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45. [은둔자] 올해도 어김없는 ‘이직철’을 맞이했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2024.05.10 | 조회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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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4월까지도 꽤 선선하여 바람막이를 벗지 못하게 하더니 어느새 갑자기 초여름 날씨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아끼는 후배를 떠나보내게 되었는데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저는 매우 쓰라렸던 소회를 적어보았습니다. 이직이 잦은 업계라고 해서 이별이 익숙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또 늘 그렇듯 저는 저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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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는 대체로 봄과 가을이 ‘이직철’이다. 단행본이든 수험서든 신학기의 시작 혹은 설 명절이 지난 봄부터 채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수험서는 시기적으로 신학기 시작 즈음 방학물을 미리 기획하기 때문인데 단행본 시장은 왜 그런지 명확한 이유는 없다. (우스갯소리로 명절 수당은 받고 퇴사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내가 3년에 한 번씩 이직을 했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도 3년에 한 번씩 자리를 비웠다는 얘기다. 그만큼 이직이 잦은 동네이니 매년 봄, 가을 퇴사자가 발생한다. 퇴사자가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사람이 들고나는 것은 회사를 술렁이게 하는데, 올해도 변함 없이 나는 동료의 퇴사를 지켜보게 되었다. 

조금 더 문제가 된 것은 내가 무척 아끼는 후배였다는 사실이다. 늘 긍정적일뿐 아니라 어떤 상황이든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는, ‘일’ 자체를 사랑하는 친구였다. 스스로 인류의 역사는 곧 ‘일’의 역사라고 생각한다고 할 만큼 열정적인 친구였다. 후배지만 많이 의지했던 만큼 한동안 내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아직도 마음을 완전히 다잡은 상태는 아니다. ㅎㅎ)

그러나 그가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났다는 것을 안다. 출판이라는 업계에 이직이 잦은 이유는 개인적으로든 구조적으로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보통 연차마다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의 형태가 있는데, 대부분 출판사의 규모가 작다보니 특정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장하는 개인에 맞게 조직이 유연하게 대해주기가 어렵다. 

보통 어린 연차는 조금 더 보상 체계가 좋고 시스템이 갖추어진 곳에서 편집의 기본을 배우는 것이 좋다. 반면 연차가 올라갈수록 개인이 기획할 수 있는 범위를 넓게 준다든가, 기획 자체에 대한 자율성이 높은 조직, 혹은 다양한 마케팅을 실현해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해진다. 그래야 시장을 파악하고 그 시장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조직인 출판사는 기획 면에서 시장에 빨리 대응하고 마케팅을 활발하게 대하는 조직 vs 보상 체계나 약간의 시스템을 갖춘 대신 기획 단계부터 검토자가 많고 개인이 발빠르게 시장에 대응하기 어려운 형태의 조직 두 가지로 나뉜다. 

두 조직 모두 장단점이 있다. 기획에 자율성을 주는 조직의 경우 각자 해내야 하는 매출 목표가 명확하고 그걸 하기 위해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잉여인력은 커녕 오히려 개인이 1.2~1.5인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획자를 길러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시스템을 갖춰보려고 노력하는 조직은 그 시스템의 힘으로 경험이 적은 편집자를 기다려주지만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중심 키워드가 움직이는 출판 시장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기획을 해볼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내가 아끼던 후배는 시스템의 조직에서 시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으로 나아갔다. 이상적인 커리어 형태다. 시장 반응이 중요한 회사에서 내내 일하다 퇴직 전에 갖춰진 시스템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조직에 입사한 나와는 반대다. (사실 현재 내가 겪는 많은 어려움은 내 연차와 조직의 특성을 거꾸로 선택한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내 기분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관 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 이것도 어딘가에 피와 살이 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서운할지라도 그 친구가 결국 가야 할 때였음을 알고 있으므로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보냈다. 남은 자리에서 파도를 견디며 내 몫의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또 내가 할 일이고 늘 그렇듯 그렇게 해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하는 사람을 보내는 기분은 늘 쓰라리다. 그러나 나의 이 아쉬움과 염려와 당부가 모두 그에게 행운이 되어 날아가길 빈다. 몰랐던 실수는 꼭 마감 전에 발견되고, 본인이 기획하고 싶은 주제의 작가와 반드시 인연이 닿고, 늘 예상하는 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독자와 만나는 책을 만들 수 있기를. 

 

<코너 속 코너> 덕질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덕후들의 명절 '최애의 생일' 카페 현장 사진, (출처: 은둔자 직찍)  사실은 핑계김에 함께 덕질하는 친구와 만나 최애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실컷 수다 떨고 맛있는 것 먹고 귀여운 것을 나누는 시간이다.  
덕후들의 명절 '최애의 생일' 카페 현장 사진, (출처: 은둔자 직찍)  사실은 핑계김에 함께 덕질하는 친구와 만나 최애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실컷 수다 떨고 맛있는 것 먹고 귀여운 것을 나누는 시간이다.  
가라앉은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덕후들의 명절 ‘최애의 생일’과 연이은 페스티벌, 뮤지컬 공연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가장 일방의 사랑이 덕질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떠나기 전까지 나를 떠나지 않을 대상이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면이 있다. (물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정말 큰 정신적 타격을 입는다. 나 역시 소위 그런 ‘망한 덕질’을 한 적이 있다. 크흡…) 게다가 성규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늘 새로운 음악과 공연으로 찾아와 준다는 점에서 정말 안정형 덕질 대상이다. (초연 뮤지컬이라니,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라니!) 최근 회사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너무 텍스트에 파묻혀 있기도 하고 휴식이 필요한 순간인 것은 확실한데, 다행히도 내가 무엇을 하며 쉴 때 가장 행복한지 알고 있으므로 나는 계속해서 멀쩡한 척 하며 일할 수 있다. 역시 덕질이란 얼마나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가? ‘하기 싫어’ 병에 걸린 사람도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게 만드니. 그럼 오늘도 나는 곧 있을 뷰민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가 된 성규의 공연에서 따라 부를 노래를 열심히 들어야겠다. 결국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테니까.

 

 

📢알립니다

🎉팀 일류여성이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저희 팀 일류여성의 스토리, 아시는 분들은 아실텐데요. 202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만나 의기투합한 뒤 5월 5일 어린이날에 첫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만 1년을 꼭 채우게 되었어요. 

저희의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종종 피드백도 보내주셔서 저희가 지금까지 레터를 발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나름의 구독자 이벤트를 실시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끄럽게 알리고 있지만 사실 구체적인 이벤트는 다음 주, 저희 레터를 첫 발행했던 곰자자족 님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뭘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한다고 이벤트 예고제를 하느냐! 싶으시죠? 🤣🤣 아마 무엇을 하든 구독자 분들의 꾸준한 관심에 비하면 당연히 약소하겠지만, 그래도 이벤트 준비가 완성되기 전에 여러분의 축하를 받고 싶었어요. 😊😊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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