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지지배, 철이 없었지. 그 덕에 난 사랑을 배웠지만."

2024.01.28 | 조회 335 |
2
|
김푼수 단편선의 프로필 이미지

김푼수 단편선

조각 같은 우리들 이야기를 씁니다.

 나는 고양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게도 부모가 있긴 했으니 어여쁜 고양이식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 뿐이다. 다만 황갈색 무늬가 군데군데 얼룩져 있는 것으로 보아 스쳐 가는 사람들은 나를 '모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나라고 처음부터 부모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겨울날, 주위에 펼쳐진 것이라곤 논과 들이 전부인 어느 시골 마을에서 길고양이 부모의 외동딸로 나름 귀하게 태어났다. 당연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나중에서야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알게 된 사실이니 내게 부모라는 존재는 전설(傳說)이나 다름없다.

 그 동네 어르신들은 유독 고양이를 싫어했다. 요는 개들은 집도 잘 지키고 위급한 상황에는 주인부터 구하고 보는 일종의 충성심이 있는 것에 비해, 고양이들은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온종일 구걸이나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듣는 우리로선 억울한 노릇이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개들은 짖을 줄이나 알지 아무런 실속이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물개를 때려잡고 뱀을 쥐불놀이하듯 던지고 논다. 정말이지 이만큼 용감무쌍한 생명체가 또 어디 있단 말이지? 그걸 몰라주니 우리네 고양이들은 하염없이 우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없었다.

 아무튼 동네에서는 고양이란 족속들을 죄다 잡아다가 야산 어딘가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은 고양이에게도 집단지성이 있다고 믿었는지 한 마리씩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유기했다. 그래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면서. 애당초 인간의 보호를 받은 적은 없으니 버려졌다고 보기엔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로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원망할 대상도 없이 이별을 겪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내 부모와 이웃이 하나둘씩 사라져갈 때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소녀의 선택을 받았다. 파란 대문집에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그 소녀는 나를 부엌 구석으로 안고 들어와선 닭고기 몇 점부터 먹였던 것 같다. 며칠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배를 곯고 있던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한 접시를 다 먹어 치웠다.

 소녀는 머잖아 빈 과일 상자 몇 개를 가져오더니 내 옆에 주저앉아 무언가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상자를 한두 번 툭툭 건드려보다가 소녀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소녀는 상자를 오리는 데 한참 집중하고 있던 참이었다. 두꺼운 상자가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갈 때마다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더니 소녀의 머리며 어깻죽지에 내려앉았다. 나는 습관처럼 몸을 부르르 떨 뻔했지만 애써 참았다.

 열심히 만들던 것이 다 완성이 되었는지 소녀는 손바닥을 털며 일어섰다. 그러다 아 참, 하고는 무엇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방에 들어가 검은 마커 하나를 들고 왔다. 내 눈이며 수염, 꼬리 같은 것을 한참 살피더니 입술을 깨문 채 고민에 빠진 소녀는 마침내 알아냈다는 듯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상자 한 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모카'라 적었고, 그때부터 내 이름은 '모카'가 됐다.

 그날 저녁 읍내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소녀의 할머니는 부엌 한편에 떡하니 자리 잡은 내 집을 보곤 기가 찬다는 듯 역정을 냈다. 나는 상자 안에 몸을 숨기고 바깥 상황을 숨죽인 채 지켜봤다. 어디 밥값도 못하는 짐승을 집 안에 그것도 부엌에 들이느냐며 할머니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가 막 뛰쳐나갈 준비를 마쳤을 무렵 소녀는 눈물 범벅이 된 채로 할머니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밥 얻어먹는 건 나도 똑같은데 왜 모카한테만 그래, 모카 없으면 나도 학교 안 갈 거야, 하고 떼를 쓰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지배, 철이 없었지. 그 덕에 난 사랑을 배웠지만.

 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할머니의 눈칫밥이나 먹고 지내다가 오후에는 소녀와 그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일상이 한동안 이어졌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사랑은 쟁취해내기 더 쉬웠다. 아이컨택 한 번에 '애옹-' 하고 몇 번 울어주기만 하면 아주 귀여워서 사족을 못 쓰니 이만큼 수지타산이 좋은 일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외였던 점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표정이었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역정을 내던 사람이 그렇게 흐뭇하게 웃어 보이니 생경할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소녀와 할머니의 웃음을 번갈아 보는 일에 점점 익숙해졌고, 소녀는 할머니가 된다는 인간 세계의 법칙을 조금이나마 믿을 수 있게 됐다.

 몇 년이 지나 기숙사가 있는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 소녀가 입학한 후로는 할머니와 둘이서만 있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여전히 별다른 일도 안 하고 밥이나 얻어먹었다. 어쩜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동네는 해가 지면 개미 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않아 집을 지킬 필요도 없었고, 이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될 소녀에겐 내가 예전만큼 필요하지도 않았을 텐데. 할머니는 그런데도 모카야 고맙다, 하는 말을 하루도 잊지 않았다. 고맙긴. 나야말로 입이 있으니 밥을 먹는 게 당연한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숙녀가 된 소녀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서울로 향했다. 처음에는 방학이나 명절 연휴, 할머니 생신 때마다 집에 들르곤 해서 얼굴을 잊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소녀의 얼굴을 보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아졌다. 할머니는 도시는 마치 바다와 같아서 밀려온 사람들이 썰물처럼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버티는 곳이라 했다. 견디지 못해 밀려나는 것보단 얼굴 좀 덜 보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그렇게 소녀가 한 해 두 해 버티는 동안 할머니는 부쩍 말수가 줄었고 종일 방 안에만 누워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무렴 나 같은 고양이로는 사람을 온전히 치유하는 데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게 밥을 주는 일도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라 하루에 한 번씩 면사무소에서 찾아오는 사회 복지사의 일이 됐다. 나와 할머니는 함께 나이 들어갔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소녀가 결혼할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던 날에 할머니는 겨우 벽에 허리를 기대어 앉고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할머니에겐 이전처럼 빗자루를 들고 누군가를 내쫓을 힘도 없었고 소녀의 뜻을 막을 용기도 없었다. 그저 '모카 너처럼 좋은 사람이니 데려왔겠지......' 하며 나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날 늦은 새벽에야 눈을 감은 할머니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소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 소녀가 사는 집은 아침이면 햇빛이 환하게 들고, 멀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소녀와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현관을 나선다. 그때쯤이면 잠에서 깨어난 아기 우는소리가 거실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화들짝 놀란 소녀는 방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남자는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출근한다. 나는 도시물 나름 먹은 고양이답게 식빵 굽는 자세로 가만히 앉아 이 즐거운 소란을 멀찍이서 지켜본다. 그리고 오늘에야 마음먹는다.

 그래, 너는 내가 가장 외로운 순간 찾아와 사랑을 줬다. 그런 네가 겪게 될 또 하나의 슬픔까지 모두 안고 이번엔 내가 먼저 떠난다. 늘 앉아있던 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나를 찾느라 너는 애를 좀 먹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너는 결코 나로 인해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네 옆에는 모카 같은 남자와 너를 쏙 빼닮은 아이가 있고, 나는 다만 어느 외로운 별로 돌아가서 빗자루를 들고 나를 반길 노인 한 명을 찾으면 된다는 것까지 말이다.

 

_

<가족의 탄생>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김푼수 단편선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채은의 프로필 이미지

    채은

    0
    almost 2 year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2025 김푼수 단편선

조각 같은 우리들 이야기를 씁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