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지는 삶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7) 만만치 않았던 피렌체 스테이크_월요

2024.04.29 | 조회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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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아침 기차를 타고 베니스를 떠나 점심이 안되어 피렌체로 향했다. 즐거운 기차여행이었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이탈리아의 평원과 밭들을 바라보며 제공되는 따뜻한 차와 퍼석한 쿠키를 먹었다. 엷은 카키색에 가까운 올리브 나무의 탁한 녹색은 흐린 하늘과 잘 어울렸다. 차창 밖이 유럽 풍경화의 배경 같았다. 늦가을이라서인지 일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 덕에 기차 안이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보이던 이탈리아의 풍경
창밖으로 보이던 이탈리아의 풍경


기차는 볼로냐를 거쳐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Santa Maria Novella) 역에 도착했다. 처음 든 생각은 피렌체는 크구나!였다. 일단 중앙역 자체가 굉장히 컸다. 게다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도로들은 넓고 복잡했고 수많은 신호등과 복잡한 건널목이 놓여있었다. 도착한 외국인 가족에게는 그 복잡한 체계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역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택시를 탈 필요 없이 걸어서 이동했는데, 아마 날씨가 맑았다면 다른 인상을 받았을 것 같다. 베니스에서는 내내 화창하게 도와주던 날씨가 피렌체에서는 무척이나 심술궂게 굴었다. 한두 방울씩 기차 창밖을 때리던 빗방울은 부슬비로 변해 있었고 우리는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중간중간 구글 지도를 보며 흐린 날씨로 어두워 보이는 도시를 이동해야 했다.

차 없는 도시 베니스에서 넓은 차도에 차들이 줄지어 다니는 도시 피렌체로의 대비가 이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날씨와 함께 도시의 인상도 어두웠다. 좁은 골목에 붙어 있는 더 좁은 인도 –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인도를 한 줄로 서서 걸으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호텔에 들어가 친절한 직원에게 짐을 맡기고 체크인 시간이 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낼 겸 근처 추천받은 식당으로 향했다.

성공적이었던 베니스 야경 투어를 소개해 준 남편의 회사 직원이 추천한 스테이크 맛집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그렇지, 이태리 음식이 파스타와 피자가 다가 아니지! 현지인이 가는 맛집을 한 번 가 봐야지! 이런 야무진 기대를 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은 입구에 비해 깊이가 있는 구조였고 주방 뒤쪽으로도 좌석들이 많았다. 식당이 잘 되다 보니 뒤쪽을 튼 구조일까 싶었다. 우리는 그 유명하다는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 피렌체 티본스테이크와 시금치 요리 그리고 리소토를 시켰다. 점심시간이어서 우리 옆으로 현지인들이 와글와글 들어와 식당이 떠들썩해졌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이 집은 특별히 숯불이 담긴 미니 그릴 위에 고기를 그대로 올려주는데 그 비주얼이 대단했다. 일단 너무 컸다. 너무 시뻘겠다. 결과부터 말하면 가격에 비해 대 실패였다. 우리는 숯불 위에서 많이 익혀 먹기 위해 천천히 조금씩 베어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미디엄 레어 정도의 스테이크도 잘 먹었는데 여기서 핏빛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대하자 의욕이 많이 꺾였다. 그리고 일단 고기만 먹으려니까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ㅠㅠ 고기 자체가 신선하고 좋아서 양념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특별히 맛있는 것을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엄청난 크기의 피렌체 스테이크
엄청난 크기의 피렌체 스테이크


직원은 친절하고 자리도 좋았고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은 식당은 맞는데 엄청난 스테이크의 크기에 압도된 셈이다. 아마 추천해 주신 분은 스테이크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다 보다. 열심히 먹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사냥감을 눈앞에 둔 초식 동물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오징어튀김 요리를 한 그릇씩 먹는 손님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유쾌했던 직원은 나중에는 뼈를 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것이 피렌체 스타일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우리 양으로는 뼈 근처까지도 가지 못했다. 스테이크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함께 시킨 시금치와 리소토의 맛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가 불러서 많이 남겼다. 친절한 직원이 맛있느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예의 바르게 맛있다고는 하면서 많이 남겼다.

이 글을 쓰느라 후기를 찾아보니 칭찬 일색의 후기이다. 맛집이긴 한데 양이 적고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과는 맞지 않은 식당이었다. 고기는 잘 양념해서 구워서 쌈에 싸서 먹거나 야채와 섞어 볶거나 찌거나 해서 먹거나 국에 넣어 우려 먹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정직하게 고기만 먹으면 많이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구나를 사실을 배운 식당이었다.

이 식당에서의 해프닝이 피렌체에서 내내 되풀이되었던 것 같다. 너무 좋고 근사하고 멋진 도시인데 우리 가족은 피렌체라는 도시를 잘 즐기지 못했다. 예술과 역사의 도시 피렌체, 미켈란젤로와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기대에 비하여 실망스러웠다. 피렌체라는 도시가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기다리면서 허비한 시간이 많았고 게다가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피렌체에서의 순간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식당 정보는 아래에

Trattoria La Gratella - https://maps.app.goo.gl/2bmiYD3d1g6Vpk4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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