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사사의 레터]
🥵 절대로 그분을 화나게 해선 안 돼
우리는 퇴사의 이유를 각자 세 가지 꼽았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비슷하더군요. 바로 ‘상사’.
전 평범한 사람입니다. 일도, 글쓰기도, 심지어 대인관계도, 딱 평균. 남보다 더 잘하거나 못하지도 않는 평균치 인간이에요.
저와는 달리 제 상사 ‘방울’ 씨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침없이 일을 추진했고, 다른 팀과 협업도 훌륭하게 해냈죠. 하지만 문제는 하나. 가끔 팀원들을 벌레처럼 바라본다.
팀원들의 업무 평가가, 그날 방울 씨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한동안은 A 팀원을 혼내고, 또 한동안은 B 팀원을 미워했어요. 제 기분도 널 뛰었습니다. 잘못을 하면 사무실 모두가 알도록 팀원을 혼냈습니다. “이건 초등학생도 아는 거 아냐?” 하면서요.
‘절대 그분을 화나게 해선 안 돼!’
불행은 외부에서 옵니다. 어느 날 다른 팀 팀장이 방울 씨에게 한마디 했어요. “팀원들 너무 보채지 마세요.” 아뿔싸! 그날부터 방울 씨는 화가 잔뜩 났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업무 계획을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업무 계획을 저희는 꼭 게시판에 올립니다) 5분쯤 지났을까요. 전화가 왔습니다. “기획안이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업무 계획을 그렇게 짰냐”라고요. 그러면서 덧붙였어요. “내가 하면 30분도 안 걸리겠는데. 일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30분 정도 지나자 메신저에 기획안이 올라왔어요. 이런 멘트와 함께요. “제가 딱 30분 투자해서 작성한 기획안입니다.”
‘이 자식을 보세요. 정말 무능하고 한심합니다. 저는 아니구요’
저는 이렇게 읽혔습니다. 일을 한 지 5개월 됐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를 이해하게 된 건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즈음입니다. 방울 씨는 다른 팀으로 간 지 2개월 정도 지난 후였죠. 전 일을 할수록 점점 멍청해졌어요. 과도한 멀티태스킹과 밤낮없는 업무.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고 하지 않던 실수를 했습니다. 남의 작은 실수에도 화가 나자, 생각했어요. 아, 나는 지금 나 같지 않다. 그 순간 퍼뜩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기는 싫지만
방울 씨도 그랬을 수 있겠다.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거죠. 지금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그분도 그런…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가끔씩 나사가 빠져보이는 사람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닐 거예요. 모두 과로에 시달렸기 때문에 작은 실수에도 큰 소리가 나가는 거지요. 그리고 그런 상태로 10년, 20년이 지나면 내가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어느 날 닮아 있는 것이구요. 교토에 있으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그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10년 차 근면성실백수의 레터]
😇 대표님... 그 멀고 먼 이름
가장 1차원적으로 얘기하자면 저는 대표님의 연락을 그만 받고 싶어서 퇴사했습니다. 우리 대표님은 저에게 매일 두세 번씩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뭘 해야 한다거나, 이런 걸 신경 써야 한다거나 하는 내용을 엄청 쏟아냈어요.
저는 메모장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말로 하면 저절로 입력되는 메모장이요.
에너지가 있었다면 조금 더 버티며 잘 맞출 수 있었을까요? 유연하게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첫 번째로 나와 대표님은 업무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대표님의 방식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든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예를 들어 모든 세밀한 것까지 모두 보고받고 싶어 한다는 것들이요. 저는 주체성이 있는 환경에서 효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대표님은 1부터 10까지의 내용을 공유하며 같이 논의하기를 원했어요. 제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대표에게 내가 맞추는 것이 어쨌든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안 맞았기 때문에 저에게는 난이도가 더 높았을거라는 것을요.
두 번째는 일을 제대로 함께 하려면 깊은 신뢰를 쌓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얕은 신뢰는, 맡겨진 일을 그럭저럭 잘 해내기만 하면 쌓이겠죠. 하지만 깊은 신뢰가 쌓이기 위해서는, 너와 나의 생각과 방향이 일치함을 오랜 시간 여러 번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동안은 물론 힘들고 인내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으면 서로 느끼기에 조금 더 ‘일을 함께 하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사실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하면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잖아요. 하지만 그 신뢰가 그냥 시간이 지나면 쌓이거나 무조건 네네만 해서 쌓이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경험들이 오래 쌓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되었습니다.
대표님만 생각하면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직접 겪은 경험에 의한 깨달음은 저에게 더 진하게 남을 거라 생각해요.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온다면 이번에는 좋은 결말을 맺을 수 있겠죠…? 이 글의 씁쓸함을 생선 육수 라멘으로 달래볼게요. 내일도 밤에 만나요!
💌 다음 레터도 내일 밤 9시에 보낼게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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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레터 from 교토 (66)
늦은 답글 남깁니다. 음오아예, 저도 정말 공감되네요. 얼마전까지 제가 그러고 있었는데요... 이제 과거 이야기이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나사빠진 친절이라는 말도, 보고 저희 둘이 보고 많이 웃었어요. 공감의 글 감사드립니다. 내일의 마지막 레터도 함께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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