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으면
욥기를 읽을 때 사람들은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할까? 대부분은 욥일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나에게 고난이 오면 욥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겨내자, 정도로 교훈을 삼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욥이 무언가를 의지적으로 이겨낸 것은 없다. 오히려 고통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울부짖다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게 전부다. 이 회개로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기 42:5-6
사람은 의지로 삶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너무 연약하고 어리석다. 우리는 1초 뒤의 미래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반면에 온 땅과 하늘,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순간 내 삶의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고 거룩하심 앞에 선 나는 그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미물이자 한낱 죄인일 뿐임을 보기 때문이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욥기 38:2-4
실상 나는 욥 만큼의 고난을 겪은 적도 없고, 욥 만큼의 믿음을 가지지도 못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욥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존재도 못 된다. 나는 욥에게 감정이입할 입장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욥기를 읽고 난 후에 하나님은 오히려 엘리후 같은 자가 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다. 엘리후는 언뜻 보면 예의가 바른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그러함을 자랑하는 자이다. 노인들의 말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작 내뱉은 것은 왜 욥을 제대로 정죄하지 못하냐고 노인들을 꾸짖는 말들이었다. 자신의 정죄하는 말들이 지혜로운 말이라고 확신하며, 심지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욥을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자만한다.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발언하여 가로되 나는 년소하고 당신들은 년로하므로 참고 나의 의견을 감히 진술치 못하였노라
욥기 32:6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 말을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당신들이 혹시라도 말하기를 우리가 지혜를 깨달았었구나 그를 이길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찌니라욥기 32:12-13
엘리후의 말 폭탄(?)은 37장까지 길게 이어진다. 원래의 구성 같았으면 친구의 정죄함 이후에 욥의 항변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고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이야기하시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엘리후 외의 욥을 비난했던 다른 친구들(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은 그나마 하나님께서 속죄해 주셨다. 번제와 욥의 중보 기도를 통해 회개할 기회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엘리후는 이 구절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엘리후는 철저히 패싱당한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기 42:7-8
결국 욥기의 주제는 욥이 고난을 멋지게 이겨냈다는 신앙의 위인전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주님을 찾고 회개할 때 회복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대하는 친구의 자세는 함께 주님께 울부짖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안에는 세상 기준과 비교의식이 충만하고, 그것이 쉽게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엘리후가 되지 말라는 마음을 주신 것은 이에 대해 책망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욥기를 마무리하며 고린도전서 13장을 떠올렸다. 나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기억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 같은 말과 이치를 가리는 무지한 말을 떠들어 대며 살고 있는가? 욥의 친구들이 한 말도 인본주의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모두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무지하고 정당하지 못한 말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실천하며 살아야 할 중요한 가치들이 많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들을 실천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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