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을 앞두고 다시 처음을 생각한다. 그것이 현재를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올해 초 독서 동아리에서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함께 읽었다. 작년 이맘 때 은둔자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간 펄롱이 창고에서 한 여자 아이를 발견하고, 수녀원에서 숨겨온 어떤 진실을 목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어른을 위한 짧은 동화 같아 처음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두 번째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간결하지만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문장들 앞에서, 처음 읽을 때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뒤늦게 발견한 까닭이다.
주인공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을 부양하는 가장이다. 마흔을 앞둔 그의 일상은 평범하다. 캄캄할 때 출근해 하루 종일 석탄을 배달하고, 다시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게 없는 삶이다. 그런 그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삶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것.
그러다 균열이 생긴다. 석탄 배달을 갔다가 예배당에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걸레로 죽어라고 바닥을 문지르던 모습, 한 아이는 눈에 흉측한 다래끼가 났고 또 다른 아이는 머리카락이 누군가 눈먼 사람이 커다란 가위로 벤 것처럼 엉망으로 깎여 있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무리 중 한 명이 말한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펄롱은 자신은 용건이 있어 왔을 뿐이라며 볼일을 끝내고 트럭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닫고 달리기 시작한다.
한참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었으며 최고 속도로 엉뚱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가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해서 마루에 윤을 내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또 수녀를 따라 예배당에서 나올 때 과수원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문이 안쪽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는 사실, 수녀원과 그 옆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 있는 높은 담벼락 꼭대기에 깨진 유리 조각이 죽 박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또 수녀가 석탄 대금을 치르러 잠깐 나오면서도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던 것도.
_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북스
미심쩍은 부분을 짐작하게 되었을 때 펄롱은 평범한 내면 한편에 수녀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거나 다른 누구보다 앞장서본 경험이 없었을 것 같은 소심하고 조용한 펄롱. 그렇지만 그는 자신에게 무례할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했을 수녀원장의 무례한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꾼다. “조금 전까지는 여기를 뜨고만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여기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수녀원 아이들은 우리랑 상관없으니 나서지 말라는 아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여하기 시작한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니?” 펄롱이 말했다. “말만 하렴.” 아이는 창문을 쳐다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혹은 오랜만에 친절을 마주했을 때 그러듯이.
_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북스
이상한 구석을 알게 되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거나 폭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손해가 올 것을 알면서도, 잃을 것들을 생각하면서도 뛰어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오히려 외계인에 가깝다. 쉽게 만날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내게는 그 앞에서 외면할 것인가, 뛰어들 것인가 고민하고 주저하는 쪽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펄롱에게 이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점 때문이었다.
물론 펄롱도 처음엔 외면하려 했을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밀어두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은 알 수 없는 불편 때문에, 지금 지나친다면 사는 내내 떳떳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끝내 수녀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그와 그의 가족 앞에 닥칠 시련과 갈등, 수많은 고생길을 예견하고도 기꺼이. 용기를 낸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_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북스
여기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라 시작 같다. 앞으로 펼쳐질 고난과 갈등,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 이후의 이야기가 오히려 진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을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지금과 다르게 살 기회, 다르게 살아볼 용기를 상상해보는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사실 나는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애정 없는 일이나 사람에게 마음 쏟는 것을 시간 아까워하고, 그래서 때로는 쌀쌀맞고 차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의 아주 내밀한 모습을 잘 포장해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역시 나의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속이고 포장하는 일이 위선이더라도 《다정소감》을 쓴 김혼비 작가의 말처럼 죽을 때까지 위선을 떨 수 있다면 그게 곧 나의 진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펄롱처럼 거창한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 사소하지만,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행동을. 그러면 올해를 다소 아쉽게 끝내더라도 다시 새로운 처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 지난 여름부터 휴식기를 가졌던 은둔자😎가 돌아옵니다. 곧 다시 시작될 그녀의 레터도 많이 기대해주시길 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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