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회차는 '서울의 찬가'와 함께 감상하길 권장합니다.
날이 조금 풀리자 주말을 맞은 천장산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학교 뒤편을 둘러싼 산이었지만 직접 찾아가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졸업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동기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정말 한 번도 둘러보지 못한 채 학교를 뜨고 말았을지 모른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지 동네 뒷산치고는 우리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나 임영웅 히트곡과 같은 음악 소리는 정상까지 오르면서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왜인지 우리는 산에 온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우리를 허전하게 만드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정상은 해발 이백 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시간도 안 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것도 나름 산이랍시고 동네 전경이 한눈에 보이긴 했다. 아래에 있을 땐 '이딴 게 무슨 서울'이냐고 우스갯소리 삼아 말하고 다녔지만 아무렴 서울은 촌구석이라도 다르긴 달랐다. 우리처럼 진짜 지방 촌놈들이 떠올릴 법한 촌구석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서울에는 건물이 많았다. 높이는 상관없다. 다만 이 넓은 땅에 노는 땅 하나 없이 어디든 빼곡하게 솟아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작게는 건물 숲처럼 보이다가, 시야의 초점이 조금이라도 흐려지면 도시 전체가 얼룩덜룩한 회색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울을 저 멀리서 보기만 하다가 상경한 우리로서는 사람, 건물, 또 무엇이든 이곳은 모두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싹 걷어내니 사는 게 잿빛 영화 같았다. 우리는 찰리 채플린이 이십일 세기에 태어났어도 <모던타임즈>는 분명 흑백영화였을 것이란 얘기를 나누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때마침 멧비둘기처럼 보이는 새 두 마리가 우리의 시선 앞을 지나쳤다.
"쟤들은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동기가 느닷없이 운을 뗐다. "엄청 우스워 보이겠지? 이렇게 낮은 곳에 오르려고 황금 같은 주말에 시간까지 내면서 낑낑댄다니."
"뭐, 별생각 없지 않을까?"
"어째서? 나였으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 같은데."
"그냥......" 나는 여전히 서울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그냥 쟤들이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뭐가?"
"저렇게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다 똑같아 보일 거라고. 저 건물들이나, 그 사이로 가득 메운 차들이나, 또 해발 이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 우리나 말이야......"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우리도 서울 사람인 건가?"
"좋을 대로 생각해." 나는 대답하자마자, 다음 달부터 월세를 올리게 되었다는 집주인의 말이 이유도 없이 떠올랐다. 동기 역시 울타리 난간에 팔을 기댄 채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도 없이 날아가는 새를 바라봤다. 도무지 바라지 않고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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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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