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사사의 레터]
🤐 교토 사람은 의중을 모르겠다.
교토 사람은 말을 돌려서 한대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쿄코상이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교토 사람이 갑자기 시계를 칭찬하면 조심해. 그건 시간 다 됐으니 여기서 나가라는 뜻이야.”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친절해도 의심했습니다. 저건 친절이 아니야. 교토 사람은 겉으로만 친절하니까. 실은 버릇이에요. 나쁜 버릇입니다.
그저께 묵은 게스트 하우스 소이의 아저씨는 과하게 친절했습니다. 우리가 저녁을 먹으러 나갈 때였어요. 아저씨는 공용공간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맛있겠네요!” 한 마디 하자 그가 갑자기 “먹을래?”라고 했습니다. “지금요? 여기서요?”
진짜 괜찮겠습니까? 라고 물어도 먹으래요. 거듭 물어도 계속 먹으래요. 멍하니 서 있으니 그가 먹던 걸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주방에 가서 면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두반장 소스를 넣은 우동이 뚝딱 나왔습니다.
그는 교토가 고향이래요. 나는 교토 사람이 끓여준 두반장 우동을 먹었습니다. 아저씨도 우리 앞에 앉았습니다. 세 사람의 후루룩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고개를 그릇에 쳐박고는 먹기만 했어요. 부끄러웠습니다. 혼자 이상한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기분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말차가 유명한 우지에서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던 아르바이트생. 한국어를 배웠다는 그 청년은 은근슬쩍 우리가 있을 때 시음 녹차를 두 번 갖다줬어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바이크 라이딩하는 손님. 우리가 길을 헤매고 있자, 다른 사람에게까지 물어가며 우리에게 빠른 길을 알려줬습니다.
실은 근성백이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도 의심했습니다. 매일 쓸 수 있을까. 가서 싸우면 어떻게 하지. 읽을 사람은 있나. 그런 근심이 가득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매일 마주 앉아 글을 썼고, 퇴사 이야기를 읽어주는 분들이 계셨으며, 교토 사람들은 친절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 소이를 떠나기 전, 우리는 아저씨에게 샤인 머스캣 한 송이를 드렸습니다. 잠시 나갔다 오니 아저씨가 샤인 머스캣을 저희 짐가방 위에 두고 갔더라고요. 분홍색 봉투도 있었습니다. 안에 벨기에 초콜릿이 담겨있었어요. 교토 사람들은 말을 돌려서 한다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요.
이번 여행은요 제 근심, 걱정, 의심에 대한 반론입니다. 이제 뭐라도 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차 근면성실백수의 레터]
💫 퇴사 전, 퇴사 중, 퇴사 후, 그리고 바로 지금
퇴사한 지 한 달이 되었어요. 이제야 퇴사를 했음이 실감이 납니다. 이전엔 실감이 안 났던 이유가, 제 생각에는 퇴사에 대해 계에속 곱씹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그동안 내내 ‘퇴사 중’ 상태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퇴사의 전중후 상태에 대해 써볼까 해요.
📍 퇴사 전
대표님에게 퇴사를 말하기 전 약 3개월 동안을 퇴사를 말할까 말까, 언제 말할까, 뭐라고 말할까 계속 고민했어요. 퇴사 시기에 대한 고민이 정말 컸습니다.
두 번째 고민은 내가 퇴사를 하는 것이 맞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퇴사라는 선택지가 내 커리어에 있어 좋은 기회를 날리는 게 아닐지, 회사를 더 다니면 좋은 기회들이 있을 텐데 등등 퇴사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들었죠.
📍 퇴사 중 1
그럼에도 저는 이 직무의 일을 더 이상 못하겠다고 느낀 어느 날 퇴사를 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퇴사 선언 후 실제 퇴사일로부터 한 달의 텀이 있었는데, 일은 줄어들어서 한가한데 그 한가함이 처음에는 못견디겠더라고요. 다들 바쁘고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나 혼자 그 자리에서 표류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빨리 퇴사 날이 되기 만을 바랬습니다.
📍 퇴사 중 2
마침내 퇴사 일이 다가오고 그 날 퇴사를 하고 다음 날부터 회사를 안 가게 되었습니다. 미치겠는 건, 여전히 저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하루 종일 혼자 종종 거렸습니다. 괜히 노트북을 열어보고 자료를 정리하고 시간을 체크하고 이런 식으로요. 거의 병적인 수준이네요.
그래서 한동안 퇴사가 전혀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결심한 것이 있어요. ‘뭔가 중요한 걸 해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자’입니다. 대신 ‘별 힘이 들지 않는 작은 일들로 일상을 채워보자’고 다짐했어요.
저는 매일 무엇을 소소하게 했냐면요. 매일 하루 3끼를 간단하게 차려 먹기. 기본 밑반찬 몇가지와 잡곡밥으로, 그리고 양도 적당히 배부를 만큼만 먹었어요. 그리고 밥 먹은 후에는 꼭 조금이라도 나가서 걷고요. 그리고 오늘은 책상 위 청소하기. 내일은 이 책 몇 페이지 보기. 이런식으로 작고 소소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회사 다닐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항상 있었어요. 그 무언가를 하면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이 너무 힘들었어요. 퇴사 후에는, 잘 못해도 되는, 그저 나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할 일’로 설정함으로써 해야 한다는 압박,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고뇌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 퇴사 후 - 교토 여행
저는 교토 여행을 마칠 즈음이 되어 비로소 퇴사를 한 느낌입니다. 회사, 일, 성과, 인간관계 등 나 자신이 스스로 부과한 어려운 삶의 과제들에서 벗어나게 된 시점입니다.
교토에 와서는 당장 눈앞의 좋은 것을 잘 즐기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후회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저 이 순간만 눈과 마음에 가득 담으면 저의 할 일은 끝인 거죠.
여행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라 이 순간에 집중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돌아가서도 과거나 미래에 살지 않고 현재의 순간만을 온전히 느낀 이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것이 제가 여행에서 얻은 것 중 최고일 것 같습니다.
PS 여행 중 아픈 것은 처음인데요. 아파보니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배탈이 나서도 맛있는 거 먹겠다고 열심히 입에 넣는 것을 보니… 그 순간에 매우 충실했던 것 같네요.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 다음 레터도 내일 밤 9시에 보낼게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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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씨
안녕하세요! 매일 두분의 글을 읽으며 감상에 젖고 있는 독자입니다. 먼저 매력적인 필력으로 매일 감탄하며 읽고 있습니다. 글만 읽어도 제가 직접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설레기도하고 느껴지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벌써 내일이 마지막 레터가 되네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글을 통해 에디터라는 직업의 어려움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되었습니다. 업무는 다르지만 직장인의 노고는 비슷하네요. 많이 공감되고 저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근성백님께서는 몸이 좀 좋아지셨나요? 긴장속에 계시다가 풀리셔서 몸이 오히려 좋아지려고 명현현상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추워지는 날씨, 두 분 모두 몸 조심하시고 마지막까지 레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퇴사레터 from 교토 (66)
안녕하세요, 미야씨님! :) 근성백이에요. 서울 집, 제 책상에서 답글을 남깁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동이었어요. 마지막까지 레터 기다려 주셔서 장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건강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방금 떡볶이를 배에 잔뜩 밀어넣었는데 배가 안 아프네요.) 내일 에필로그 레터까지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부디!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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