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시절, 나는 한번도 연봉협상을 해본 적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연봉협상이라는 명목 하에 형식적으로 대강의 안부를 묻고 사인을 한 기억뿐이다. 회사시스템에 반기 성과를 입력하고 한 달 뒤쯤 시스템에서 내 고과를 확인하고, 연초쯤 부서장이 내민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직급별 연봉 인상율이 일괄 적용되고, 이미 결정된 고과에 의해 계산된 계약서였다. 나름 효율적이라 생각했고, 나 한 명 이야기한다고 바뀌는 시스템도 아니었다. 또 나란 사람은 돈 감각이 무디고, 돈 이야기하는 것도 좀 별로로 여겼다. 주는 대로 받고 주는 대로 일했다.
월급인의 신분을 벗어나니 새로운 임금의 세계가 펼쳐졌다. 당당하게 “저 프리랜서로 활동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실상은 소소한 아르바이트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건별로 용역비를 받는 알바도 있었고, 시급으로 계산되는 알바도 있었다. 시급으로 계산된 알바는 돌잔치 꽃장식 작업이었는데, 내가 몸을 놀린 시간만큼 임금이 계산되니 나름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건별로 임금을 측정하는 알바를 하게 되면서, 이 금액을 받고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홍보팀에서 근무할 때 프로젝트 성으로 비용을 집행하기는 했지만, 잡혀 있는 예산에 맞춰 또 과거 실적에 기반해 집행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건별 알바를 프로젝트성 업무랑 비교하는 게 이상할 수 있지만 결국 프로젝트도 1건이니까 ㅎㅎ) 회사 대 회사가 아닌 회사 대 개인 또는 소상공인 대 개인으로 마주하니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지 난감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pre프리랜서 선배, 곰자자족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녀의 대답은 “아쉽지 않은 선으로 제안하라”였다. 일단 알겠다고 답하고 나서도 아리송한 마음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일하면서 ‘아쉽지 않다’는 말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 알바는 한 가게의 블로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단순히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치고 이미지를 다듬는 시간만 일한다고 말한다면, 딱 그 시간만 측정해서 금액으로 책정한다면 정말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블로그 쯤이야 쉽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그래도 잘하고 싶다, 매우 잘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고갤 들었다. 내겐 생소한 분야였기에 나름의 시장과 경쟁 가게 분석을 했고, 찍어둔 사진으로 콘텐츠를 만들다가 ‘이런 사진 한 장 더 들어가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에 다시 방문해 사진을 추가로 찍었다. 문장 하나 쓰는 것도 쉬이 굴러가진 않았다. 물론 고수들은 키보드 앞에만 앉으면 눈과 귀를 사로잡는 카피가 척척 나오겠지만 끊임없이 ‘이게 맞나?’라고 의심하고 끝냈다 싶어 노트북을 닫았다가도 다시한번 열어 점검했다.
이쯤 되니 본전? 생각이 났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데 이 돈 받고 하는 게 맞나? 그냥 노는 게 낫지 않은가? ㅎㅎ 일전에 들었던 인상적인 협력사분 이야기가 생각났다. 제시한 금액만큼의 결과물을 가격에 맞춰 딱딱 보여준다는 분이었다. 과연 시장 가격에 맞는 수준별 콘텐츠란 무엇이며, 나 또한 그런 인물이 될 수 있을까? 회사 내에서는 시키는 일을 쳐내는 수준으로 고과를 받고 주는 대로 월급도 받았지만, 이제 나는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하고 시장에서 납득할 수준의 임금을 스스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일단 시간과 에너지를 태워가며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평가도 좋았다.
나름 치열하게 새로운 세계를 공부하는 이주가 지나고 이제 좀 틀을 잡을 것 같았다. 비록 나의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덕분에 블로그도 마케팅도 공부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때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예기치 않은 사정이 생겨 당분간 블로그 운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ㅎㅎ 물론, 다행히 알바비는 받았다. 살짝의 지식과 약간의 소동을 남기고 끝나버린 8월의 알바였다. (여름이었다ㅎㅎ)
사실 지속가능한 분야를 찾아 공부하고 있다고 했지만, 또 이런 알바 경험도 다 공부 아니겠는가? ㅎㅎ 소소한 간식값도 벌며 ‘난 이런 식의 쓸모가 있구나’ 자아 발견?도 해본다. 그래서 앞으로도 흥미가 생기는 일들은 여기저기 찔러볼 참이다. (혹~ 낯선 사람의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불러 주시면 어디든 흔쾌히 응할게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해서 만들어내는 건 참 즐겁습니다 ㅎㅎ) 물론 다른 서포터나 공모도 지원하고 떨어지고 반복하고 있다 ㅎㅎ
마침 오늘 저녁엔 동네 꽃집에서 단기 알바를 뽑는 공고를 발견했다. 주섬주섬 지난해 만들어뒀던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 해 메일을 보내봤다. 아마 쉽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실패라도 하지 ㅎㅎ 무엇으로 살지 몰라 다기능인?으로 살아보려는 지금, 이 시도가 끝날 때쯤엔 ‘제 몸 값은 000입니다!’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다면 성공이겠다😊
<코너 속 코너> 계절산보🚶여름은 수평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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