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첫인상은 의무감이었다. 입사했을 땐 원하던 진로가 아니어서 그 때의 상황과 적당히 타협했다고 생각했다. 취준 시절 아빠가 돌아가셨고, 더 이상 팔자 좋게 부모님 지원을 받으며 언제 될지도 모르는 언론사 준비를 마냥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졸업한 지 2년이 넘었는데 ‘당연히 일 해야지’ 하는 의무감. 다행히 반 년 뒤 한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고, 언론사를 준비하면서 ‘사회의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현실 감각 많이 떨어지는 이상은 접었다. 대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자고 되뇌었다. 회사를 다닌다고 엄마의 원조를 받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심적으로라도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고, 당시 내 소망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엄마에게 작게라도 생활비를 보태고 때때로 동생들에게도 용돈을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무엇보다 엄마가 큰 딸의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 다행이었다. 회사에서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신입사원이었을지 몰라도 우선 ‘일을 한다’는 사실이 회사 밖에서 많은 걸 가능케 했다. 그게 일에게서 느낀 가장 최초의 다정함이었다. 장녀로서, 언니와 누나로서, 또 선배 나 친구로 주변에 베풀 수 있는 얄팍한 지갑을 갖게 됐다는 것. 그로 인해 사회인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감각 혹은 착각. 취준 기간이 2년 정도로 나름 길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던 시간 후라 더 강렬하게 느낀 효능감일지도.
의무감에 기대어 일 했기에, 또 배울 것도 할 일도 많았기에 일의 재미를 느끼기 보다 그냥 해야 해서 한 시간들이 많았다. 다만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욕심을 내고 그 욕심에 허덕이기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도 가끔씩은 동료애 주고 받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바쁜 나, 힘든 나’에 취해 고마움을 제대로 받을 줄도 표현할 줄도 몰랐다. 그리고 회사는 일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해 더더욱 주변과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해를 더해갈수록 안 좋은 것들만 눈에 더 들어왔고, 잠은 적어지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퇴사 엔딩을 맞는데... 그즈음 한 임원의 말은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회사 밖에서 자기 일 찾아 하는 사람들 대단한 거야. 나는 회사에서 시간 관리도 해주고 해서 이렇게 일한 거지.”
퇴사 몇 개월 전, 임원분에 의해 갑작스럽게 생긴 점심 자리에 소환됐고, 그 자리에서 임원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회사의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퇴사각을 잡는 시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들은 말이라 더 신선했다. 내 마음을 읽었나 싶기도 하고 ㅎㅎ. 꼰대와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점심 식사는 훨씬 가볍게 지나갔고, 그는 식사가 끝나자 소화를 핑계로 무리를 회사 반대 방향으로 이끌었다. 십 여 분쯤 걸었을까, 빌딩 숲 속의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작은 가판대가 보이자 그가 활짝 웃으며 여기가 로또 명당이라고 말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그였지만 1등이 많이 나왔다는 그 가판대의 기운을 잔뜩? 든 로또를 사 지갑에 야무지게 꽂아 넣었다. 그리곤 ‘너희는 안 사냐?’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임원도 결국은 월급쟁이라는 짠한 사실을 각인 시키며, 그날의 점심은 산뜻한 충격으로 남았다.
긴 갭이어를 끝내고 지난해 수목원에서 10개월 간 일을 하면서 회사라는 시스템이 나를 길들인 흔적을 다시 꺼냈다. 내가 일어날 때가 아침이었던 생활에서 다시 알람이 필요한 삶이 되어 시간에 맞춰 기상하고, 출근 전 일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위해 안 먹던 아침밥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갭이어 기간은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자유로운 삶이었지만 시간을 마냥 흘려 보내기도 많았던 날들이었는데, 그 임원이 말하던 시간 관리의 효능을 체감했달까? 일꾼으로 기능할 수 있는 내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출근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능숙해서 조금은 서글펐다.(내 안의 노예 유전자 발견🥲)

“너가 한 일들 네 안에 다 남아있어”
미지의 서울의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나긋하게 건넸던 그 말 또한 여러 순간 발견했다. 하던 일이 전혀 다르고, 사람도 환경도 다른데 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조직에서 일이 흘러가는 과정은 비슷했다. 콘텐츠는 바뀌었지만 시스템은 같은 느낌? 내가 했던 일의 기억과 시간의 힘이 발휘되었다. 처음 맡는 일이어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혹은 다른 사람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지를 습관처럼 고민하고 있었다. 직장인 시절 업무를 하면서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나였는데, 그 시간이 어쩌면 내 능력치일지 모르겠다.
일을 통해 월급의 다정함을 배웠고, 사회인의 리듬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시스템이라는 것도 버티는 것이라 여겼던 시간도 경험치로 쌓였음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더불어 일을 하는 존재들은 직급을 떠나 각자의 고단함을 가지고 있음을. 동업자 정신 같은 마음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도 한 뼘 쯤은 넓어졌다. 그래서 일은 자주 하기 싫지만 나를 여러모로 사회화 시켜 어른으로 키워주는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곰자자족이 나를 소개하는 레터(2024.02.16 발행)에서 나를 ‘부유(浮游)한다고 느끼지 않고 부유(富裕)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아직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닿고 싶은 지향점임은 분명하다. 일의 보여주는 다정의 영역을 더 많이 실감해가면서, 언젠가 닉네임 유부 앞에 붙는 ‘부유’를 동사가 아닌 (여러 방면에서 납득 가능한😆)형용사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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