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는 사람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_찰라흐

2024.03.15 | 조회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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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항소심 사건을 맡으며 A를 처음 만났다.

경상도 사투리로 1심에서 받은 형이 너무 세다며 제발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도 그때 만난 A의 얼굴은 씩씩했다. 구속되어 생활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갔다. 아마 처음 만났지만 A의 말투가 남자치고는 예의 바르고 상냥했기 때문이리라. 이후 상담 동안 A는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도 숨김없이 다 하며 자신은 집안을 돌봐야 하는 사정이 있다며 꼭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 사정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A는 4년의 징역형을 1심에서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조금이라도 형량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변호인을 선임하고자 했다. 그런데 A의 마음과 달리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 주저하고 계셨다. 두 사람을 보는 내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형을 깎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항소심을 포기할 수도 없기에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하고 싶은 마음에 A는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엄마는 아들의 마음은 알지만 항소심에서 형이 깎이지 않을 수도 있기에 어려운 형편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돈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선임료를 듣고 조용히 한숨을 쉬셨다. 그러면서 엄마는 자신이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어렵지만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아들이 마약이라는 범죄로 구속된 사실을 처음 알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는데 그래도 아들이 다시 엄마 곁으로 조금만이라도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이 너무 낙담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럴 때면 참 힘들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어렵게 마련한 돈인 걸 알기에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를 최선을 다하지만 나의 최선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사건을 맡으면서 A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A는 어린 시절 나름 화목하고 부족할 것 없는 집에서 자랐다. 나름 공부도 곧 잘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고 그 충격에 아빠는 자살을 하셨단다. 그 이후 A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집안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 것도 힘든데 A는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서 돌아가신 아빠를 처음 발견한건 A였다. 그 후 동생마저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니 모든 것이 A로서는 버겁기만 했다. 장남인 A는 가정주부였던 엄마를 이제 성인인 자신이 챙겨야 했고, 만에 하나 동생까지 아빠를 따라간다면 엄마도 더는 견디지 못할 것이기에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살아보려 했다. 그래서 일단 돈을 벌어보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찌 되었건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아 엄마와 동생을 책임지려 했다. 그렇게 서울에 와서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클럽을 가게 되었다. 지방에 살면서도 클럽을 다니긴 했지만 역시 서울은 달랐다. 그곳에서 처음 약을 알게 되었다. 마약!!

처음 경험할 때는 조금 주저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몸에 나쁘면 안 하면 되고 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든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라 자신을 믿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중독되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하고 나니 내면에 숨겨두었던 두려움 걱정 등이 모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빠와의 이별 후 늘 죄책감과 불안함 미안함으로 힘들었는데 그런 마음마저 사라지고 순간 안도감을 느낄 수 있어 생각보다 좋았다. 이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약을 하는 기쁨을 느낄수록 점점 생활이 힘들어졌다. 약을 하다 보니 일을 할 수 없어 결국 약을 살 돈이 없는 것이다. 그때 마약을 팔아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때마침 주위에는 마약을 하는 지인들도 많았기에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았다. 그렇게 마약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모두 알다시피 결국 자신이 판매한 아이가 잡히면서 아니나 다를까 같이 구속되고 말았다. A가 취급한 마약은 다양했다. 필로폰, 대마, 합성대마, 엑스터시, 케타민 등.

그렇게 그간의 범죄가 드러나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어느 날 A는 나에게 강아지를 키우는지 물어보았다. 이유는 나에게 부탁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며 돈을 벌던 A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다시 가족을 만들었다. 외로움을 채우려 분양받은 강아지를 자식처럼 키웠다. 보통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하는 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A는 다른 사람과 같이 약을 하지는 않았다. 약을 할 때도 강아지가 A의 곁을 지켜주었다. 그런 강아지를 두고 구속되어 버린 것이다. 갑자기 구속되다 보니 자식 같은 강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강아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몇 달은 지인들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가자 지인들도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며 A에게 강아지를 어떻게 할지 알려달라고 했다. 아무도 돌봐줄 사람들이 없자 A는 나에게 돌봐줄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한 번도 나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다. 지인이 보내온 강아지의 모습에 순간 나는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의 생활에 강아지를 포함해 생각해 보니 역시 안되는 일이었다. 언젠가 강아지를 1주일만 맡아달라고 해서 함께 보낸 적이 있다. 늦은 귀가에 혼자 외로웠던 강아지는 퇴근 후 들어갔더니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강아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A의 부탁을 거절하자 결국 강아지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졌다. 지인은 나에게 그래도 그 보호소는 안락사는 시키지 않는 곳이라고 안심시켰다.

A는 가족이었던 강아지를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게 되니 점점 구치소 생활이 힘들기만 했다. 심지어는 동생마저 연락이 몇 달 끊겨 혼자 동생이 자살한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렇게 점점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상태다 보니 제대로 방생활을 할 수 없었을 터.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결국 징벌을 받아 독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점점 더 무너지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런 자신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교도관들에게도 반항하고 그로 인해 다시 징벌을 받고 하루하루 억울한 마음만 쌓아가고 있었다. 그 억울함을 풀 수 없어 보란 듯이 죽고 싶다는 생각에 바늘을 삼키고 젓가락을 삼키고 철 스프링을 삼키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럴 때면 외부 응급실로 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바늘을 삼켰을 때에는 병원에서 맹장에 있다며 맹장을 떼서 바늘을 제거한다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맹장이 아닌 다른 곳에 바늘이 남아있었다.

A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묻는다면 너무 화가 나고 힘든데 차마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어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단다.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한참 지난 후 정신을 차리고 후회했다고 한다. 젓가락을 삼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 계기가 된 일이 있다. 그때 자신을 돌봐주던 교도관들의 따뜻한 위로와 이해가 A를 변하게 했다. 그러면서 꿈도 다시 꾸게 되었단다. 자신과 같은 중독자들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래서 공부를 해서 자격증도 따서 회복 강사를 하고 싶단다. 또 언젠가는 교도소에 가서 자신과 같이 무너져버린 중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고 싶다는 꿈!!!

출소하자마자 얼마 뒤 나를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올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진짜 이제는 더 이상 약을 찾지 않을 것 같다고.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이제는 또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그곳에 오래 있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했다.

같이 차를 마시고 헤어지며 A는 웃으며 나에게 다음에 돈 벌어서 변호사님 소고기 사드리겠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너무 고마웠다. 나는 그런 A에게 소고기를 사주지 않아도 되니 연락이나 두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다시 약을 하지 말라는 말을 대신했다. 그리고 A의 새로운 시작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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