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39. 자기계발서 편집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책을 만들까?

편집자도 결국 직장인이다.

2024.03.01 | 조회 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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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즐거운 연휴를 맞이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타인의 질책을 받기도 하는 저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일이란 것이 어찌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겠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가 제 일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계속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 같아요. 구독자님도 일하면서 고민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출판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픈톡방이 있다. 편집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영업마케터, 디자이너, 번역자를 포함해 작가 지망생, 출판 관련 기자들까지 익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그 방에서조차 종종 올라오는 질문이 있다.

자기계발서가 잘 팔릴 때 특정 책을 지칭하며 올라오곤 하는데 저런 책은 무슨 생각으로 만드는 걸까요?’라는 질문이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해서는 관련자의 노고와 실력을 무시할 수 있는 발언이라며 자제하라는 흐름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저 질문을 보게 될 때마다 출판 관계자들조차 자기계발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의 책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애초에 특정 장르만을 오래 만들어온 편집자는 아니다. 최근 회사의 방침에 따라 자기계발서까지 담당하게 되면서 정말로 문학과 만화 빼고는 다 손을 대본 편집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나에게 자기계발서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대표성 따위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고 하면, 최근에 작업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자기계발서는 현재 서점가의 종합베스트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성공학 관련 주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 여전히 그 중심에는 동기부여라는 키워드가 있다. 내가 내 일을 더 잘하게 하거나, 내 삶을 정돈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법, 나아가 그 성취감이 더 큰 목표를 갖게 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법 등을 다룬다. 그 방법론으로 시간 관리, 루틴, 더 나은 기획을 위한 말하기와 글쓰기 등을 담았다.

인생에서 동기부여는 정말 중요할까?
인생에서 동기부여는 정말 중요할까?

이 과정에서 나 역시 동기부여가 삶에 그토록 중요한가?’라는 의구심으로 일을 시작했다. 사실 작년 내내 정신적으로 복닥거리는 생활을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앞에서 말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모든 편집자가 그런 것은 아닌데, 나는 유독 내가 진행하는 원고에 동의가 되지 않으면 작업 과정 내내 힘들어하는 편이다. 물론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더 진정성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유능한 편집자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적 가치관을 일에 너무 많이 개입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냥 타고난 나의 성정이 그런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런 캐릭터의 편집자로 살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한 명의 직장인이고 회사의 필요에 의한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계속 일하고자 한다면 내 안에서 저 물음에 대한 답을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치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고민에 대한 나의 답은 동기부여란 중요하다!’였다. 일을 해야 하니 나도 모르는 내 안의 합리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삶에서 동기부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왜 나는 그간 자기계발서보단 교양 개론서나 사회과학서에 집중했을까? 답은 간단하게도 그 책들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깊진 못해도 다양한 주제의 교양과 지식을 쌓는 것이 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필요했다. 다양한 잡학 지식에서 파생되는 기획 아이템, 편집 아이디어, 제목이나 카피를 위한 표현, 시선을 사로잡는 표지 구성 등. 나에게 독서란 그 자체로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분명 일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 자기계발서를 읽고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책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독자가 남긴 후기를 본 적이 있는데, 비록 많은 책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주기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작심삼일을 극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라는 말에 반감을 갖는 것은 자기계발의 목적을 성공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의 정의는 매우 편협해서 대체로 경제적 부를 중심으로 다룬다. 게다가 그 책을 읽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그 주장에 동의가 안 되기도 할뿐더러, 동의한다고 해도 책의 소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보단 불안을 전파하는 것이 얼마나 불쾌할까?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식은 타협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올해 기획을 위해 세우게 된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1. 최대한 불필요한 불안을 자극하지 말 것

2. ‘성공의 정의를 최대한 다양한 각도로 펼칠 것

3. 뜬구름 잡는 담론보단 실제적인 방법론을 공유하는 것에 집중할 것

이다. 경제적인 부보다는 독자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싶게 만들고, 실제로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 꾸준함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나 혼자 말고 우리가 함께 잘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를 찾는 것이 올해의 내 기획 방향이자 숙제다.

어쩌면 이런 기준은 현재 잘 팔리고 있는 결이 책과 맞지 않거나, 숫자상으로는 사람들이 덜 관심을 가질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결국 나의 궁극적인 직업적 역할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과정이 아마도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실험일 텐데 고민하는 것이 좀 괴롭더라도 부디 스스로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를, 내가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코너 속 코너> 덕질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나에게도 동기부여가 중요한 가치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 있다. 그건 인피니트의 크리스마스 라이브 방송에 힌트가 있었다.(본디 깨달음이란 사소한 것에서 찾아오는 법! ㅎㅎ) 완전체로 돌아온 인피니트는 작년에 정말 오랜만에 음악방송을 했는데, 나의 최애는 그 순간이 너무 떨렸다고 했다.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 마음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데뷔한 지 13년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일을 너무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니. 그 순간 나는 내가 굳이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꾸준히 성실하게 연습하고 그래서 늘 더 좋은 무대를 가지고 오는 아티스트를 덕질하고 있으니 딱히 다른 동기부여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내 일을 더 사랑해야지’ 다짐하곤 했는데 그게 곧 동기부여였던 셈이다. 나의 최애는 늘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기다리기만 하면 더 좋은 것들을 보여준다.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일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기획하고 세상에 보여주려는 책들도 어느 면이든 항상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P.S 저의 최애가 곧 <디어 에반 핸슨>이라는 뮤지컬을 시작합니다. 계속 더 성장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로서의 모습에도 함께 관심 가져주시면 제가 감사하겠습니다! :) (도대체 제가 뭐라고 감사하다는 걸까 스스로도 우습긴 합니다만 이게 또 덕후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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