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자자족의 마감_"마감 늘 압박이자 고통, 그래도 꾸준히 내게 찾아와줬으면 하는 것”
“마감은 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자 일의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요소죠.”라고 근사하게 말하면 좋겠지만, ‘소심이’와 ‘불안이’가 가득한 내게 마감은 늘 압박이자 고통이다. 이번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또 마감한 업무를 상대가 만족스러워할지 걱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마감할 때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마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여유가 있으니 느긋해지려해도 자꾸 틈을 비집고 ‘까꿍, 너 마감 잊으면 안 된다?!’ 흡사 나를 괴롭히는 악마처럼 찾아오는 것이 바로 마감이란 녀석이란 말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마감에 쫓기기 전에 내일은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보자’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MBTI 테스트에 ‘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에 ‘완전 그렇다’고 체크하는 극P인 나는 또 다시 내일이면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것. ‘마감까지 며칠(=아주 많이) 남았잖아?’라며 기어이 유보해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쿨하게 잊진 못하고 ‘아, 그 일 어떤 식으로 해야 하지?’ 생각하고, ‘마감까지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으려나.’ 걱정하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한다.
미루고 또 미뤘지만 마감 날짜가 대놓고 다이어리 달력에서 반짝이고 있을 때가 되면 서둘러(서두른다는 말이 또 앞뒤가 안 맞죠😆) 시작한다. 그때 나는 그 누구보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어머,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지?’ 놀라며 기지개를 켜고 곧바로 다시 앉는다. 나의 마감은 이런 식으로 완성된다. 미루고, 생각하고, 다짐하고, 다시 미루다, 시작!
이쯤 되니 마감의 불안과 고통을 만드는 장본인이 나란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 같아 부끄럽다. 그렇게 미룰 거면 아예 하지 말라고 호통 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마감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마감이 없을 때의 나는 또 한없이 나태해지기 때문이다. 마감이 없다는 건 회사 밖에서 일하(려고 노력하)는 내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럴 때의 나는 좀 우울해진다. 그래서 되도록 ‘마감’을 만든다. 새로운 마감이 ‘계속’ 만들어지고, 계속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마감이 있을 때 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내가 유용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감을 조금 앞당기기 위해 내 나름대로 찾은 방법이 있다. 진짜 좋아하는 것을 마감 뒤로 미루는 것이다. (또 미룬다고??)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기꺼이 마감을 하도록 만드니까.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좋아하는 맥주도. 모두 마감한 다음으로 미뤄둔다. 마감 후의 홀가분하게 만나는 기쁨이 몇 배로 커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오늘은 뉴스레터를 서둘러 마감하기 위해 생일 선물 언박싱을 미뤄두었다. 얼른 끝내고 포장 뜯을 생각을 하니 손가락 타자 속도가 빨라진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기분. 이제 진짜로 여기서 마감해야겠다.
🎈 부유하는 유부의 마감_마감 뒤엔 다음 마감이 있다는 사실!
뉴스레터 카톡방에서 작업자의 사전 주제로 ‘마감’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많은 이야기가 있겠구나! ‘하며 반가웠습니다. 3주에 한 번이지만 뉴스레터 마감은 제게 꽤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발행 주가 다가오면 ‘무슨 이야기를 하지?🙄’ 고민스러웠던 날들이 많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막상 마감이라는 단어를 곱 씹으니 고민이 됐습니다. 사실 이번 주제의 편집 담당이 되어 두 에디터의 글을 먼저 받아보니 제가 써뒀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기존의 글은 접어야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과거 제게 펼쳐졌던 마감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직장 생활 중 가장 많이 한 업무는 사내방송 제작이였는데요. 매주 금요일 전사로 방영되는 15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홍보팀 담당자로 매주 피디, 작가와 회의를 해 주제 정하고, 출연진과 촬영 장소를 섭외하고, 작가의 원고를 컨펌하고, 피디의 최종 편집본을 확인하는 업무를 했죠. 15분의 영상이었지만 대게 3개 꼭지로 나눴고, 코너 마다 기획이 필요했습니다. 가령 신제품이 나오면 홈쇼핑 형식을 빌어 세일즈 특징을 소개한다든가 고객 칭찬 사연이 있다면 삽화를 그려 동화적 연출한다든가 똑 같은 형식을 피하려고 부단히 애쓰던 시간이었죠.
방송은 기획-섭외-촬영-원고-편집의 순으로 일은 진행됐는데요, 각 단계별로 마감 기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정해진 마감 기한은 방송이 펑크나지 않는 선(송출되지 않는 것)에서 유연하게 바뀌며 끝까지 서로를 몰아부치면서 완성도를 올리는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현장의 동료들은 현업에 바빠 방송을 챙겨볼 시간이 어딨냐고 하는데, 잘 만들면 재미있게 만들면 본다는 채찍질에 이렇게 저렇게 노력했던 때였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이러나 싶으면서도 피디님도 작가님도 다들 주말 반납하고 방송일인 금요일만 바라보며 버텼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고 힘들게 일했구나 싶습니다. 그때의 마감을 떠올리면 시간을 지켜야 하지만 퀄리티도 높여야 한다는 게 압박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당시에는 ‘사내방송답지 않다’는 평을 듣는 걸 칭찬이라 생각했는데, 사내방송은 사내방송스러워도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둘 다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쪼아 대서 결국 일을 포기하게 된 것인가? 싶습니다 ㅎㅎ
올해 초 한 팟캐스트를 듣는데 막 책을 출간한 기자님께 진행자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서 집필 작업이 어렵지 않았겠다고 말하니 그 기자님은 “기자는 글을 많이 쓰지만 글을 포기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대답했어요. 매번 마감이 있기에 어느 선에서 글을 멈춰야 하는 직업이 기자라는 그 말이 왜였는지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감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말은 ‘과거의 내게 필요한 문장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감이 우선이라면 후순위는 포기할 수도 있다고요. 그래야 다음 마감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난 월요일 은둔자가 아래와 같은 짤을 공유해줬습니다. 슬슬 2024년도 끝을 보이는 시점, 아직 이룬 것도 혹은 시도하지 못한 것에 쩔쩔 매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마감 짓고, 다음 해로 나아가자고요. 안 그러면 지쳐 중도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 은둔자의 마감_스스로 불러온 재앙?
제게 마감이란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 마감이 있기 마련이지만 제가 하는 일은 유독, 마감을 하고 나면 다시는 수정할 수 없는 어떤 세계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모든 책은 ‘납본’의 형태로 국립중앙도서관 어딘가에 보관됩니다. 책의 최종 마감을 결정하는 사람은 편집자이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실수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제 탓입니다. 그 실수를 영원히, 대를 물려 확인할 수 있도록 보관하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출간일자를 반드시 특정한 날로 정해야 하는 책이 아니라면 마감은 대체로 담당 편집자가 정하고 조율합니다. 막교(마지막 교정)를 볼 때마다 생각해요. 편집 기간을 일주일만 더 잡을 걸, 한 번만 더 읽고 마감치고 싶다고요. 하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이미 제가 날짜를 정했고 영업부에서는 배본 일정까지 조율했을 것인데요. 어쩔 수 없이 그날 마감을 해야 합니다.
애초에 마감이 너무 중요한 일을 선택한 것도, 그 날짜에 마감을 하기로 한 것도 결국은 제 선택입니다. 그래서 더욱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 같아요. 데이터 마감을 하는 날은 말 그대로 덜덜 떱니다. 어떤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만 같을 때가 많아요.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혹시나 잘못될까 표지의 제목, 작가 이름, 바코드를 500번씩 확인하고요. 본문도 계속 확인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책이 나오고 난 뒤에야 오탈자를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오자와 오자가 만나 새로운 오자를 낳는 게 분명하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이토록 재앙같은 순간들을 계속 견디며 책을 만들고 있다는 건 다른 어떤 과정이 헤어나올 수 없이 매력적이기 때문이겠죠. 일 년에 대략 5~6일 겪는 재앙보단 나머지 360일 즈음이 훨씬 의미있으니까요.
혹시 지금 재앙같은 순간을 견디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저 그 일을 ‘끝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잘 끝내실 필욘 없고 그냥 끝내시면 됩니다. 그럼 반드시 평온이 찾아올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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