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수목원 숲에서 벌레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발견했다. 애벌레가 나뭇잎의 두꺼운 잎맥만을 남겨놓고 야무지게 갉아먹어 형체만 간신히 남은 나뭇잎이 나무에 달려있었다. 투명해진 잎이 신기해 고개를 들고 줌을 당겨 사진을 찍어 댔다. 찍힌 사진을 확대해보니 투명 잎 위 다른 잎에서 애벌레들은 새 작품 만들기에 돌입했다. 사실 그냥 배를 채우는 것이겠지만. 열정적인 밥벌이? 현장이었다.
애벌레들이 만들어 낸 흔적을 보면서 요즘 열광하며 보고 있는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가 생각났다. 내로라하는 경력의 셰프들 사이에서 급식대가와 이모카세라는 닉네임으로 출전한 두분. 짐작건데 그분들의 일터에서는 셰프나 요리사라는 명칭보다 어머님, 이모님 또는 아줌마로 불렸을 인물들이다. 하지만 팀 미션에서 그분들은 호날두와 메시라는 평을 들으며 본인들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1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에서 조리법이 바뀌어 다져 놓은 야채를 다시 채썰어야 했는데 이에 이모카세와 급식대가님은 우리가 빨리 썰면 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미안하다는 팀원의 말에는 ‘다 잘 되자고 하는건데요’라는 쿨한 멘트를 날리고. 그리고 잠시 뒤 몇 분까지 준비되느냐고 묻는 팀장에게 벌써 완료했다며 다음엔 무엇을 할지 멋지게 되묻는다.
그분들의 시작은 거창하진 않았던 것 같다. 이모카세님은 갑작스럽게 쓰러진 어머님을 대신해 식당을 운영하게 되면서 국수를 삶기 시작했고, 급식대가님은 초등생 자녀에게 우산을 갖다주던 하교길에 급식조리사 모집 소식을 듣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어서 또 우연히 시작했던 일을 하루하루 열심히 해 나가다 보니 시간이 쌓였고 자연스레 내공이 되었을 거다. 양식, 중식 셰프들의 화려한 요리들 속에서 평범해 보이는 메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맛을 선보이며 최종 15인의 자리까지 오르는 저력 말이다.
일을 하는 이유는 모두가 다르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또다른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혹은 심심해서. 이유가 어찌 됐든 일의 시간을 쌓이면 흔적은 필연적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탄할 무언가가 남기 마련 아닐까? 그저 밥벌이의 시간들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말이다. 애벌레가 만들어 놓은 나뭇잎처럼, 또 100인분의 요리 재료를 수분내 뚝딱 손질해내는 칼질처럼.
즐겁게 오래토록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뭐라도 그냥 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일을 시작하는 건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거라고. 시작보다는 그 일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더 어렵고 큰 이유가 필요할 테니까. 오늘도 꾸역꾸역 회사로 향한 짝꿍을 비롯해 출근한(회사든 집이든 어디로든) 모든 이에게 응원을 보내며, 나에게 채찍질해 본다. 제발 오늘만큼은 후회를 덜 해보자!
<코너 속 코너> 계절산보🚶 잠깐 눈 좀 감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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