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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 이야기(4) 베니스 까페 - 이곳이 베니스지! _월요

2024.02.26 | 조회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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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베니스에는 많은 카페가 있다. 1720년에 문을 열어 3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카 플로리안이 가장 유명하다. 괴테, 루소, 쇼팽 그리고 카사노바 등을 고객으로 맞았다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카페다. 찾기는 굉장히 쉽다. 성 마르코 광장에 서서 연주곡이 흐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된다. 연미복을 차려입은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베니스의 유서 깊은 카페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노천 좌석까지 자리가 가득 있는 카페가 보인다.

하지만 베니스에서 우리 가족이 매일 찾아간 곳은 Caffe Al Ponte del Lovo다. 리알토 다리 근처 인파에 떠밀려 가다가 들어간 곳이다. 카페 호텔 조식에서 커피를 두 잔씩 마셨지만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쉴 곳이 필요했다. 딸이 구글 평점 3.0 이상의 기준에 맞는 가장 가까운 카페를 검색했다. 관광객들이 창가에 색색이 진열된 카눌리를 구경하다가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전형적인 관광지 카페였다.

자리는 몇 되지 않았는데 약간 턱이 있는 공간에 벽을 따라 디귿자 좌석에 테이블이 두 개 놓여있었고 그 한 테이블에 우리가 앉았다. 자리는 협소했지만 작은 테이블에 가족끼리 옹기종기 앉은 모양새가 되어 아늑하게 느껴졌다. 금발머리를 경쾌하게 묶은 아르바이트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사진이 들어간 메뉴 책을 가져다주었고 우리는 사진과 이탈리아 메뉴 및 영어를 보며 이탈리아 카페에서 커피 시키기에 도전했다. 디카페인? 있었다. 아메리카노? 물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 그것도 가능했다. 커피 온더 락이라고 써져 있었다. 가격은 우리나라 스타벅스 정도로 베니스의 높은 물가에 비해서는 오히려 싼 편이라고 느껴졌다.

아늑함 속에서 좀 노곤해진 우리에게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진짜 은쟁반은 아니었겠지만 은쟁반스러운 얇고 판판한 쟁반 위에 우리가 시킨 세 잔의 음료가 일회용 컵이 아닌 투박한 잔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그 외에 입구까지 물이 차 있는 길고 두꺼운 유리 물병과 물컵 그리고 티 팟에 설탕 그릇과 각 음료에 따라 나온 쿠키가 그야말로 쟁반에 빼곡하고 수북이 담겨있었다. 원래 사람이 기대를 안 하면 감동이 큰 법이다. 식당에서도 물을 사 먹어야 하는데 이렇게 물을 한 병 담아 준다고? 쿠키도 주고? 이 설탕 방망이는 저어서 녹이는 건가? 협소한 테이블 위가 가득 찬 것을 보며 우리는 물 한 병에, 따라 나온 쿠키에 무척 감동했다. 신랑은 아주 신중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음, 하고 만족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베니스지!”

그 말에 우리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관광지 카페 한켠에 앉아서 우리는 음료를 마시고 물도 한 병 다 마셨다. 목을 뽑고 카페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천천히 화장실에 다녀오고 그리고 충분히 쉬었다 싶었을 때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한 번 더 갔다. 그때도 운이 좋게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어제와는 다른 직원이 역시 친절하게 응대를 해 주었다.

나중에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구글 평점이 그리 높지는 않은 곳이었다. 우선 밖에 써놓은 가격과 앉아서 마시는 가격이 다르다는 불만이 있던데(자릿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앉은 후에 메뉴판에서 가격을 보고 주문을 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주인이 불친절하다는 평도 있었는데 우리가 만난 직원은 운이 좋게도 모두 친절했다. 메뉴도 추천과 비추천이 모두 있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에게는 꽤 좋은 카페였다. 음료와 과자도 주고 물도 주고 화장실도 이용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잘 이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남편에게 참다운 베니스를 느끼게 하지 않았는가.

참, 앞서 말한 플로리안 카페에서는 가이드의 제안을 따라 기념품으로 커피콩이 들어있는 초콜릿을 샀다. 그야말로 몇 만 원 하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카페 구경을 할 수 있는 어엿한 손님이 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자주색 정장 유니폼을 입은 나이 지긋한 직원 할아버지가 종류별로 초콜릿을 시식하도록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권해주셨다. 신랑은 회사에, 예진이는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나는 중국어 교실에 돌렸는데 좀 더 사 왔으면 싶게 아주 반응이 좋았다.

이래저래 베니스 카페 체험 성공^^ 꼭 유명하지 않아도 평이 좋지 않아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음을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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