듯 물었다.

 “아무리 재개발 예정 구역이라고 해도 여긴 서울이잖아. 이 정도 낭만은 있어야지.“ 나는 태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대답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거쳐 갔는지 재떨이에는 길이가 제각각인 담배꽁초들이 그득했다.

 “에이, 이게 무슨 낭만이야.”

 “저기, 저 네온사인들을 보고도 정말 아무런 감정이 안 들어?” 나는 마지못해 물었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 본 신림동의 밤은 환하게 빛났다. 팔차선 도로에는 수많은 헤드라이트들이 저마다 형광색 일직선을 그으며 지나갔고, 그 일직선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뻗은 골목에선 불빛들은 젊음을 내뿜었다.

 “저런 건 낭만이 아니야. 멀리서 보면 다 아름답지.” 네가 대꾸했다.

 “무슨 말이야?”

 “원래 물러나서 보면 다 예뻐 보인다고.”

 “그런가?” 나는 괜히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아, 이걸 진짜.” 네가 못내 웃으며 대꾸했다. “가까이서 보면 슬픈 것들 투성이란 말이었어. 예를 한 번 들어볼까? ……아, 그래. 저기 일층 현관 앞에 서 있는 남자 보이지? 저 사람 핸드폰 불빛도 반짝거리지만 뭘 보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내 말이. 대실은 해야겠는데 너무 비싸서 조금 더 싼 곳은 없는지 여자친구 몰래 열심히 찾아보는 중인 가난한 스물한 살 대학생일 수도 있잖아. 얼마나 슬픈 일이야. 사랑은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 맙소사, 말이 돼?”

 “하…… 언제적 얘기를 또.” 나는 몸서리치며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나치게 생생한 기억은 종종 사람을 부끄러워 미치게 만들곤 한다.

 “그때 너 진짜 귀여웠는데.”

 “너도 마찬가지야.”

 “……참 빨랐다. 그치?” 네가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것 같아. 물론 난 아직도 널 좋아하지만.”

 “그러니깐. 이렇게 빨리 가버릴 줄 알았으면 좀 더 사랑해줄 걸 그랬어.”

 “아니야. 네가 자책할 필요 없어. 그건 떠나보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야. 넌 최선을 다했어.” 어깨를 토닥이는 네 손길은 날이 제법 추운데도 따뜻했다. “말했잖아. 너무 가까이서 보면 슬프기만 하다고.”

 “……계속 생각나는 걸 어떡해. 후회되는 일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단 말이야.” 왜인지 나는 울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감당하기도 버거워서 흘러넘칠 때가 있다.

 “넌 아무래도 멀리 보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어.”

 “무슨 소리야.” 눈물은 여전히 흘렀지만 나는 닦지 않고 내버려뒀다.

 “내가 여긴 너무 밝다고 했지.” 네가 말했다. “별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하여튼 서울은 이게 문제야. 아름답기는커녕 눈이 부실 지경이라……”

 “넌 가끔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더라.”

 “반짝거리는 건 다 하늘에 있는데 사람들은 아래만 보고 살잖아. 그 와중에 고개를 젖히고 별을 마주한다는 건 또 얼마나 낭만적인 일이야.“

 “그렇긴 하네. 그런데……”

 “그런데?”

 “너 말대로라면 별도 멀리서 보는 거니까 낭만적인 거 아냐? 사실은 그냥 수소랑 헬륨 덩어리일뿐이잖아.”

 “맞아. 정확해.”

 “가까이에서 보면 누렇게 색이 바랬을 지도 모를 일이고.”

 “잘 아네.”

 “그럼 너무 불공평하잖아. 별은 어차피 멀리서 밖에 못 보는데.”

 “그래. 어차피 우리 기술로는 죽어도 별에 닿지 못해. 그렇다고 없어진 건 아니잖아? 오히려 멀리서만 볼 수 있으니까 그만큼 슬퍼할 날들도 줄어들지 몰라. 그냥 보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게 되겠지. 그래서 넌 앞으로 사랑을 좀 불공평하게 주게 될 거야. 특히 나한테는 말이야.”

 “넌 진짜 우리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돼.“

 “나도 알아. 슬슬 내려갈까? 어머니 기다리시겠다.”

 도시의 밤이 눈부시게 깊어가는 와중에 별 하나가 유달리 눈에 띄게 반짝였다. 발인은 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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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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