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자자족

38. 믿는 만큼 자란다

너만의 속도로 성장해도 괜찮아

2024.01.19 | 조회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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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어느 덧 1월도 중후반을 넘어가고 있네요. 오늘은 숨기고도 싶은,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를 조심스레 펼쳐볼까 합니다. 과몰입하면서 스스로를 들볶았던 시간에서 벗어나니 그것이 얼마나 저를 해치는 행동이었는지 보이더라고요. 그때의 불쾌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비워내고자 오늘의 글을 씁니다. 다소 거친 글로 금요일 아침의 피로도를 높게 만들까 염려도 되지만 오늘만은 저를 위해 솔직하게 쓰고 싶어요. 글을 쓸 때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기분 나쁘게 만들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글을 읽으며 혹시라도 불편해지셨을 분들께는 미리 사과의 말씀, 양해의 말씀을 전합니다.

‘육아’라는 세계에 입문한지 이제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짧고도 길었던 1년간 내가 깨달은 육아는 익숙해질 만하면 낯설고 새롭고 점점 어려워지는 미션 같다는 것이었다. 매번 ‘새로고침’ 해야 하는 업무 같다는 생각도. 계획형 인간(J형)처럼 미리 찾아보고 예습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발 빠르게 준비해두었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아니 조금 수월했을까 생각해보지만 태생이 즉흥형 인간(P형)인지라 결국 그 시도는 실패로 남았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자꾸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이유는 지난해 연말 소아과원장님이 내게 한 말 때문이다.

아이의 3차 영유아 건강검진 종료 날짜가 임박해 부랴부랴 당일 진료 가능한 소아과를 찾았다. 3차 영유아 건강검진은 생후 9개월부터 12개월 사이에 받도록 되어 있는데, 아이의 발달을 제대로 체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12개월 꽉 채워 검진하는 게 좋다기에 미뤄뒀었다. 그렇다고 일주일 남았다는 종료 알림이 올 때까지 미루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갑자기 발등에 불 떨어진 것 마냥 초조해졌다가 다행히 가능한 소아과를 발견하고는 안심하며 문진표를 작성했다. 

아이의 대근육, 소근육, 인지, 언어, 사회성 발달을 체크하는 항목이었는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하지 못하는 게 많았다. 아이가 걸음마를 못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혼자 일어선다’는 질문이나 ‘한 손 잡아주면 몇 걸음 걷는다’ 같은 질문에는 ‘전혀 할 수 없다’고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애매한 질문들도 있었다. ‘가구나 벽에서 손을 떼고 5초 이상 혼자 서 있다’ 질문이나 ‘한 장난감을 3~4분 이상 갖고 논다’ 같은 질문이 그랬다. ‘5초까지는 안 되는데’, ‘3~4분까지는 안 갖고 놀지’ 나는 질문을 두고 냉정하게 따져보며 대부분 ‘하지 못하는 편이다’에 표시했다. ‘색연필을 쥐고 낙서를 할 수 있다’든가 ‘엄마, 아빠를 분명하게 발음한다’든가 ‘좋다, 싫다를 고개 또는 몸으로 표현한다’와 같은 문항에도 그랬다. 

다음날 소아과 접수를 마치고 순번을 기다리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불렀다. “아이 발달이 심각하게 느린가요? 이 상태로는 대학병원 가야 한다고 나오는데요.”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에 놀라 몇 번을 되물었지만 문진표 상으로는 그렇게 나온다는 답변이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애써 웃어보았지만 불안했던 것 같다. 빨리 원장님을 만나 괜찮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은 마음. 드디어 우리 차례였다. 문 열고 들어갔는데 내 바람과는 달리 원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니, 엄마 문진표 제대로 작성한 거 맞아요? 이러면 우리는 대학병원 가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대학병원이라니? 가슴이 철렁했다. “문진표 보고 동작들 안 시켜봤어요? 못한다고 그냥 놔두는 게 아니라 몇 번 연습시켜보면 아이들은 다 해요. 다 습득한다고. 엄마가 이렇게 대충 체크하면 어떻게 해요?” 몇 번이고 반복해 연습시켜 그 동작을 하면 그게 제대로 된 발달체크가 맞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엄마가 잘못했다, 엄마가 문제라는 질책 앞에서도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지 않겠느냐 나도 아이도 문제없다고 되받아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그냥 혼나는 작은 양육자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착잡했다. 짝꿍은 소아과가 이상하다고, 원장님이 이상하다고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느라 아이 발달에 도움 되는 육아를 하지 못했나? 우리 아이가 진짜 문제가 있나? 그런 것도 캐치하지 못하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끊임없이 나 자신을 상처주면서 육아 커뮤니티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문제 있다고 보면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글들을 보면서 나는 내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만 곱씹었다. 이런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해질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멈춰지지 않았다. 괜찮다는 주변의 말들에도 내 마음은 괜찮아지지 않고 자꾸 조급해졌다. 

하필 연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가 내게는 육아 성적표 같이 느껴졌다. 나는 너무 부족한 엄마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지인에게 연락해 물었다. 아이가 한두 번 해본 적 있으면 잘한다고, 해본 적 없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한다고 관대하게 문진표를 체크해야 문제없이 나오는 거라면서 내가 너무 야박하게 답해 그런 것일 뿐 아이는 문제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신경 쓰였다. 나름 뚝심 있게 지켜왔다고 생각한 육아 방식이 말 한 마디에 모래알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좀처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인터넷 알고리즘은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 내가 몇 번 검색했더니 관련 콘텐츠만 계속 노출이 됐다. 그럴수록 나의 불안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러다가 저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더 늦게 태어났는데도 하네? 다른 아이도 그 동작을 한다고? 나도 모르게 비교하기까지 시작했을 때 아차 싶었다. 순간 초등학생, 중학생이 된 아이를 두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내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 것. 내가 그토록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을 하고 있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너무 과하게 몰입하고 있다는 것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나의 불안이 어떤 것에 증폭되는지, 그리고 양육자로서 나의 부족이나 결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자기 확신이 없는 분야(지금은 육아)에 발을 들였을 때 내가 얼마나 팔랑귀가 되어 휘청거리는지도. 앞으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점점 더 많은 말들을 듣게 되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이렇게 흔들리고 불안해할 수는 없을 테니 나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괴로웠던 시간을 보내고 내 마음이 평화로워서일까. 며칠간 웃지 않았던 아이도 다시 웃는다. 꺄르르 소리 내 웃고 박수도 치고 기분 좋을 땐 신이 나서 만세까지. 여전히 한 발 떼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내가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야 아이도 안심하고 자랄 수 있겠지. 조급해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전적으로 믿으면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줘야겠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함께 자라는 과정이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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