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들

“어째서 우린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지.”

2024.03.18 | 조회 233 |
2
|
김푼수 단편선의 프로필 이미지

김푼수 단편선

조각 같은 우리들 이야기를 씁니다.

 우리가 지금껏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짚어보자.

 당신의 말대로라면 가령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나는 우산 없이 마중을 나갈 것이고, 우리는 꼼짝없이 비에 젖고 말 것이다. 비가 오는데 바보처럼 우산도 안 챙겨오냐고 핀잔을 듣는 나는 생각한다. 그랬다면 우리 둘 중 과연 누구의 어깨에 비가 더 내리는지 들통나고 말 거라고. 차라리 둘 다 흠뻑 젖어버리면 그것만큼 평등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불공평한 마음을 주고받을 바에 미련해지는 편이 낫다고, 빗속을 함께 걸으며 나는 속으로 되뇔 것이다.

 발걸음만큼 무거워진 수증기 덩어리가 끝도 없이 하강한다. 축축한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말없이 걸어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어쩌면 우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모른다. 언제부터 비가 내렸는지는 더욱 알 길이 없다.

 그때쯤 나는 나도 모르게 재채기를 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우산만 가져왔다면 그만일 일을 왜 사서 고생이냐고 당신이 내게 묻는다. 나는 그제야 우산을 들고 왔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아직은 감기에 걸리지 않은 당신을 위해.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 누구 하나의 어깨가 불공평하게 젖어야 함을 마침내 깨닫고 만다.

 어째서 우리는 평등하게 사랑할 수 없을까.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줄 수 없고, 당신 역시 내게 사랑을 줄 수 없다.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사랑이 아니라 우산이다.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하나의 우산 아래에 함께 선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뿐이다.

 그런데 빗줄기가 매번 지면과 정직한 수직을 이루면서 떨어지는가 하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날씨가 짓궂은 날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야 마땅한 것들이 옆으로 흩날릴 때가 종종 있다하강하는 빗방울 근처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떤 우산은 일순간에 뒤집히기 일쑤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진 우산도 우산이랍시고 끝까지 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들은 모두 독한 감기에 걸리게 될 것이다.

 지독할 정도로 낫기 힘든 열병을 앓으며 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우린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지. 당연한 이치로 우산을 쓰지 않으면 비를 맞는다. 그렇다고 우산을 쓴다 한들 하나로는 비를 완전히 막을 수 있지도 않다. 더군다나 우산은 본질적으로 비를 막기 위한 것이지 한기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더는 못 참을 만큼 추워진 어느 날에 나는 해결책 하나를 겨우 생각해 내곤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각자의 우산을 쓰자.

 

_

<이별에 대한 문학적 해석>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김푼수 단편선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채은의 프로필 이미지

    채은

    0
    over 1 year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2025 김푼수 단편선

조각 같은 우리들 이야기를 씁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