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유부

41. 어쩌다 정리

나는 왜 정리가 하고 싶어졌을까?

2024.03.15 | 조회 106 |
0
|

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인생의 방학을 보내며 지속가능한 일, 삶을 고민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부유하는 유부입니다. 지난 레터 피드백으로 시작할 때 에디터의 간략 소개가 있었으면 한다는 의견이 있어 이렇게 적극 수용해 봤습니다. 세 에디터가 더 궁금하다면 하단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좋으니 계속해서 많은 의견과 조언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구독자님의 단정한 오늘을 응원하며, 일기 속에서 찾은 요즘 일상을 공유해보겠습니다!

일류여성 에디터 알아보기


매일 밤 손으로 일기를 쓴지 이제 5년차. 이렇게 적으니 대단한 기록가 같지만 사실 날씨 기입을 시작으로 오늘은 참 00했다라고 적는 마무리까지 초등학생의 일기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수준 높은 요즘 초등학생들에 비춰본다면 많이 부족할 거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기록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다이어리 앞 장 달력에 그 날의 키워드를 적기 시작했다. 그저 쓰는 기록이 아니라 미래 내가 읽어볼 기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말이다.

새해 첫날의 제목은 끝과 시작-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였다. 이렇게 관람한 영화나 전시에 대한 감상이 적힌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수선화 싹 발견’, ‘2.5km 달리기 성공같은 일상의 작은 기쁨도 기록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어쩌다 서랍정리어쩌다 당근’과 같은 마치 청소광? 같은 '어쩌다'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어쩌다’라는 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난 계획형 인간이 아니다. 상황과 감정에 이끌려 때때로, 갑자기! 뜬금없이 일을 벌이곤 한다.  

지난 주 양말 뭉치 속에서 운동 양말 한 짝을 찾다가 서랍에 손등을 드-륵 긁혀 버렸다. 쓸린 살갗의 아픔보다 양말 하나 쉽게 찾지 못하는 상황에 짜증 차올랐다. 운동 가겠다던 다짐은 접어버리고 서랍 속 양말을 몽땅 꺼내 놓았다. ‘이게 뭐라고 내가 피를 봐!’ 그게 시작이었다. 발목이 늘어난 양말, 자리만 차지하고 입지 않던 옷들까지 버릴 것들을 추리니 고작 두 개의 서랍 뿐이었는데 20리터 쓰레기 봉투를 가득 채웠다.

지난 주말에는 남편이 물건을 찾으려 꺼내 놓은 상자 속에서 잠자던 피규어를 발견했다. KBO에 열광했던 과거의 내가 고이 모셔 놓았던 구단별 캐릭터였다. 하지만 과거일 뿐. 야구에 푹 빠져있던 난 이제 축구로 갈아탔다 ㅎㅎ 다시 봐도 피규어는 너무 귀여웠지만, ‘다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에 당근을 단행했다. 월요일에는 어떤 연유도 없이, 갑자기 옷방의 시그니처!였던 옷 무덤 스팟을 정리해버렸다. 물론 진짜 청소광 브라이언이 우리 집을 본다면 여전히 싸가지 없어!’라고 소리칠 것 같긴 하나 내게는 장족의 발전이다.

하다하다 남의 집 철거까지 했다. 수요일 아침, 에어컨 실외기 쪽 블라인드를 걷고 나서 잠시 벙쪄 있었다. ‘내가 갖다 놓았던가?? 설마 그럴 리가…’ 실외기 뒷편에는 스무개 남짓 나뭇가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까치집이었다. 요 며칠 베란다 근처에서 새소리가 들려 설마설마 했는데 설마가 아니었다. 실외기를 둥지로 삼는 까치들은 의외로 많았고, 화재 위험이 있다는 검색 결과에 철거에 돌입했다. 다행히 공정률 5% 미만의 까치집은 금방 제거할 수 있었다. (부디 다른 안전한 곳에서 새 식구를 맞이하길🙏) 어쩌다 보니 집 안팎으로 정리 이슈가 많은 요즘이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정리가 하고 싶어졌을까? 일기장의 제목들을 보며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무슨 바람이 불어서. 분명 오래가지 못할 정리를 그렇게 꾸역꾸역 하고 있을까? 질문만 하다가 곰자자족이 권한 책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다 근사한 아파트에 살 수는 없어.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오래되고 낡고 좁은 집에 살아도 그 집을 자기 취향에 맞게 잘 꾸미고 가꾸면 괜찮아. 집은 네 몸을 담는, 네 하루하루가 만들어지는 공간이잖아. 하찮게 취급할 수는 없지. 이런 집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어.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요즘 무의식적으로 집을 정리하던 이유는 내가 가장 많이 머물고 있는, 나의 하루가 되는 공간이 집이기 때문일거다. 또 계절을 알 수 없게 쌓여버린 옷가지와 짝을 잃고 헤매는 양말들이 어지러운 내 모습과 닮았다고 느껴 짜증이 난 듯 하다. 결국 나를 청소로 이끈 건 나를 만드는 공간을 단정하게 가꾸면 일상도 좀 더 정돈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일차원적인 바람이었다. 그럼에도 효과는 확실했다. 정리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명확하고, 일단 정리된 곳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효능이 있다! 

생각해보면 집 밖에 있던 시간이 많았을 때는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필요가 아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샀던, 뜯지도 않은 택배를 왕왕 쌓아 놓았다. 그때 나의 하루를 만들던 공간은 회사였다. 그리고 나의 하루는 집에서 채워진다. 집은 잠만 자던 공간에서 일터로, 공부방으로, 놀이터로 바뀌었다. 집에서 할 일이 많아지니 비어 있는 벽을 보는 게 꽤나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 큰 집으로 이사한다면 쉬이 이룰 수도 있겠다 ㅎㅎ) 집은 창고가 아니니까, 나의 하루니까. 부디 무얼 살 때 만큼은 계획적인 사람이 되길 미래의 나에게 당부해본다.

실외기 뒷편에 자리 잡았던 까치집의 비포 & 애프터. 재발 방지를 위해 천적이라는 부엉이 사진을 붙여 놓고, 까치가 싫어한다는 나프탈렌도 부착했습니다. 만일의 상황에 참고하시길 바라며, 까치들의 안전한 봄을 기원해봅니다. 
실외기 뒷편에 자리 잡았던 까치집의 비포 & 애프터. 재발 방지를 위해 천적이라는 부엉이 사진을 붙여 놓고, 까치가 싫어한다는 나프탈렌도 부착했습니다. 만일의 상황에 참고하시길 바라며, 까치들의 안전한 봄을 기원해봅니다. 

 

✅이번 주 일류여성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만족스럽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더 깊고 나아진 일류여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피드백 남기러 가기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일류여성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