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대아파트 임장기

아크로리버하임 이전 명수대아파트가 있었다

2023.01.03 | 조회 1.5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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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생

99년 04월 10일 生, 20세기 끝물에 태어나버린 사람.

   흑석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입지적으로 봤을 때 흠 잡을 데가 크게 없는 지역이다. 한강변에 접해 있고, 올림픽대로 타기도 편해 교통도 좋다. 여의도도 가깝고, 용산도 가깝고, 시청도 가깝다. 흑석의 구조적 단점이라고 함은 복잡한 주택가와 좁은 도로, 이를 말미암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권 등이 있겠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구획되었더라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끼칠 동네였는데, 상당히 아쉽다.

   흑석이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아크로리버하임의 준공이 크다. 흑석7구역을 재개발하면서 지어진 1,073세대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흑석으로 돌리는 데 한 몫을 했으며, 준수한 위치와 한강변의 조망 등 거주 요건들을 충족하며 흑석뉴타운은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명수대아파트는 사실 흑석 주변을 지나다니면서 항상 궁금했었는데, 주변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중 잠깐 시간이 떠서 탐방.

   1976년 준공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준공된 아파트로는 반포주공1단지(‘73), 낙원상가 낙원아파트(‘68), 용산 한강맨션(‘71) 등이 있다.

명수대아파트 출입구
명수대아파트 출입구

   과거 세운 상가의 세운아파트처럼, 명수대아파트 또한 1970년대에는 흑석동의 터줏대감 대장주 아파트였다. 좁은 골목에 주택들이 즐비했던 흑석동에 혜성처럼 나타난 5층짜리 신新주거형태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총 5층으로 이뤄진 건물의 1,2층은 상가로 사용됐으며, 주거공간은 3층부터 배치되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주상복합의 초기 형태인 것.

   과거에는 주상복합이 현재와 같이 인기 있는 주거형태가 아니었다. 주상복합이라는 말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때, 상가주택이라 함은 1층에 철물점, 잡화점 등 가게들이 모여있고, 2층에는 거주공간이 있는 주거형태였다. 2층에 있는 거주공간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철물점 난로 앞에 아저씨들이 옹기종기 담배 피면서 모여있을 모습을 상상하면 사실 부모들이 선호하는 주거형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상가에 볼일 보러 온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니 보안 문제도 있고, 사실 과거 상가주택은 기피대상에 가까웠다. 주상복합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타워팰리스부터. 단지 보안을 강화하고 입주민들이 실제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 위주로 테넌팅한 후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가와 함께 붙어있는 주상복합 형태의 건물은 노후화되면 재건축이 상대적으로 힘든 편이다. 상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쫓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은 쉬운데 해고는 어려운 것만큼, 사람 들이기는 쉽지만 내치기는 어렵다. 재건축 같은 대형 사업에서는 시간 = 돈 공식이 상당히 가시적이기도 하고 (차입금의 액수가 크다 보니 하루 이자만 천만원 단위인 경우가 많다), 상가와 결부된 복잡한 권리관계들을 해소하는 데 드는 노력 등 일반 아파트보다 삽을 뜨기 전 진을 빼는 요소들이 상당한 편이라 노후화된 주상복합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꺼리는 매물이다. 

   주상복합은 높은 용적률 또한 문제다. 명수대아파트는 198%, 과거에는 꽤 높은 수준이었지만 준주거지역은 용적률 500%까지 가능하니 사업성에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높게 지으면 위치가 위치인 만큼 한강도 보이겠다. 그래서 그런지 낙후된 시설에 비해 높은 호가를 형성 중이다. 매물은 없지만 전세가가 3억 초반 형성 중이니, 대충 전세 3억이라 잡고 서울시 전세가율 적용하면 보정 생략 매가는 5억 정도. 내게 5억이 있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한 고민이다. 람보르기니 구입이냐, 명수대아파트 매수냐. 전자를 택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명수대아파트의 경우에는 사실 재건축의 가능성은 희박하며, 재개발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재건축을 하기에는 규모가 상당히 작고, 대지권 등을 둘러싼 권리관계 및 이해관계가 상당히 복잡한 편이기 때문이다.* 명수대아파트는 현재 흑석2구역에 속해 있으며, 흑석2구역의 재개발은 현재 시공사로 삼성물산을 선정,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공공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 옛날 아파트다 보니 분양과정에서 토지 소유주와 건물 소유주가 다른 상태에서 대지지분 등기이전이 안 된 호수들이 있는데 그런 호수들은 사실 매력이 많이 떨어진다. 대지지분이 없어도 주택이니 재개발 후 입주권은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관련 문제가 좀 까다로운 모양이다. 확실한 대지지분이 짱이다. 자세한 내막은  참고 기사 참조. 물권이 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원래 권리관계 복잡한 물건이 재밌다.

   주거 편의성은 사실 케바케일 듯 하다. 바로 앞에 시장이 있어 편리한 대신, 시장에서 올라오는 각종 소음 및 냄새에 취약하다. 건물이 오래된 만큼 각종 벌레 및 설치류들의 서식도 용이할 것. 바로 앞에 꽤 큰 규모의 대학병원이 있어 편리한 대신 새벽 구급차 등 소음 문제. 대학교가 바로 앞이라서 유동인구 폭발. 노후화된 시설. 개인주의적 사회와는 거리감 있는 복도식 아파트. 상가 테넌팅은 시대에 뒤쳐지는 느낌. 자주 이용할 만한 곳이 이마트 에브리데이 정도, 나머지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ㅁ자 구조의 호실 배치
ㅁ자 구조의 호실 배치
넓은 복도 (세탁기가 밖에 나와 있다)
넓은 복도 (세탁기가 밖에 나와 있다)
꼭대기 층 시티뷰
꼭대기 층 시티뷰
40년이 넘는 세월 간 보수를 한 번도 안 한,,
40년이 넘는 세월 간 보수를 한 번도 안 한,,

   임장 다녀온 후 소감을 대충 읊어보자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약간 ‘도둑들’인데, 이웃들이 뭔가 서로 다들 알고 친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옛날 아파트가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복도가 굉장히 넓다. 느낌 상 학교 복도 x 2 정도. 공용면적이 꽤 많이 잡히겠다. 한옥처럼 호실이 ㅁ자로 배치돼 있고 중정마냥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데, 여의도 현대백화점이 연상되기도 했다. 설마 레트로인가.

   살아보지도 않은 1970년대의 숨결을 머금고 있는 아파트 탐방은 새로운 자극을 준다. 타워형 및 판상형 아파트가 대세인 요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는 내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는 꽤 생경하기에 상당히 흥미롭다. 앞으로도 열심히 임장 다닐 예정인데, 곧 프랑스로 출국하게 될 처지에 놓여 언제 다시 구축 아파트 임장을 재개할 지는 미지수. 갑자기 프랑스 건축물 임장기가 올라올 수도, 구독자님들 너무 당황하지 않길 바란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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