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자자족

17. 주인장이 되어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2023.08.31 | 조회 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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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익어가는 여름밤, 열일곱번째 편지를 쓰는 '곰자자족'입니다.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만 해도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고, 드문드문 알바를 했었는데요. 3개월이 지난 현재, 개점휴업처럼 일력을 텅 비워둔 채 다른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비 서점 창업자 수업을 수료하고 오프라인 멘토링과 인턴십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기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여전히 조율하고 상의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 대책없이 낙관하며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책방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이 한 줄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려진다. 뭐라고? 책방을 한다고? 요즘 누가 책을 읽어? 제대로 따져 본거야? 맞는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1년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간 1권 이상 책을 읽었다고 답한 성인 비율은 47.5%로 나타났다. 이 말은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뜻이다. 4년 전 경기 군포시에 터무니책방을 연 엄선 작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책방이라니, 정말 터무니없군요.” 책방 이름이 ‘터무니’된 연유다.

굳이 다른 사람들 말을 빌려올 필요 없이 책 팔이가 얼마나 어려운 지는 짧게나마 몸담았던 출판세계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매일 아침 온라인 서점 공급관리시스템(SCM)에 접속해 일일 판매량을 확인하며 마음을 졸였던 때가 많았으니까. 편집자가 애써 만든 책의 전일 판매량이 0이라는 걸 확인할 때, 그리고 적게나마 광고비를 지출하며 홍보했음에도 도서 판매가 미미할 때 나는 종종 미안하고 안타깝고 애석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루에도 몇 백 몇 천만 원씩 광고비를 집행하다가 하루에 만 원 혹은 한 달에 백만 원 조금 넘는 광고비를 쓰면서 판매 효과를 일으켜야 했던 그 당시의 나는 꼭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책방을 하겠다는 나의 마음은, 그러나 비장하기보다는 설렌다. 애초에 책방으로 돈 벌 생각 같은 건 없었으니 도리어 내 마음은 가볍다. 경제적 부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어쩐지 경험 부자, 사람 부자, 무엇보다 확실한 마음 부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때문에 아기를 태워 유아차를 끌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시장가 골목 구석구석을, 예전 같으면 무관심하게 지나쳤을 상가나 건물 1층부터 꼭대기까지 훑어보는 나의 눈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진 공간, 나의 취향을 담은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골똘히 생각하는 이 시간이, 동네의 다양한 얼굴들을 만날 미래를 상상하는 현재가 무척 즐겁다.

그리고 지금은 이름 짓기에 꽂혀 있다.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는 의미, 책이 사람을 부르는 서점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는 콜링북스(@iam.callingbooks)의 브랜딩 스토리를 듣게 된 뒤로 줄곧. 그곳처럼 근사하면서도 의미 있게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이름을 짓겠다는 일념 하에 내 머릿속의 작명소를 열어두고 이것저것을 조합해보는 중이다책방을 만든다면 단순히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라 동네의 문화공간이자 지역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니까 ‘연남장’(연희동의 지역 창작자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처럼 이름은 투박해보이지만 고유성을 내포한 느낌이면 좋겠는데...하다가

가장 먼저 생각한 이름은 주인장이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매일 만나는 일상의 주인이 되기를, 또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따라하지 말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추가로 덧붙이면 책방을 오는 사람들이 손님이 아니라 책방을 존재하게 하는 또 다른 주인이라는 나의 마음까지도 포괄하는, 투박하지만 들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이름 후보다. 물론 책방 이름으로 주인장어떠냐는 내 얘기에 짝꿍은 듣자마자 빵 터졌지만. 촌스럽지만 그 촌스럽고 투박한 것 또한 나름 나를 닮은 것 같아 농담처럼 툭 던진 이름이 볼수록 마음에 든다. 

두 번째로는 용기기운이라는 단어를 조합하는 것이다. 일에서, 사람에게서, 어떤 의무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던 때 책은 늘 나에게 다시 한 번 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책 속에서 반짝이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밑줄 그으면서 다시 기운을 얻었듯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생각한 이름 후보군이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기를, 그들을 응원하며 나 또한 책방 운영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 안에서 건져올린 단어들이다. 

이제부터는 점점 더 말하기(쓰기) 자신 없어지지만 그 동안 개인 계정에 내가 발견한 문장을 소개하는 #문장중개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꽤 오랜 시간 책 소개를 해왔으니 부동산 말고 ‘책동산’이라든가 ‘문장산책’도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자가발전소’도 생각했던 것 중 하나였고. (물론 자가발전소는 당인리책발전소의 유사품 같은 느낌)

말장난 같지만 아무 단어나 툭 던지며 나 혼자 마음 속으로 떠나보는 브레인스토밍이 꽤 즐겁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우리집을 찾아주고 계약이 성사되자 우리 부부보다도 먼저 우셨던) 부동산 사장님을 찾아가야지 생각만 해두었을 뿐이지 아직 책방을 할 만한 자리를 본격적으로 알아보지도 않았고, 당장 책방을 내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지원사업 같은 것들도 제대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것 또한 결국 알아보고 찾게 될 나를 은연 중에 내가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책방은 어떤 콘셉트로 할지, 책방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책방에는 어떤 책들을 들여놓을지, 책방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운영할지 막연하게 생각해보는 이 시간을 또한 즐기는 중이다. 

언젠가 분명해질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기를, 또 각자가 이야기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되기를 꿈꾼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겠지만 크고 작은 시도를 거듭하며 다음 단계를 발견하는 내가 되기를, 용기 내어 돌파하면서 점점 나아지는 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주인장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P.S 책방으로 돈 벌 생각이 없다는 제 문장에 오해가 있을까봐 남겨둡니다. 책방 운영으로 월세는 낼 수 있도록, 최소한 적자는 면할 수 있게 되도록 하고 돈은 이전처럼 프리랜서로 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책방 운영만으로 돈 벌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일단은 여기까지! 저의 부푼 낭만에 현실감을 끼얹지 말아주시고 응원만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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