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레터#1] 날파리와 번아웃 : 나는 왜 퇴사했나

2024.10.29 | 조회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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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레터 from 교토

[마감] 퇴사 후 떠난 교토에서, 매일 밤 쓴 퇴사레터를 보내드릴게요. (10/28~11/8)

안녕하세요, 레터를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별일 없으면 출근을 하셨겠죠. 별일 없음을 축하드려요. 저희는 방금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교토로 출발해요. 여긴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요. 알 수 없는 한자 간판, 말은 안 통하지만 어쨌든 친절한 종업원, 당연하듯 좌측통행하는 사람들. 1시간의 비행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떨어졌습니다. 퇴사를 곱씹기 딱 좋은 환경이죠.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from 오사카

 

 

 


[1년 차 사사의 레터]

🦋 날파리의 나비효과

 

저는 어제 자취방 대청소를 했어요. 신선 식품을 비우고, 쓰레기봉투를 싹 내놨습니다. 열흘 동안 벌레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방이 작아서 쉽게 티가 나거든요.

오늘 테마는 ‘나는 왜 퇴사했나’입니다. 제 대답은 이겁니다.

-조용히 날아다니는 날파리-

회사에 다닐 때 전 꽤 바빴어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매일 10시간~12시간 정도 일한 것 같네요. 주말이요? 하루는 꼭 일했습니다. 하루는 잠만 잤구요. 수당이요? 당연히 포괄임금이죠.

“일을 많이 했다”는 고백은 부끄럽습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어디서든 꼭 나타나거든요. “나 때는 더 많이 일했다”고 말하는 선배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 엄살 부리고 있는 건가?’ 거기에 이런 말까지 들으면요? “그 시기 버티면 좋은 날 와”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되겠죠? 아, 나는 일이 미숙해서 힘든 거구나.

잠깐 제 일과를 얘기해볼게요.

미숙한 주니어의 일과 :

[10:00-19:00] 정신없이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인터넷 창을 서너 개 옮겨 다니며 내외부 소통을 합니다. ‘나의 외부 소통이 곧 회사의 얼굴’이니까요. 갖가지 회의에 들어가면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19:00-22:00] 이제 ‘집중’이 필요한 일을 시작합니다. 기획안 작성이나 글쓰기 업무입니다. 이상하게 진도는 잘 안 나갑니다. 하루 동안 멀티태스킹을 해서 뇌가 바싹 익은 상태입니다. 마른걸레 짜듯 글을 씁니다.

[퇴근] 10시쯤 모든 게 타버린 상태로 집에 갑니다. 자취방에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우면 12시. 그럼 이제 핸드폰을 하지요. 나도 모르게 잠이 듭니다. 다시 눈을 뜨면 7시 반.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런 생활을 한 지 1년쯤 지났을까요. 저의 일상은 망가졌습니다.

그날도 퇴근하고 방에 누워있는데, 벌레 한 마리가 슝- 지나갔어요. 깨달았습니다. 언제 시켜 먹은 지도 모르겠는 파스타가 싱크대에서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요. 싱크대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거죠. 그러고 보니 덮고 있는 이불은 마지막으로 빤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구요. 어쩐지 공과금이 점점 낮아지더라구요.

“버티면 좋은 날 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좋은 날까지는 바라지도 않고요. 적어도 날파리 없는 집에서 살고 싶습니다.

 

 


[10년 차 근성백의 레터]

☠️ 어느날 나에게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365일 24시간 일을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이라는 시계추는 퇴근 후에도 계속 돌아가더라고요. 마치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요. 저는, 일이 저의 가치를 상정하는 척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번아웃을 처음에는 외면했습니다. 이 또한 이겨내야 하는 시련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겨내면 한 단계 성장해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날은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만 한 날이었어요. 그 모든 회의와 논의를 마치고, 드디어 제 일을 하기 위해 저녁 8시쯤 자리에 앉았는데, 머릿속에 각종 생각들로 꽉 차서 빙빙 돌고 집중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2시간 동안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어요. 결국 퇴근을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그제야 내가 심각한 상태구나,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간 머리가 고장 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정말 정말로 무서웠어요.

처음부터 번아웃임을 인지하지는 못해요. 시작은 불안과 긴장입니다. 가고 싶었던 회사, 인정받고 싶은 상사들, 달성하고 싶은 성과 지표. 모든 것이 긴장의 요소였습니다. 저는 인정받기 위해 매일 사력을 다했어요. 자발적으로요. 그러다 마침내 힘을 다 소진했습니다. 물리적인 소진은 정신적 기능에 직격타였어요. 기억력과 판단력이 훅 떨어지더라고요. 예전만큼의 퍼포먼스를 내는데 두 배의 시간이 들었습니다.

진짜 이상하죠? 회사가 저에게 낮은 평가를 준 것도 아니고, 잘릴 위험이 있지도 않았고, 누군가 저를 탓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 스스로 그 긴장과 불안과 압박을 만들어 냈어요.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 항상 부족한 점과 개선할 점만 찾았어요. 그래야 그것을 고쳐서 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10년 차면 알아서 척척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어요.

지금에서야 알아차렸어요. 제가 얼마나 저를 혹독하게 몰아세웠는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저 힘을 좀 빼고, 그리고 너 자신을 더 잘 알아주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요. 제가 있었던 상황이 어땠는지, 그리고 제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더 슬기로웠을지를요.

내일은 안 슬기로웠던 회사 생활을 들려드리려고 해요. 우리 대표님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제 퇴사의 이유죠. 그럼 내일도 밤에 만나요!

 


💌 다음 레터도 내일 밤 9시에 보낼게요.


 

👩‍💻 안녕하세요. 에디터 사사와 기획자 근성백입니다. 우리는 같은 날 퇴사했어요. 그리고 교토로 떠납니다. 퇴사레터는 ‘일이 곧 나’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이지만 누구나 공감할만한 퇴사 이야기를 담아 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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