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일류여성

[우리 이야기] 사랑을 노력하는 게 왜 말이 안 되니?

-우리는 언론반에서 만났지만 아무도 언론인이 되지 못했다 ⓵ 곰자자족 편

2024.02.02 | 조회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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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지난 주 레터에 이어 현재의 에디터 3명이 어쩌다 함께 레터를 쓰게 되었는지 알려드리고 싶어서 준비한 기획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 함께 들여다봐주세요. 오래된 이야기여서 조금 길 것 같으니 이것도 양해를 부탁드려요.

사실 곰자자족(이하 곰자) 에디터와 처음 만난 것이 언론고시반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OT를 참석하지 못한 채 대학교에 입학해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같은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동기가 있었는데, 그 동기가 OT에서 같은 조였다며 소개해준 또다른 동기가 곰자였다. 우리는 자주 수업을 같이 듣는 무리에 속했고 살면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거의 별명을 부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본명보다 곰자라는 별명을 더 많이 부르는 친구였지만 생각해보면 개별적으로 밀착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생각이나 취향이 달랐다. 성격도 그랬는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곰자는 주변의 사람들을 대체로 선의로 대하고 관계를 잘 묶어내는 힘이 있었다. 반대로 나는 지금도 은둔자라는 별명을 쓰는 것처럼 고단할수록 혼자 침잠하는 편이었고 심지어 당시의 나는 훨씬 뾰족하고 자기 본위적인 사람이었다. 그건 타고난 본성도 있었고 여러 주변 환경들 때문에 가족의 삶도 너무 많이 나눠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 외의 다른 사람에게 노력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빨간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언론고시반이 있던 자리. 지금은 위치를 옮긴 것 같다. 사진은 부유하는 유부님이 공유해주셨습니다.
빨간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언론고시반이 있던 자리. 지금은 위치를 옮긴 것 같다. 사진은 부유하는 유부님이 공유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고시반 생활을 함께 했을 때로 보는 것이 맞다. 우리는 많은 이력서를 썼고 여러 채용 과정을 지나갔으며 모든 곳에서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곰자는 기자를 준비했고 나는 라디오 PD를 준비했으니 이것도 꼭 같은 직종이라고 볼 수는 없었는데 그래도 고시반에서 함께 준비하다 보니 조금 더 서로의 꿈과 계획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더랬다.

그러다 내가 곰자보다 조금 더 빨리 고시반 생활을 청산했고 유관기관의 인턴 등을 하면서 혼자 PD 입사 준비를 했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아마 내가 왜 떨어졌는지 느끼고 있을 것이다. PD라 함은 결국 관계 속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토록 혼자 있었으니 조직 내에서 융화하기 어려운 사람이란 걸 업계 베테랑들이 몰랐을 리가. 그런데 나는 그때 그런 나를 몰랐다. 그냥 계속 몰랐다. 20대의 나는 나를 아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한 채 원서를 쓰고 시험을 보고 떨어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당연히 나는 점점 더 혼자 가라앉았다. 어쩌면 당시의 나는 위험한 상태였을지도 몰랐다.

그런 나를 수시로 똑똑 문을 두드려 밖으로 끌어낸 것이 곰자였다. 입사 준비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해에 나는 어김없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하필 그놈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인해 아예 채용이 없는 방송사도 늘어나서 도전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기도 하고 라디오 PD라는 직무를 뽑지 않아서 다른 직무로 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곰자는 나에게 결과를 묻는 문자를 보내곤 했는데 당시의 표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OO, 나 지금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건데 결과는 어떻게 됐어?’라고 했다.

그때 내가 어떻게 답장을 보냈는지는 오히려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건데라는 표현이다. 전화로는 내가 연락을 받지 않을 것을 알았을 테고, 문자로 묻다가 자칫 내가 더 속상해 할까봐 본인이 매우 조심스럽게 묻고 있음을 스스로 글자로 알려준 것이 당시의 내겐 아주 큰 위안이었다. 누구도 그만큼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여러 번 괜찮은지 물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우리가 떨어질 때마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스스로 불합격을 입밖으로 내는 것이 마치 인생의 실패나 되는 듯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말 마지막으로 곰자도 나도 언론사 시험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을 즈음 우리는 만났다. 너무 우중충한 곳에서 만나기는 싫어서 적당히 화사한 식당이었는데 마치 대단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선언했다. 이제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겠노라고. 그리고 그 식당에서 마주 보고 마지막으로 울었다. (대낮이었고, 테이블도 식당 한가운데였는데. 남들이 봤으면 엄청 사연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ㅎㅎ)

이후로 곰자는 바로 홍보대행 일을 시작했고, 나는 다른 몇 군데의 일반 회사를 거쳐 출판사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자주, 열심히 응원했다. 곰자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마치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일로도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해지기를 아주 많이 바랐다. 그런 것 치고는 둘 다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곰자는 자주 새벽 퇴근을 했고 나도 8시 출근 11시 퇴근하는 삶을 꽤 오래 살아야 했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잊지 않고 연락하고 일상을 공유했다.

함께 갔던 해운대 바닷가. 차마 둘 다 얼굴이 나온 사진은 올릴 수가 없다. 곰자가 아니고 내가 문제여서. ㅎㅎ 봄에 가서 사람이 별로 없는 해운대를 신기해하면서 찍었더랬다.
함께 갔던 해운대 바닷가. 차마 둘 다 얼굴이 나온 사진은 올릴 수가 없다. 곰자가 아니고 내가 문제여서. ㅎㅎ 봄에 가서 사람이 별로 없는 해운대를 신기해하면서 찍었더랬다.

정말 바쁜 시간을 쪼개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 둘 다 얼마나 바쁠 때 갔는지 정말 여행 계획이라고는 하나도 짜지 못하고 내려가는 교통편과 숙소만 예약한 채 출발했었다. 계획이 없으니 도착과 동시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서너 시간 밀린 수다를 떨기도 하고 맛집 검색도 없이 걷다가 배고프면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국토대장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짐을 싸들고 내내 걷고 버스를 타고 해동용궁사며 태종대도 올라가고. 그때 수다 떨고 구경하느라 얼마나 덜 먹고 많이 걸었는지 23일 여행 다녀왔는데 3kg이 빠져 있을 지경이었는데(물론 그게 다 살은 아니었고 붓기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가본 부산 여행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노력으로 하나씩 쌓아 올린 벽돌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 곰자자족 님도 동의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ㅎㅎ) 곰자가 결혼을 하고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다이애나가 앤에게 말했던 너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라는 말의 의미를 내가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편지로 고백도 했다. 곰자가 아이를 낳고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 뉴스레터를 발행해보자고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곰자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뉴스레터를 시작한 것은 그보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고, 역시나 주체적으로 이 멤버를 묶는 일을 실행한 것도 관계를 소중히 여겨온 곰자다. 제안은 내가 했지만 실제로 난 숟가락만 얹은 셈이 되었다. ㅎㅎ)

우리는 20대에 꿈꾼 일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보람도 느끼고 다르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면서 현재를 누리고 있다. 어떤 날은 행복하고 또 어떤 날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잘 견디며 나아갈 것임을 믿고 있다. 하고 싶었던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행복은 서로 노력하고 나누는 마음의 관계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서로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디 지금처럼, 서로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는 데 이 뉴스레터가 계속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코너 속의 코너> 덕질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오늘 레터의 제목은 역시나 애정하는 인피니트의 멤버 우현이 한 말에서 가져왔다. 우현이는 종종 인스타 라방을 통해 팬들이 듣고 싶어하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불러주곤 한다. 작년 2월에도 팬들 신청곡 중 하나인 박원의 노력을 다 부르고 나서 그런 얘길 했다. “사랑도 노력하면 되긴 되는데라고(노래 중간에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는 가사가 있어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이건 이전의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인데. 본인의 무대를 보러 오느라 춥고 더운 날 길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열심히 노래를 들어주는 이 모든 것이 노력이 아니냐고. 팬들은 결국 노력해서 사랑을 주고 있으니 그걸 감사하게 여기고 본인도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서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명제처럼 떠돌고 있지만 사실 오래된 관계는 대부분 서로의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인 경우가 더 많다. 서로를 상처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힘들 때 지지해주고 싶어 하고 기쁠 때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야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농담처럼,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인증받은 인격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생각이 많고 그래서 이런저런 불만이 많은 나를 지금까지 견뎌준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표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감사가 나의 곁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행운이 되어 돌아가면 좋겠다.

 

이것 저것 알려드립니다

*아아! 알립니다 다음주 발행일은 2월 9일로 민족대명절인 설 연휴죠. 그래서 저희도 한 주 쉬어갑니다. 곰자자족 님이 만난 부유하는 유부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더라도 2월 16일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피드백 답변드려요 지난 주 저희가 만났던 카페를 궁금해하신 구독자님이 계셨어요. 합정에 있는 카페꼼마였답니다. 부유하는 유부님이 문학동네 북클럽 회원이셔서 좋은 장소를 소개해주셨거든요. 혹시 다른 분들도 궁금해하실 수 있으니 지도를 링크로 걸어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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