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자자족

40.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야

너의 시작을 응원해

2024.03.08 | 조회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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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3월의 첫 주말로 무사히 다다르고 계신지요? 저는 아주 오랜만에 새학기를 맞이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떨리고도 설레는 한주를 보냈습니다. 아이의 어린이집 입학 덕분예요. 몸은 분주했지만 이렇게 3월의 시작을 느껴본 게 언제였나 싶어 가방을 싸고 준비물을 챙기는 마음은 꽤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또 다른 출발이 되겠죠? 지난 며칠을 복기하는 마음으로 이번 뉴스레터를 전해 드립니다.

아이의 어린이집 입학식을 앞둔 하루 전날 밤이었다. 빠진 것 없이 다 챙겼겠지 싶어 마지막 점검 겸 어린이집 준비물을 확인하다가 입학원서에 붙여야 하는 아이 사진을 인화해두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주말에 준비한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 급한대로 냉장고에 붙여둔 4*6 사이즈 아이 사진에 얼굴만 오려 붙일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사진 속 얼굴이 너무 컸다. 24시간 무인 프린트 카페라도 가볼까 고민했으나 컬러 인쇄해도 이상할 것 같았다. 우리처럼 아이 사진이나 기타 서류를 준비하지 못한 부모가 분명 한 팀은 더 있을 거라 막연한 낙관적 믿음으로 포기하려던 때, 짝꿍이 외쳤다. “편의점에서 인화할 수 있대!” 세상에 이토록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니! 덕분에 빠짐없이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직 걷지 못하는데 다른 아이들에게 밟히거나 치이면 어쩌지? 장난감을 갖고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을 때도 많은데 어린이집에서 점심도 못 먹고 오는 건 아닐까? 아이가 선생님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며 생활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행히 뒤척이며 잠 못 이뤘던 밤과 달리 막상 당일 아침에는 설렜다. 아이가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또 아이 덕분에 나는 어떤 엄마와 교류하게 될지 은근히 기대되는 마음. 마치 새 학기 새반에서 새로운 짝꿍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나까지 등교하는 것처럼 떨려 괜히 더 크게 동요를 흥얼거리면서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은 이미 입구부터 정체였다. 아이와 부모가 차례대로 선생님들이 깔아둔 레드카펫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이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열심히 찍히는 중) 선생님들은 정말 이보다 더 활짝 웃을 수 없을 만큼 환한 얼굴로 경쾌하게 환영인사를 해주고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웃기보단 울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너무 많은 얼굴들이 자신만 쳐다보면서 손을 뻗고 큰 소리를 내는 게 무서워 보였을 것 같기도. 그렇지만 엄마 뒤에 꼭꼭 숨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아이도, 울면서 되돌아 현관으로 나가려던 아이도 모두 마침내 공동 거실에 앉았다.  

부모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사실 아이 소개)를 하고 다같이 축하 노래를 불렀는데 옆 사람을 마주보며 반갑게 인사하라는 동요에 맞춰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들은 모두 어른들이었다.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거나 낯설어 얌전히 있는 쪽이었으니까) 아마도 동네 혹은 같은 아파트 주민일테지만, 어쨌든 처음 보는 누군가와 이만큼 입꼬리를 올리고 양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인사해볼 일이 과연 또 있으려나. 이런 자리 아니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로 어색해하면서도 기꺼이 그 어색함을 즐기고 애쓰는 모습들이 나는 그 자체로 좋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신나게 즐겼다. 

입학식의 하이라이트는 부모가 직접 찍은 아이의 입학 축하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제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입학 축하영상은 어린이집의 부모 과제였음을 여기서 밝힙니다 ㅋㅋㅋ) 놀랍게도 영상 멘트는 거의 같았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이 순도 100%의 진심인 걸 영상 찍은 나부터 너무 잘 아니까 몇 번이고 똑같이 반복되는 그 말이 전혀 지루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양보하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나 또한 했으면서 속으로는 만약 아이가 친구와 싸우더라도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솔직히 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게 위선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 등원 3일차였던 목요일에는 드디어 ‘아이가 부모 없이 한 시간 어린이집 생활하기’에 도전했다. 데려다 주고 돌아 나오는데 우는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를 쳐다보는 우리 아이도 보였다. 괜찮을까? 돌아오라는 연락이 언제 올지 몰라 바로 앞 카페에서 같은 반 아이 엄마 둘과 앉아 대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생각보다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잘 있었을까? 과연 울지 않았을까? 뭐하고 놀았을까. 간식은 잘 먹었으려나. 그 잠깐 사이에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자동으로 아이부터 찾았다. 안 울고 잘 놀았다는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안심하면서도 얼른 팔을 뻗어 아이를 번쩍 안았다. 폭 안기는 아이에게 잘했다고 기특하다면서 등과 볼을 어루만지다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서로가 독립적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겠지? 어제처럼 떨어지는 게 아무렇지 않다가 또 어떤 날은 이상할 만큼 불안해하면서 찾는 날도 있을 테고. 이젠 정말 익숙해졌다가도 다시 어색해지는 순간이 분명 찾아오지 않을까? 그런 반복의 과정을 통해 나도, 아이도 새로운 세상에 도착할 테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더 다양하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어서와,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일단 뉴스레터가 발행되는 오늘도 아이가 나 없이 무사히 두 시간을 잘 보내주기를 빌어본다. 

 

[예고] <코너 속 코너> 

은둔자 님의 코너 속 코너 연재에 이어 저도 저의 코너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원래 계획은 오늘부터 실어보려 했으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구독자 님이 궁금한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지 말예요. 

  • 곰자자족의 책방투어
  • 5도2촌 빈집찾기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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