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레터#6] 교토 잡문 2

2024.11.03 | 조회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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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레터 from 교토

[마감] 퇴사 후 떠난 교토에서, 매일 밤 쓴 퇴사레터를 보내드릴게요. (10/28~11/8)


[1년 차 사사의 레터]

⛩️ 정상이 아니다

오늘은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갔습니다. 빨간 문이 1만여 개나 줄을 지어 서 있는 유명 관광지예요. 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아주 바글바글합니다. 기념사진을 너도나도 찍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찍히든 말든 모두가 포-오즈를 잡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후시미 이나리는 포토스팟이 아닙니다. 운동 코-오스입니다. 줄지어 서 있는 1만 여개의 문을 정신없이 지나가다, 정신 차리면 어느새 산 중턱에 와있습니다. 정상까지는 20여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이 있어요.

우리는 올라갑니다. 10분 정도 지나니 또다시 정상까지는 20여 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또다시 올라갑니다.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정상인가 싶었는데 기념품 숍이 있습니다. 그곳을 둘러보니 이런 안내판이 있습니다. “여기가 마지막 화장실이자 식당” 아이코, 그럼 가야지요. 그곳에서 말차라떼와 몽블랑으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 이후에도 화장실과 식당은 또다시 나타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이 줄었습니다. 하산한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사람 없는 후시미 이나리 사진을 실컷 찍어봅니다.

정상인 줄 알았는데 기념품숍, 정상인 줄 알았는데 기념품숍, 정상인 줄 알았는데 가파른 산길. 여러 번 반복되니 우리는 상당히 지쳤어요. ‘다리도 아픈데 그냥 내려갈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올랐습니다.

드디어 다다른 정상!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오른 게 기쁘다’라는 말을 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주 차분했어요.

정상에서 사람들은 동전을 던지고 양초를 태우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저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양초를 250엔에 샀습니다. 제가 소망한 건 이겁니다.

         

저는 아무것도 소망하지 못했어요. 그냥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뭘 빌어야 할까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좋은 직장에 다니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그 순간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서 있다가 뒷사람 눈치가 보여 내려왔습니다. 정상에 올라도 제 기분이 뜨뜻미지근했던 건 소망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아무 목표도, 과정의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내던져도 아쉽지 않았던 걸지도 모릅니다.

다음 회사에 들어갈 땐 나름의 이상을 갖고 싶습니다.

 


 

[10년 차 근면성실백수의 레터]

🧚‍♀️ 교토 닝겐들

교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스미마셍, 아리가토고자이스, 도조 이렇게 3개 정도입니다. 해석하자면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해주세요’가 되겠죠. 그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조심해 합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걸어요. 서로 민망한 상황이거나 작게 담소를 나눌 만한 상황이 되면 스스럼 없이 말을 걸고 함께 웃습니다. 오늘은 교토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려고 해요.

🙂 베이컨 치즈 할머니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어요. 이 지하철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통근하는 사람과 여행하는 사람, 기타 볼일이 있는 사람이 완전히 뒤섞여서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서 있죠.

너무 좁아서 제가 사사에게 ‘괜찮냐’고 물어봤거든요? 근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괜찮아요?’ 하며 따라 하더라고요. 그 할머니는 앱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나 봅니다. 최근 배웠다는 문장을 보여주셨는데 너무 귀엽고 웃겨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 문장은 : ‘아침 식사로 계란과 베이컨을 먹을 건가요?’ 정작 한국사람들은 그런거 아침에 안 먹는데 말이죠.

🧑‍🦱 게스트하우스 호스트 아이상

5일을 묵은 게스트하우스의 아이씨는 1층의 이자카야와 2층의 게스트하우스를 둘 다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씨는 1층으로 아침 7시에 출근하고 12시까지 영업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일찍 나오나 싶었는데 2층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나 봐요. (추측입니다. 근데 왜 그렇게까지…?)

그는 과묵합니다. 필요할 때 외에는 먼저 말을 잘 걸지 않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먼저 말을 건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아침에 나가기 전에 1층 가게에서 살짝 멍 때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씨가 아주 작게, 저한테 말을 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일본어로 ‘오늘 어디 가냐’고 속삭였습니다.(진짜 속삭였어요) 저는 설마 나한테 말을 건 거겠어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한 10초쯤 있다가 아주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Today where you go?’라고 다시 묻더라고요. 그 속삭이는 목소리가 너무 웃기고 귀여운 이유는 ‘제가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 이자카야에 올라프 인형이 하나 있었는데요. 이 올라프, 인스타그램 계정도 있더라고요.... 아이상 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에요? 인스타그램 : @orafu1212

🧑‍🦳 이토 음식점의 주인 할머니

이 음식점은 숙소 근처에 있어서 가볍게 저녁을 먹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주문을 받으러 오실 때도 스미마셍, 아리가토. 주문을 받을 때도 스미마셍, 아리가토. 음식을 내올 때는 도조, 아리가토, 도조 구다사이. 특히 계산할 땐 아리가토를 5번은 들은 것 같아요.

처음에 들을 때는 정말, 진짜로, 진심으로 (혼또니?) 감사해서 저렇게 인사를 하는 걸까 싶었는데요. ‘실례합니다’, ‘고맙습니다’와 같은 말은 많이 쓴다고 나쁠 건 없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했네요.

👯‍♂️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제가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우리를 포함, 거의 항상 5~6명 정도는 차있었습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정말 여기저기서 왔더라고요.

핑크 머리에 마주칠 때마다 밝은 목소리로 ‘하이’ 인사를 해주던 분은 괌에서 왔습니다. 꽃무늬 치마를 즐겨 입는 분은 나고야에서 왔고요. (근데 남자입니다) 일본인 할아버지 한 분은 첫날에 라이딩 레깅스를 입고 아침식사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광주에서 강릉까지 자전거로 달린적도 있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한 달간 숙식을 제공받으며 알바를 하고 있는 쿄코도 귀여웠습니다. 도쿄에서 10년을 산 중국인 분도 있었어요. 이분이 과일을 잔뜩 가져와서 수다를 떨며 같이 먹은 밤도 있었네요. (사실 좀 졸렸어요... 12시까지 수다를...)

자유여행은 일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난다는 점도 큰 장점 같아요. 아무래도 사람에 대한 인상은 여행의 느낌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나요? 일단 교토 사람들은 너무 좋습니다.

 

 


💌 다음 레터도 내일 밤 9시에 보낼게요.


 

👩‍💻 안녕하세요. 에디터 사사와 기획자 근성백입니다. 우리는 같은 날 퇴사했어요. 그리고 교토로 떠납니다. 퇴사레터는 ‘일이 곧 나’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이지만 누구나 공감할만한 퇴사 이야기를 담아 보낼게요.

🙏 우리의 실시간 여정을 보고 싶거나, 문의하실 점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주세요. 🔗 인스타그램 @ep.11.pj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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