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유부

22. 성실한 맛의 카푸치노

성실함이 특별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2023.09.29 | 조회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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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부유하는 유부입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무려 민족대명절 추석에 도착하겠네요! 그래서 추석에 맞춘 주제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꼭 맞는 에피소드는 없더라구요ㅎㅎ 그래서 연휴에도 평범하지만 성실한 하루를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저희 동네 가게 한 곳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아무쪼록 구독자님의 이번 추석이 지난 연휴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3번은 더 웃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변함없이 일터를 지켜야 한다면 감사의 마음과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모두에게 무탈한 연휴가 되길 바랄게요~!

내 원픽 우리 동네 카페는 멋보다 성실함이 앞선다. 사실 인테리어로만 보면 세기말 캔모아의 상위 버전 정도랄까? 아니면 '빨간 머리 앤'을 품은 중년의 사장님이 '오늘의 집'을 꿈꾸는 자녀분과 타협한 결과 값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가게다. 두툼한 나무 테이블과 의자, 각기 다른 디자인의 담요와 쿠션, 곳곳에 식물들이 커피 관련 소품과 함께하는 2층 짜리 카페다

이런 카페에 마음이 간 건 당연하게도 커피 덕분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뭉근한 마음을 갖고 싶을 때 카푸치노를 시켜본다. 사실 카페인 중독으로 믹스도 그저 OK! 커피면 되는 사람이지만, 기분 값으로 다른 커피도 종종 마셔본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니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라는 기분 좋은 응답이 이어졌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는 시나몬 가루가 곱게 뿌려진 퐁신한 거품의 카푸치노 한잔이 놓였다.

카푸치노는 1/3은 에스프레소, 1/3은 스팀 밀크, 1/3은 우유 거품으로 이뤄진다. 이 우유 거품이 카푸치노의 핵심인데, 우유를 담은 저그에 뜨거운 김이 나오는 스팀 완드 부분을 살짝 담그면 우유가 열과 공기가 만나 츠- 소리를 내면서 거품이 된다. 스팀 완드의 잠긴 정도와 저그를 기울인 각도가 잘 맞아 떨어져야 벨벳같이 매끈한 거품을 만들 수 있다. 십 수년 전 길라임 씨가 입술에 묻히고도 금세 사그라들지 않던 그런 거품 말이다. 잘 만든 거품은 티스푼으로 걷어내도 수 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도톰한 층을 형성해야 한다. 이런 거품은 꽤나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17년 전 들었던 바리스타 수업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수업 때도 카푸치노만 잘 만들 수 있다면 다른 에스프레소 커피들을 만드는데 문제 없다며 카푸치노 위주로 실습을 했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종종 카푸치노를 마시는데, 라떼와 구분하기 어려운 카푸치노를 여럿 만났고, 커다란 공기 방울을 단 우유 거품을 만나기도 하고 몇몇 카페는 메뉴에 카푸치노가 아예 없었다. 또 한 번은 메뉴에는 있지만, 본인이 근무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카푸치노를 만들 수 없다는 양심선언?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나오는 긴 이름의 화려한 커피에 비하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카푸치노가 만들기 쉬운 커피는 아닌 것은 틀림 없다.

그런데 동네 카페에서 만난 카푸치노는 내가 상상했던 딱 그 맛이었다. 티스푼으로 걷어내도 여전히 살아있는 매끈한 폼! 적당한 우유와 커피의 비율. 정석대로 성실하게 만들어 낸 맛! 그렇게 기대했던 커피 맛을 보고 나니, 카페의 단정한 구석구석과 생기 넘치는 식물들에 눈이 갔다간혹 플렌테리어를 표방한 카페에서 누런 잎의 흉물스러운 식물들을 보곤 하는데, 이 곳의 식물들은 꽤나 안쪽에 자리 잡은 식물들까지도 엄마집 베란다 식물들처럼 반질반질 윤이 났다. 적지 않은 소품이 먼지 없이 각각의 자리에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채 놓여 있었다. 착실하게 매일을 공들여 만들어낸 결과 값들이 카페 구석 구석에 카푸치노의 성실한 맛처럼 녹아 있었다.

지난 월요일에도 혼자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려왔다. “여기 이런 곳이 있었어요?”라고 손님이 묻자, 사장님은 “어휴~저희가 여기서 11년째 하고 있는데요라고 여유있게 답했다. 동네에 스타벅스 지점이 늘어나고, 유행하는 베이커리 카페가 생기고, 저가 커피숍도 우후죽순으로 세를 펼치는 이 시국에 '11년이라니! 대단하구나!!' 감탄하면서도 그 비결을 알 것도 같다.

저의 사진 또한 멋스럽지는 않지만 맛은 있었습니다 :)
저의 사진 또한 멋스럽지는 않지만 맛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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