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자자족

13.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2023.07.28 | 조회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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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무더위 속에 안녕하신가요, 구독자 님. 폭염을 피하려고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튼 탓인지 저는 그만 감기에 걸려 온종일 갈비뼈가 아프도록 기침하며 보내고 있는데요. 기침할 때의 괴로움보다 더 큰 괴로움은 저로 인해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앓고 있다는 것이랍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아이의 열감기에 바짝 긴장하며 한주를 보내고 있어요.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열을 체크하면서, 잠결에 얕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작은 아이에게 안쓰러워하다가, 쌔근쌔근 자는 숨결에 또 안도하면서, 그렇게 곁을 지키며 이 글을 썼습니다. 육아라는 돌봄 노동의 세계에 발을 들인지 이제 7개월. 어쩌면 판단하기에 다소 이를지도, 또 어쩌면 저의 욕심인지도 모를 저만의 작지만 큰 소망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합니다.

한 달 전쯤 텃밭에서 다 자란 상추와 치커리를 따다가 작은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달팽이 등껍질(패각)도 보이고, 촉수라는 더듬이도 보였다. 꿈틀대는 게 신기했지만 직접 만져볼 용기가 나진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뒀을 때의 물컹하고 끈적이는 촉감이 달갑지 않아서다. 아직 수확할 양이 꽤 남았는데... 그 뒤로는 혹시나 또 다른 달팽이가 손에 닿기라도 할까봐 제대로 손을 뻗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털썩 주저앉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로 상추를 뜯었다. 정글숲 마냥 서로 엉켜 밀림이 돼 버린 치커리는 얼마나 더 많은 달팽이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두려운 마음에 짝꿍에게 전적으로 수확을 일임해버렸다.

달팽이가 공격성을 가질리 만무하고 성인인 나와 비교했을 때 체구 차이도 몇천 배 아니 몇 십만 배는 될 텐데, 그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무섭기로 따지면 나를 만난 달팽이가 훨씬 더 무서웠을 텐데.) 달팽이가 반갑고 신기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직접 만져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내키지 않는, 애매모호하고도 아이러니한 마음. 달팽이가 산다는 건 그만큼 밭작물들도 싱싱하다는 의미라는 걸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도 또 다른 달팽이를 마주치고 싶지는 않은,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텃밭에 머물렀던 기억이다. 그렇게 달팽이와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하게 끝난 줄 알았다.

집에 돌아와 수확한 쌈 채소들을 조금씩 봉투에 나눠 담기 시작했을 때였다. 갑자기 짝꿍이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라, 여기 달팽이가 또 있네? 수확할 때 잎에 붙은 채로 같이 왔나보다!” “어머, 어머, 웬일이야.” 호들갑 떨며 사진을 찍고 가까이 들여다보는 건 오히려 나였지만 역시나 만져볼 용기가 선뜻 생기진 않았다. 기어 다니는 모습이 귀엽지만 내 손바닥 위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건 알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달팽이가 뭐가 무섭냐며 종이컵에 담아 두는 짝꿍을 나는 그저 멀찍이 떨어져 지켜만 봤다.

우리집까지 찾아온 작은 달팽이 한 마리
우리집까지 찾아온 작은 달팽이 한 마리

그냥 놔주기엔 왠지 아쉽고 아까운데...싶던 찰나에 옆집 어린이가 생각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우리는 외쳤다. “그럼 옆집 시우(가명) 줄까?”

곧장 옆집 벨을 눌렀다.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안녕하세요, 옆집인데요. 오늘 밭에 갔다가 달팽이를 발견해서 시우 주려고요.”

시우는 엄마 손을 잡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레 달팽이를 살펴보는데 선뜻 손이 움직이진 않는 모습이었다. 마치 처음 달팽이를 발견했을 때의 나처럼. 시우 어머니가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야, 달팽이 봐봐. 달팽이 만질 수 있겠어?”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달팽이를 갖겠냐는 엄마 물음에도 시우는 절레절레. 한번 보기만 하겠냐는 엄마 물음에 그제야 시우는 종이컵으로 아주 조금 다가왔다. 빼꼼히 쳐다보더니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이내 뒤로 한발 물러났다. 그러고는 달팽이가 담긴 종이컵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시우를 생각해줘 감사하다는 시우 어머니의 인사를 받고 되돌아오는 길에 짝꿍에게 말했다. “시우도 나처럼 달팽이가 낯설고 무섭나봐. 도시 어린이라 그런가?”

도시 어린이, 시골 어린이를 나누어 판단하고 결론내리는 게 나의 왜곡된 시선인 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나는 자꾸만 도시라는 단어에 꽂혀 편견에 빠졌다. 그러고는 충청도에 귀촌한 선배네 집에 방문했던 몇 달 전, 달팽이를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키우고 있던 선배의 아이가 생각났다. 막 도착한 우리에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달팽이를 보여주며 자랑하던 아이의 들뜬 목소리도 떠올랐다. 달팽이를 두렵고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 작고 귀여운 존재라고 여기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아이. 관찰하고 보살피는 과정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길 줄 아는 아이 말이다.

달팽이 한 마리에 다르게 반응하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해마시기를.) 작은 달팽이라도 낯설고 무서워 뒷걸음질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 무서워한다고 꼭 커서도 무서워하리란 법도 없다. 게다가 달팽이를 꼭 무섭지 않은 동물로 여겨 만지고 관찰하는 아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낡은 생각이자 나의 어떤 편견일지 모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달팽이조차 무서워하는 아이야말로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는 진짜 어른일지 모른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나는 다르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끝에 우리의 아이는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를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뿐이다.

나는 아이가 달팽이를 낯설어하기보다는 풀숲에서 우연히 만난 달팽이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만져볼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또한 만져보고 다시 자연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놓아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비단 달팽이만의 얘기는 아니다. 흙에서, 물에서, 숲에서 발견하는 크고 작은 동식물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그런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런 작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이 일상을 조금 더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런 경험들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성공이 아니어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또한 고리타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실상 아이는 돈으로 큰다고들 한다. 냉정하게 그 말이 맞다.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는 경험한 만큼, 경험을 통해 깨달은 만큼 큰다고, 그리고 꼭 돈을 들여야만 누리는 경험이 아닌, 돈 들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경험으로 더 큰다고 목에 힘을 주면서 주장하고 싶다. 너무 나이브하고 낭만에 젖은 생각이라고 비난하더라도 끝까지 이 고집을 지키면서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게 현재 나의 소망이다.

지난 봄 빈집 프로젝트 때문에 강원도 홍천을 갔다가 OO마을 이장님 사모님께 마을에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상수리나무는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놀란 눈으로 그럼 혹시 여기에 반딧불이도 있나요?” 하고 여쭸더니 이장님 사모님은 반딧불이 당연히 있지, 여태껏 살면서 반딧불이도 한번 못보고 뭐했어?” 되물으셨다. “반딧불이는 영화 클래식에서만 봤는데요. CG.......” 농담처럼 진담을 조용히 읊조리는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세상에, 진짜 반딧불이가 있다니!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니!! 이장님 사모님 말씀처럼 마흔이 다 되어가도록 어쩜 반딧불이 한 번 못보고 살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아직도 작은 달팽이 한 마리를 무서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여전히 나는 아직도 경험해보고 배울 것이 많은데, 이제는 그것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에 설렌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아직 명쾌하게 답을 찾지는 못한 여전히 초보 엄마이지만 일단 하나의 힌트는 찾은 것 같다. 적어도 달팽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어린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는 것. 텃밭에서 만난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속삭여줬나보다. '오늘 내가 하나는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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